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조감도. (자료=HD현대중공업)

[한국정경신문=임윤희 기자] 방위사업청(방사청)이 7조8000억원 규모의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사업자 선정 결정을 미루면서 사업 지연이 장기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1일 업계에 따르면 당초 지난 27일 사업분과위원회에서 논의한 뒤 4월 초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할 예정이었으나 방사청이 분과위 자체를 취소하면서 사업 일정이 연기됐다.

"결정 못하는 방사청" vs "타협 안 되는 양사"

방사청은 4월 중순께 분과위를 열어 KDDX 안건을 논의한 후 4월 하순 방추위에서 상세설계 및 선도함 사업 방식을 결정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이마저도 불투명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조용진 방사청 대변인은 지난달 25일 국방부 정례브리핑에서 "KDDX 사업 방식에 대한 위원들의 의견 차이가 너무 커서 27일 열려고 했던 사업분과위원회를 취소했다"면서 "함정 업계 간 상생협력 방안을 추가적으로 보완 논의한 후 분과위에 상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양사의 입장차는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자사와 수의계약을 전제로 한화오션이 협력업체로 상세설계 일부 영역에 참여하는 상생협력 방안을 제시했다.

반면 한화오션은 HD현대중공업의 하청업체로 참여하는 것은 수용하기 어렵고 두 업체가 대등한 입장에서 공동계약 후 공동으로 설계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방사청 관계자는 "두 업체와 상생협력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양사의 입장차가 워낙 크다는 점에서 실효성 있는 중재안 마련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특히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방사청이 "부담을 지기 싫어 결정을 미루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방사청은 원점에서 다시 들여다보며 상생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두 업체 모두 상세설계 및 선도함 사업에 참여하는 방안이다. 하지만 상세설계의 공동작업은 전례가 없었던 데다 법적 분쟁 여지가 있다는 측면에서 신중함이 요구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은 '수의계약'을 주계약으로 하고 한화오션이 협력업체로 상세설계 일부 영역에 참여하는 방안을 상생협력안으로 제시했다.

한화오션은 공동계약 후 상세설계를 수행하고 선도함을 분할 건조하는 방안을 상생협력안으로 내밀었다.

방사청은 ▲수의계약 ▲경쟁입찰 ▲양사 공동개발 등 세 가지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어떤 결정을 내리든 한쪽의 강한 반발이 예상된다.

KDDX 개념설계 등 한화오션 수상함 함정모형들. (자료=한화오션)

안보 위협하는 사업 지연..해외 수출 사업까지 영향

KDDX는 2030년까지 6000톤급 미니 이지스함 6척을 건조하는 사업이다. 선도함은 2030년 10월 실전 배치가 목표다. 그러나 이미 당초 계획보다 1년 이상 지연된 상황에서 추가 지연이 불가피해 보인다.

양용모 해군참모총장은 지난달 말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에 보낸 서신에서 "최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이 고도화하고 주변국은 해군력을 지속 증강하는 등 엄중한 현 안보환경 속에서 주요 함정의 전력화 시기 지연 상황에 대해 많은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국방 전문가들은 "KDDX는 선체와 이지스 체계를 모두 국내 기술로 건조하는 최초의 국산 구축함으로, 동아시아 해양 안보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지연은 한국 해군의 대응 능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난 2월 25일 양사는 '함정 수출사업 원팀 구성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한바 있다. 그러나 국내 사업에서의 갈등이 해외 수출 협력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향후 해외 함정 수출 사업에서 K-방산 원팀을 구성해야 하는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국내에서 파열음을 내면 수출에도 악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금까지 기본설계를 공동으로 한 적은 있지만 상세설계를 공동으로 작업한 적은 없다.

지난 2012년 장보고-Ⅲ 배치-Ⅰ 기본설계를 제3의 장소에서 양사 직원이 모여 공동으로 설계했다. 하지만 그 다음 단계인 상세설계는 한화오션(당시 대우조선해양)이 홀로 수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