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이정화 기자] '중대재해처벌법' 산업안전보건 취지로 시행된 이 법안은 한 때 조선사의 '일터 지킴이'가 될 것이란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정작 노동자와 기업은 법 시행 120일차를 맞고도 끝 없는 안전 우려와 노사 갈등의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25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이달 3일 기준 중대재해법 적용 사고는 총 59건이다. 이 사고로 65명이 목숨을 잃었다. 특히 조선사는 중장비들이 쌓여있는 데다 많은 작업자가 동시 투입되는 위험 구역인 만큼 법을 둘러싼 업계 안팎의 감시가 어느 때보다 매섭다. 그도 그럴 것이 조선업계는 법 시행 이후에도 '산재 레드존(위험지대)' 오명을 벗지 못했다.
현재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등 주요 기업을 포함해 경남 고성의 조선소인 삼강에스앤씨도 중대재해법 효과를 알쏭달쏭하게 만들고 있다.
■ 현대重 3차례 사고..노조 "사고 빈번해도 시정 안 해" 비난
우선 현대중공업에서는 지난 9일 경북 경주시 외동읍 냉천리 해양배관공장에서 오전 6시12분쯤 4.9톤 액화질소탱크가 폭발하는 사고가 났다.
이 사고로 이 공장 인근에 있는 자동차부품제조회사의 공장 건물이 일부 무너지면서 직원 3명이 다쳤고 병원으로 이송돼 치료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정확한 사고 원인을 조사하고 있다.
앞서 현대중공업은 올 들어서만 노동자 사망사고가 2건 발생해 업계의 우려를 샀다. 지난달 2일에는 오전 7시50분께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협력업체 노동자가 크게 다쳐 병원에 이송됐지만 끝내 숨졌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사고 직후 해당 작업에 대해 작업중지명령을 내렸다. 자세한 사고 경위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는 조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월에도 현대중공업 2공장에서 한 노동자가 크레인과 공장 내 철제 기둥 사이에 가슴이 끼여 목숨을 잃은 사고가 났다. 이후 3개월 만에 근로자 사망사고가 일어나면서 안전 관리에 의문점이 피어오르는 상황이다.
잦은 사고에 노조도 우려와 불만을 과감히 드러냈다. 현대중공업 노조측은 앞서 "지난 1월에 중대재해가 발생한 지 68일 만에 노동자 1명이 또 재해를 당했다"며 "크고 작은 폭발사고가 빈번한데도 시정조치가 안 된 것이 원인이고 전체 작업중지 명령을 내려줄 것을 고용노동부에 요청하고 사측을 고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조는 또한 "타 조선3사(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대비 현대중공업 그룹의 노무관리가 미흡하고 현재까지 473명의 근로자가 산업재해로 사망했음에도 단 한 명이라도 사업주가 책임을 지지 않고 재직기간만 채우다 나가려는 식의 태도도 문제"라며 "중대재해법이 시행되는 만큼 경영책임자에 대한 처벌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꼬집었다.
■ 대우조선해양 '안전 장치 미흡' 논란..노조 "책임자 처벌" 촉구
대우조선해양 역시 지난 3월 발생한 하청업체 노동자 사망 사고에 따른 논란을 겪고 있다.
앞서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A씨(50)는 3월 25일 경남 거제 사업장에서 타워크레인 보수작업을 하던 중 상부 작업자들이 떨어트린 와이어와 철제에 맞아 쓰러졌다. A씨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끝내 사망했다.
이에 고용노동부는 사고 직후 작업명령을 내리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및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과 하청업체는 모두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으로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이다.
노조는 사고 현장에서 낙하물을 방지할 수 있는 장치가 없었다며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촉구하는 상황이다.
전국금속노동조합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경남지역본부는 같은 달 사망사고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대우조선해양 경영관리단이 최저가 입찰을 요구해 승강기 관리 업무가 기존 사내협력업체에서 사외협력업체로 바뀌면서 안전보건시스템체계가 작동하지 않았다"며 "노동부에 조선업계를 대상으로 안전보건 시스템을 점검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라"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대우조선해양측은 "재발방지에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 입건 기업↑..경영 위축 우려와 '예방법 VS 처벌법' 정체성 혼란
이처럼 중대재해법 시행 후에도 사망사고가 연이어 발생하면서 노동자의 한숨과 기업의 시름도 깊어진다. 특히 수장 책임론이 강화된 만큼 CEO에 범죄자 낙인을 새길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기업경영 위축도 피할 수 없는 문제로 거론된다.
이달에도 경남 고성의 조선소 삼강에스앤씨 대표이사 A씨가 협력업체 직원의 추락 사망 사고와 관련해 안전보건체계를 갖추지 않은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이런 까닭에 전문가들은 곧 국내 주요기업 최고경영자 상당수가 법정에 설 것이란 관측도 내놓는다.
중대재해법이 사망산재 사고에 대한 기업의 관심을 높이고 감시 체계를 강화하는 데 일조했지만 처벌법과 예방법 사이 법 정체성 혼란은 계속해서 대두될 전망이다.
지난 16일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 주최로 열린 중대재해법 시행 100일 토론회장에서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중대재해법은 경영책임자 처벌이 가장 논란이고 형사처벌법을 예방법으로 부르지 않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법 조항의 모호성이 오해를 낳고 불신을 낳았고 사업장의 대응, 다양한 업종을 고려하지 못했다"면서 "기업들이 쉽게 적응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1월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수사 받는 기업이 늘고 있다"며 "현장 사고를 줄이겠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안전 예방보다 CEO를 향한 처벌이 강조되고 있어 법의 근본 취지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손질이 일부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한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지식과 문화가 있는 뉴스> ⓒ한국정경신문 | 상업적 용도로 무단 전제, 재배포를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