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창현의 메모리 반추] 광장시장 칼국수

백창현 승인 2024.11.25 08:42 의견 6

가끔 점심에 청계천을 따라 광장 시장으로 간다. 길 옆에는 방산시장과 광장시장이 있고, 허술해 보이는 그 시장 안에서는 원해서 주문하면 전차도 로켓도 만들 수 있다는 ‘썰’이 있었을 정도로 번화했지만 이제 현대화 개발에 밀려 잊혀져 간다. 나는 큰 기대도 가지지 않고 광장시장에서 뭔가를 찾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 긴 먹자 골목길에 유명하다는 빈대떡도 마약 김밥도 육회도 아닌 한 그릇의 칼국수를 먹으러 갔다.

종로의 멋진 고급식당 마냥 여러 메뉴를 고민하지도 않고 미쉐린가이드에 오른 맛집처럼 긴 줄 서서 기다릴 필요도 없다. 그저 사람들 부대끼는 긴 시장 골목에 늘어선 가게들을 지나다 얼굴도 보지 않은 채 무심히 툭 던지는 “안녕하세요. 이리 앉으세요.” 라는 말에 이끌려 입구의 국수집에 자리한다. 몇 명인지 뭘 먹을 건지 그리 재촉도 하지 않는다. 내가 먹고픈 “국수 주세요” 한마디에 끓는 육수에 썬 국수 면을 넣고 야채도 적당히 익혀내서 고명 김을 뿌려 김치와 뚝딱 내어 준다. 겨울이 지난 시점의 초봄에는 잔치 국수도 차림표에 올라 있지만 추위가 가시지 않은 날씨 탓에 자연스레 칼국수를 내 주신 것 같다.

차가운 겨울, 바쁜 시장 왕래 길에 잠시 짬을 내 급히 먹었다던 뜨끈한 칼국수에 내 어린 시절을 투영한다. 큰 아버지와 아버지 형제는 국수를 너무나 좋아하셔서 최고 별미로 꼽으셨다. 긴 겨울 밤, 술 한 잔에 세상사 나누시고 들어오신 한밤에도 멸치 육수에 김치 고명을 올려 야참으로 세상사 힘든 고난을 녹이셨었다. 심지어 전날 해장으로 드신 국수가 불어 두부처럼 불어도 다음날 아침에 맛있게 드시곤 하셨다. 그래서 겨울철이면 밀가루를 반죽해두고 때 맞춰 밀대로 얇게 밀고 썰어 끓여 드시게 준비해두셨던 어머니 모습도 아련하다.

여름날에는 칼국수가 아니라 멸치 육수를 내려 시원하게 식히고, 소면을 쫄깃하게 삶아 차가운 물에 전분 기를 깨끗이 씻어내어, 청홍황 고명을 올려 국그릇보다 큰 그릇에 담아내는 잔치국수가 주인공이 되었다. 그 또한 국수인 지라 너무나 좋아하셨고, 많은 양을 순식간에 후루룩 드셨다. 아버지와 나는 자주 대화를 나누는 편이 아니라 친근하지 못했고, 별로 닮고 싶은 마음도 없이 데면데면했지만, 아버지 못지않게 나 또한 국수를 너무나 좋아한다. 국수에 대한 추억에 잠겨 뭉클해진 마음은 어느새 어머니까지 떠올리고 눈에는 눈물이 고인다. 보고 싶고 그립다.

“국수 불어요. 어서 드세요.” 아주머니 말씀에 후다닥 추억과 그리움을 접어 두고, 칼국수 그릇에 얼굴을 대고 후루룩 댄다. 국수의 따스함, 감동처럼 밀려드는 시원한 국물의 진미를 담소 다음을 기약하며 광장시장 먹자골목을 빠져나왔다.

현실은 그 맛난 추억의 국수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밀가루는 소화하기가 어렵고, 특히 글루텐 단백질 성분이 건강을 악화시키며 비만을 유발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장내의 환경까지도 무너뜨리며 면역력까지 떨어뜨려서 내 건강 상태를 나쁘게 만들며, 장내 곰팡이균의 먹이가 돼 유산균 서식을 방해하기 때문이라 한다. 그 뿐 아니라 탄수화물 과다로 인한 중독 뿐만 아니라 성인병 유발에도 영향을 끼친다고 하니 뭔가를 먹을 때에도 주저할 수밖에 없다.

나는 아직도 잡곡류와 섬유함량이 많은 통곡물 형태로 섭취되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되고, 채소와 단백질 반찬을 추가로 섭취해 균형이 있는 식습관을 유지하여야 한다는 식단 추천을 받고 있다. 나의 별식이었고 추억이었던 국수를 떠올리면 먹고 싶은 고통과 그리움으로 쌓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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