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창현의 메모리 반추] 어머니의 콩나물

백창현 승인 2024.11.11 08:11 의견 15

나는 콩으로 만든 식품과 반찬을 좋아한다. 콩은 옥수수, 밀, 쌀과 함께 인류의 4대 곡물에 속하며, 콩나물, 두부, 비지, 된장, 청국장, 콩죽 등을 만드는 재료로 쓰인다. 또한 콩은 오곡 중의 하나로, 오곡(五穀)은 도서직맥숙(稻黍稷麥菽)으로 벼, 기장, 피, 보리, 콩을 일컫는다.

콩은 단백질과 지방이 풍부하여 그 자체로도 먹지만, 콩나물로 재배해 먹기도 한다. 콩나물(Bean sprouts)은 콩을 물이 잘 빠지는 그릇 따위의 시루에 담아 그늘진 곳에 두고 주기적으로 물을 뿌려 줄기와 뿌리를 자라게 한 것을 말한다. 또는 그것으로 요리한 나물도 콩나물이라 하며, 역사적으로는 콩의 원산지가 고구려의 옛 땅인 만주지방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미루어 오랜 전통의 음식재료라고 여겨진다.

콩나물은 콩으로 있을 때에는 없던 비타민 C가 함유되어 있어 야채가 귀한 겨울철에 귀중한 비타민 공급원이 되며, 우리나라에서만 주로 먹는다고 한다. 아삭한 식감과 구수하고 시원한 맛을 바탕으로 주로 국과 나물무침으로 많이 먹어 국민반찬으로도 불린다. 그 외에도 콩나물은 밥, 잡채, 볶음, 김치 등에 이용되고, 특히 전주 콩나물국밥과 비빔밥, 진주비빔밥, 마산의 아구와미더덕찜, 해물찜류 등에 빠져서는 안 되는 요리 재료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밥상에 자주 출현하는 콩나물을 재료로 한 반찬은 너무나 다양하며, 수많은 추억과 이야기들이 있을 것이다.

그 중 콩나물국에 대해 어머니가 말씀하신, 웃기도 슬픈 기억이 있다. 어머니가 외가댁 맏딸에서 벗어나 백가네로 시집을 오셨을 때 시어머니인 내 할머니네와 큰집이 함께 사셨는데, 그 때는 13명이나 되는 대가족을 이루었다고 한다. 대가족에는 당연히 식사 준비가 주부의 제일 큰 일이었고, 당연히 밥보다는 반찬을 만드는 게 더욱 번거로웠다.

그 중에 자주 빠지지 않는 음식이 국이었고, 특히 자주 상에 오르는 콩나물국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었다. 대가족 중에서 어른들 순서에 따라 국을 뜨다보니, 앞쪽에 콩나물을 건더기로 많이 가고 나중에는 콩나물 대가리만 남는 경우가 많았다.

잠깐 옆길로 새자면 영양학적으로 콩나물은 비타민과 아스파라긴산이 풍부하여 숙취해소에 좋으며 섬유소를 함유하여 변비에도 개선효과가 있다. 대가리에는 단백질과 탄수화물 및 비타민, 지방, 엽산 등이, 줄기에는 무기질 식이섬유와 칼슘, 철분 등이 함유되어 있다. 더불어 콩나물에는 단백질, 탄수화물, 무기질, 올리고당이 적절하게 성분을 이루어 피로 회복에도 좋으며 질병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고 면역기능을 높여줘서 고혈압과 갱년기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그래도 대부분 식감이 좋은 줄기를 좋아하며, 영양을 위해서는 골고루 먹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러나 국을 뜨다 보면 남은 콩나물 대가리가 마지막 순서로 뜬 어머니의 국그릇에 많았고, 자연히 어머니는 콩나물 대가리를 좋아하신다고 다른 사람들의 뇌리게 각인되었으리라. 그러다 아버지의 직업상 분가를 하시게 되었고, 그때부터는 콩나물국과 콩나물 대가리는 가능한 드시지 않으려 했다는 것이다.

가끔 대가족이 다시 모일 때면 으레 어머니는 콩나물 대가리를 좋아하는 분으로 여겨 더 담아 주는 대접을 받기에 이르렀다. 콩나물 대가리가 싫었던 어머니는 음식에 대한 불호를 보이시지 않기 위해 그냥 묵묵히 드셨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새색시를 넘어서 어느 정도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가 되신 어머니는 콩나물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고, 콩나물 대가리는 더욱 좋아하시지 않는다 고백을 하셨다. 그제서야 어머니는 콩나물 반찬이나 국에 대한 두려움과 고통에서 벗어 나셨다 했다.

그 이후 콩나물 대가리는 더 이상 어머니 국그릇에 담기지 않았고, 간혹 콩나물국을 먹을 때면 콩나물 지옥을 벗어나신 말씀에 함께 그 아픈 추억을 되새겨 밥상머리를 웃음바다로 만드셨다. 그 시절에 갓 시집온 새댁의 말 못하는 사연이나 음식에 대한 호불호도 쉽게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 요즘의 현실에는 쉽게 와 닺지는 않겠지만 ‘그때 그 시절’의 얘기다.

대가족이 살면서 만드는 기쁨과 아픔의 에피소드는 이 뿐이 아니겠지만 그 시절의 정겨움은 이제 점차 사라져간다. 산업화와 도시화가 증가되면서 핵가족화가 보편화되고 많은 가족이 모이면 외식으로 대체되는 경우가 많아 그 시절의 시끌벅적한 유대관계가 이제는 개성과 알콩달콩한 분위기로 바뀌어 간다.

대가족의 생활이 마냥 좋은 것이 아니지만 가까이 자주 함께하지 못해서 잊혀지고 멀어져 가는 일가친척의 관계가 아쉽기만 하다. 콩나물 하나로도 우여곡절 추억이 만들어 졌던 그 시절을 다시금 기억해보며, 아침 밥상에 오른 콩나물국을 맛있게 먹는다. 그리고 찡하게 떠오르는 어머니에 대한 사무친 그리움이 더욱 깊어지며 어머니 손맛이 그리워진다.

*오곡(五穀): 도(稻, 벼), 서(黍, 기장), 직(稷, 피), 맥(麥, 보리), 숙(菽, 콩)
팔곡(八穀:黍稷稻梁禾麻菽麥): 오곡(五穀)에 량(梁, 수수), 화(禾, 조), 마(麻, 깨)를 추가한 8가지 곡물이다.

PS: 콩나물이야기와 함께 찾아본 콩나물 관련 속담을 간단히 정리해 보았다.
1) “콩 심은데 콩나고, 팥 심은데 팥난다.”: 모든 일은 이유나 원인에 따라 결과가 생긴다는 말이다. ‘인과응보’(因果應報)와 ‘사필귀정’(事必歸定)과 의미가 유사하며, ‘참외를 심어 참외를 딴다.’는 말과 같은 속담이다.
2)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곧이 듣지 않는다.”: 남의 말을 그대로 믿지 않음을 이르는 말로 ‘콩으로 메주를 쑨다.’는 상식적이고 당연한 논리임에도 신뢰를 잃어버린 사람을 비유하는 것이다. “소금으로 장(醬)을 담근다 해도 곧이들리지 않는다”는 속담과 같은 의미이다. 반대 말로는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곧이 듣는다.”는 조건 없는 믿음을 비유하여 말한다.
3) “콩이야 팥이야 한다.”: 이러나 저러나 하면서 자꾸 따짐을 이르는 말로 사사건건 끼어들며 간섭하고, 표현은 별 차이 없는 것을 가지고 다르다고 따지거나 시비를 한다는 뜻이다.
4) “시루 안의 콩나물 같다.”: 어떤 공간에 사람이나 어떤 물건이 빈틈없이 꽉 들어선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콩시루 같다.’는 말로도 표현한다.
5) “사람으로 콩나물을 길렀나?”: 좁은 곳에 많은 사람이 빽빽이 들어찬 모양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콩나물시루에 콩나물이 촘촘히 들어선 것처럼 보이는 것을 표현했다.
6) “콩 볶아 먹다가 가마솥 깨뜨린다.”: 작은 일을 실없이 하다가 큰 탈이 난다는 말로 사소한 일이라도 꼼꼼히 처리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7) “콩나물에 낫걸이 한다.”: 콩나물을 낫으로 친다는 뜻으로, 작은 일에 요란스럽게 큰 대책을 세우는 것으로 격에 맞지 아니한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침소봉대(針小棒大, 작은 일을 크게 불리어 떠벌림)와 유사하다. ‘낫걸이’는 소사리뭇을 묶어놓고 먼 거리에서 낫을 던져 꽂히게 하는 놀이이며 ‘낫치기’, ‘낫꽂기’라고도 한다.
8) “콩 볶듯”: 뭔가 심하게 재촉할 때나 연속되는 총소리를 표현한다. “콩 튀듯 팥 튀듯”도 비슷한 의미로 몹시 화가 나 펄펄 뛰는 모양을 나타낸다.
9) “콩과 보리를 구분 못한다.”: 지혜롭지 못하여 콩과 보리를 분간하지 못한다는 말로 사자성어로는 불변숙맥(不辨菽麥)이다. 우둔해서 상식적인 일조차 모르는 사람을 비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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