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가변동배제 특약 둘러싼 갈등, 대법원 ‘무효’ 판단..공사비 분쟁 마침표 찍나

대법원, 특약 효력제한 판결 상고 기각..쌍용건설-KT 소송 영향력 주목
건설업계 “공사비용청구 분쟁 증가할 것”

박세아 기자 승인 2024.06.17 10:02 | 최종 수정 2024.06.17 11:43 의견 0
지난해 10월 KT 판교 신사옥 현장 앞에서 쌍용건설 직원들이 시위하는 모습 (자료=쌍용건설)

[한국정경신문=박세아 기자] 대법원이 물가변동배제 특약을 무효로 판단했다. 물가 상승에 따른 건설 비용 증가를 건설사가 홀로 부담하다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취지다. 이와 관련 물가 상승으로 공사비 갈등을 겪고 있는 건설업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주 대법원은 ‘건설산업기본법 제22조 5항’을 근거로 물가변동배제 특약 효력을 제한할 수 있다고 본 부산고등법원 판결에 대한 상고를 심리불속행 기각했다. 심리불속행은 대법원이 더 심리하지 않고 판결로 상고를 기각하는 제도다.

건설산업법 제22조 5항을 보면 ‘계약체결 이후 설계변경, 경제상황 변동에 따라 발생하는 계약금액 변경을 상당한 이유 없이 인정하지 않거나 그 부담을 상대방에게 떠넘기는 경우’ 해당 부분을 무효로 한다고 돼 있다. 건설공사도급계약의 내용이 당사자 일방에게 현저하게 불공정한 경우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앞서 부산의 한 교회와 건설사가 물가변동배제 특약을 두고 법적 다툼을 벌였다. 이 소송에서 법원이 물가변동배제 특약을 불공정 계약으로 보면서 건설사 편을 들어준 것이다.

또 지난해 국토교통부는 물가변동배제 특약이 건설산업기본법에 따라 무효될 수 있다고 유권해석 한 바 있다. 법원 판결과 비슷한 효력을 갖는 중재 판정에서도 이 특약을 무효로 결정했다. 대한상사중재원은 한국중부발전과 한 중공업 기업 간 탈황설비 구매계약 중재 사건에서 특약을 무효로 봤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물가변동배제 특약으로 공사대금 조정이 무조건 불가능하다는 발주자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어려워졌다.

특히 쌍용건설도 물가변동배제 특약을 두고 KT와 법적 다툼을 진행 중이어서 이같은 상황이 소송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쌍용건설과 KT는 경기 판교 신사옥 공사비 증액 문제로 갈등을 빚어왔다.

쌍용건설 관계자는 “KT 채무부존재확인청구소송 제기로 국토부 건설분쟁조정절차는 중지될 것”이라며 “광화문 본사 시위는 미정이지만 KT가 제기한 소송에 대응하고 물가변동에 따른 추가 공사대금까지 청구하겠다”고 말했다.

쌍용건설은 최근 법원 판례뿐만 아니라 법원 판결과 비슷한 효력을 갖는 중재 판정 결과에도 주목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민간참여 공공주택사업에서도 공사비 물가 연동이 본격화하고 있다”며 “대전도시공사는 지난해 12월 1BL 갑천지구 민간참여 공공주택사업 물가변동에 따른 공사비 일부 보전에 합의하고 현대건설 컨소시엄에 보전액을 지급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KT는 판교사옥 건설과정에서 쌍용건설의 요청에 따라 공사비 조기에 지급했다는 입장이다. KT는 회사 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으로 그간 논란을 해소하고 명확한 해결을 위해 법적 판단을 받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KT 관계자는 “설계 변경에 따른 공사비 증액(45.5억), 공기연장(100일) 요청을 수용했고 이를 포함한 공사비 정산을 모두 완료했다”고 말했다.

또 “회사는 KT에스테이트를 통해 쌍용건설과 상생협력을 위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수차례 회의와 협상을 진행했다”며 “쌍용건설은 계약상 근거 없는 물가변동으로 인한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물가변동배제 특약을 둘러싼 다툼의 여지가 커지면서 쌍용건설뿐만 아니라 다른 건설사들의 공사비 분쟁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신공영은 KT계열사인 KT에스테이트와 공사비 증액분 청구 갈등을 겪고 있다. 부산 초량 오피스텔 시공에서 141억원 추가 공사비가 발생했다는 주장이다. 현대건설은 광화문 KT사옥 리모델링 공사 과정에서 300억원 가량 추가 공사비가 투입됐다고 보고 있다. GS건설은 미아 3구역 주택 재개발 정비사업조합을 상대로 공사 대금 청구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건설사 관계자는 “물가 상승으로 추가 비용을 시공사가 부담하지 않고 발주처와 협의할 여지가 커졌다”며 “공사비 협상이 치열해질 수 있는 만큼 법적 심판을 받고자 하는 곳이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건설사 관계자는 “발주처와 시공사 간 적절한 조율이 중요해졌다”며 “법적 소송으로 인한 자원 낭비가 커 서로 양보와 타협을 통한 적정 금액 공사비 산출을 해야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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