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이어 밀가루 값 잡는다”..정부 가격 인하 압박에 난감한 식품업계
김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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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6 14:12 | 최종 수정 2023.06.26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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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경신문=김제영 기자] 국제 밀 가격이 하락 안정화하는 추세에 따라 라면 값 인하를 권고했던 정부의 압박이 제분업계로 번지고 있다. 식품업계가 밀가루 가격 인하에 관한 논의를 앞둔 가운데 실제로 밀가루 가격이 떨어지더라도 라면·빵·과자 등 가공식품 가격 인하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6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는 이날 오후 CJ제일제당·대한제분 등 주요 제분업체와 비공개 간담회를 열고, 국제 밀 가격 동향과 전망, 업계 현안과 건의사항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또 밀가루 가격 안정을 위해 정부가 제분업체에 밀가루 가격 인하를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제 밀 가격은 작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치솟았다가 올해 들어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국제 소맥(SRW·밀가루)은 작년 5월 역대 최고가인 톤당 419달러를 기록했지만, 지난 5월 전년 동기 대비 45.6% 하락한 톤당 227달러로 떨어졌다. 이달 현재 국제 밀 가격은 월간 집계 기준 톤당 241달러에 거래되고 있다.
국제 밀 가격 인하에 따른 밀가루 가격 안정에 관한 논의는 지난 주 추경호 경제부총리의 ‘라면 가격 인하’ 발언에서 시작됐다. 추 부총리는 한 방송에 출연해 국제 밀 가격이 전년 보다 50% 안팎 내려간 점을 감안해서 그동안 올린 라면 가격을 인하해야 한다고 권고한 바 있다.
그러나 라면 제조사는 국내 제분사를 통해 밀가루를 공급받기 때문에 국제 밀 가격과 직접적인 영향이 미미하다며 곤란한 기색을 내비췄다. 이에 정부는 밀가루를 가공·공급하는 제분사에 가격 안정 협조를 요청하고, 이를 통해 라면·빵 등 물가 안정을 시도한다는 복안이다.
제분업계는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앞서 관련 보도에 따르면 정부 관계자는 제분업계와의 간담회 이전, 제분업계가 밀가루 출하 가격에 대해 평균 4~5% 인하 요인이 있다고 말했으나 제분업계는 구체적인 가격 인하율 등이 정해진 건 없다고 말한다. 제조사와 제분사는 기업 간 거래(B2B거래) 형태로 거래처별로 공급 물량과 계약 기간에 따라 수치도 상이하다는 설명이다.
제분업계 관계자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제분업계 간담회 개최 알림’이라는 공문이 온 건 사실이지만, 해당 공문 내용에 밀가루 가격 인하에 대해서 요청한다는 구체적인 언급은 없었다”며 “오늘 간담회에서 밀가루 가격 인하를 요청하더라도 그 자리에서 바로 결정할 수 있는 건 없다. 관련 요청이 있으면 향후 검토하고 논의해야 할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밀가루 가격 인하 가능성에 대해서 업계는 말을 아끼고 있다. 국제 밀 가격이 내려가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제분업계 역시 국제 밀의 현재 시장 가격이 생산비에 반영되는 시차가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시차 또한 업체마다 다르지만 최소 3개월, 최대 8~9개월까지 거론된다.
기업에 공급되는 밀가루 가격이 떨어진다고 해도 라면·제과·제빵 업계가 제품 가격을 내릴지도 미지수다. 특히 라면의 경우 제조 원가에서 밀가루가 차지하는 비중은 30% 내외다. 밀가루 가격이 인하되더라도 팜유·소금·설탕 등 다른 식재료와 포장재 등 원부자재, 인건비·물류비·공공요금 등 가격 압박이 높아 오히려 손실이 우려된다는 불만이 나온다.
제과업계 관계자는 “과자 제품의 경우 밀가루가 아닌 옥수수·감자 등을 사용하는 제품도 있어 결이 다른 이야기다. 또 밀가루를 사용하더라도 설탕·소금 등 다른 원재료도 사용돼 단순히 밀가루 가격이 내린다고 해서 관련 제품 가격을 인하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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