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창현의 메모리 반추] 골목길

백창현 승인 2024.11.18 09:01 | 최종 수정 2024.11.18 09:02 의견 8

자동차가 아쉽지 않던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들을 가득 품고, 자연미가 살아 있던 꼬불꼬불한 골목길이 그리워진다.

타버린 잿빛 연탄재와 깨진 벽돌들이 뒹굴던 그때의 그 골목길은 지금보다 풍요롭지는 않았지만 더 많은 이웃의 정과 친구들의 활기찬 숨소리가 있었다. 아침이면 두부 장수의 요란한 종소리가 있었고, 학교를 등교할 때면 언제든 마주치는 어여쁜 그녀에 대한 가슴 설렘도 있었다. 아들의 자취방 골목을 벗어나 떠나가시는 부모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쉬움과 그리움이 사무쳤다.

그래도 친구들과 눈감고도 누비던 그 골목은 낮과 밤이나 사계절 따라 꿈과 추억이 있었다. 형광 빛 새싹들이 움트는 봄이면 을씨년스럽고 조용했던 골목이 더욱 활기차고 붐비기 시작했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벌거벗은 알몸으로 찬물을 끼얹으며 여름 무더위를 쫓으며 골목을 누볐다.

청량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가을이 오면 담을 넘은 대추와 붉게 익어가는 감은 심심한 간식거리를 주는 골목이었다. 놀이터처럼 하얀 눈 위를 뒹굴다가 터질 듯 시린 손발을 비벼가며 양지 양지바른 담벼락을 찾았던 그 골목도 아련한 듯 따사롭다. 이른 아침부터 만났던 친구들과 지치지도 않은 채 놀이에 빠져 끼니도 넘기며 해가 뉘엿뉘엿 서산에 잠기는 지도 모를 때도 있었다. 때로는 어둑한 밤 달빛을 조명삼아 함께 마냥 즐겁고 신나게 떠들고 놀았던 그 시절 골목길이 그립다.

놀거리 먹거리가 다양하지 못했었고, 교통이나 통신이 발전하지 않아서 요즘 같이 다양한 문화와 환경이 없었기에 그 골목이 다른 모습과 추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내 추억의 풍성함을 담은 넉넉한 길로 기억된 그 골목길, 세월의 흐름 속에 새로운 문물을 접하며 다시 찾은 그 골목길은 두 사람이 지나가기도 어려울 정도로 좁고 구불구불해 통행이 불편하고 궁핍하게도 느껴졌다. 그저 낡고 초라하게만 느껴지는 좁고 미로 같은 골목길이 탁 트인 신작로처럼 뻥 뚫리고, 정비되고 큰길에 자리를 내주기를 내심 바라고 있었다.

더불어 낡고 지저분한 한옥이나 좁고 불편한 골목보단 넓은 길에 맞닿아 자동차가 마음껏 드나드는 대궐 같은 양옥에 살고 싶었다. 더 나아가 깔끔하게 정비해 다양하고 편리한 혜택을 함께 가져다 준다는 아파트를 갖길 바랐고, 그 꿈을 설렘과 함께 탁 트인 길에 멋지게 꾸며진 빼곡한 아파트에 입주하는 기쁨과 환호의 그날이 있었다. 하지만 그 깨끗함과 편리함 속에 갇혀버린 각자의 삶은 골목의 소통과 나눔을 가져올 수 없었고, 서로를 위한 인정도 끊겨져 버렸다.

아직도 남겨져 있는 골목은 그저 보존이라는 이름과 추억의 볼거리로 개발이 못 미쳐 썰렁하고 왜소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하지만 그 골목들이 한국의 전통과 유물로 여겨져 많은 젊은이들과 외국인들에게는 예스런 자연미와 신기함을 주어 찾고 있으며, 기성세대들도 지난 시절에 대한 아련한 추억을 되새기며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다시 찾아 걷고 있다. 물론 그 옛날의 소통과 나눔이 전해지는 곳이 아니라 구경거리로 유물처럼 빌딩 숲에 남겨진 채, 바뀌어버린 골목은 먹거리와 놀거리의 가게들에 의해 그저 복잡하기만 하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온기와 문화는 잊혀지고 또 다른 다툼이 생겨난다.

나도 어느새 거대한 아파트와 집단 시설에 익숙해졌고, 도시 생활의 삭막함과 편리함만을 좇아 왔지만 골목길에 대한 넉넉함과 다정함을 찾고 싶고 그리워진다. 단순한 즐김 보다 정감과 느낌을 찾는 나이가 돼 보니 그 시절 골목길과 아련하게 떠오르는 친구들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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