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에서 전현직 임직원과 가족들이 연루된 수백억원대 부당대출이 발생했다. 이를 인지한 기업은행은 별도 문건을 통해 조직적 은폐·축소를 시도하면서 국책은행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26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이 적발한 부당대출은 총 882억원 규모다. 전현직 임직원 부부와 입행동기, 친인척, 거래처 관계자 등 수십명이 연루됐고 미분양상가에 부당대출을 알선하고 은행 점포를 입점시키는 등 수법이 도를 넘었다.

IBK기업은행 본점 전경 (자료=IBK기업은행)

이번 부당대출 사건의 핵심 인물은 퇴직직원 A씨다. 약 14년 근무 후 퇴직한 A씨는 다수의 부동산업 관련 법인을 운영했다. A씨는 회사의 자금력을 허위로 부풀려 돈을 빌린 뒤 땅을 사서 건물을 짓고 이를 되파는 방식으로 수익을 챙겼다. 심사역으로 기업은행에서 근무 중인 배우자인 B씨와 입행동기인 지점장 등의 조력을 받았다.

또 A씨는 미분양 상가를 보유한 모 건설사의 청탁을 받아 대출을 입행동기들인 심사센터장 및 3명의 지점장에게 알선했고 허위 매매계약서를 통해 총 216억원의 부당대출을 일으켰다. A씨는 대출알선의 대가로 건설사로부터 12억원을, 심사센터장은 A씨로부터 현금 2억원 및 차명법인 지분을 수수한 혐의도 받는다.

A씨는 본인 소유 지식산업센터가 미분양 되자 고위 임원에게 청탁해 기업은행 점포 입점을 시도했다. 해당 임원은 실무직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4차례 재검토와 안건 상정을 밀어붙였다. 해당 지점은 여타 지점 대비 면적이 협소했고 반경 1㎞ 이내 기존 점포가 5개나 밀집해 있는 등 점포 입점이 부적합한 곳이었다.

기업은행 점포 입점이 확정된 이후 A씨는 미분양됐던 해당 호실을 매각했다. 점포 입점 이후에는 고위 임원 자녀가 A씨 소유의 업체 취업한 것처럼 꾸며 약 2년 급여 명목으로 6700만원을 지급하기도 했다.

금감원 검사 결과 부당대출과 관련해 A씨로부터 국내외 골프접대를 받은 기업은행 임직원은 총 23명에 이른다.

더욱 심각한 것은 기업은행이 제보를 통해 비위 행위를 인지하고도 금감원에 보고하지 않고 은폐·축소를 시도했다는 점이다.

임직원의 금품수수 관련 조사를 담당한 기업은행 모 부서는 조사 내용을 금융사고 보고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에 전달하지 않아 금감원 보고가 이뤄지지 않게 했다.

또 부당대출 관련 조사를 실시한 부서의 경우는 별도 문건을 마련해 사고 은폐·축소를 시도했다. 다수 지점이 연루된 사건의 경우 동시감사가 원칙인데도 다수 사고간 연관성이 드러나지 않도록 순차적으로 분할감사를 실시하는 방안과 각 감사대상의 감사배경을 상이하게 기재하는 방안 등이 문건에 담겼다.

해당 부서는 금감원에 금융사고를 보고하면서도 사고발견 경위를 허위 기재했고 특정 지역 부당대출 사고 및 일부 금품수수 내역을 누락했다. 또 퇴직직원 A씨가 드러나지 않도록 ‘지인 A’로 기재하는 등 은폐·축소 시도가 있었다.

금감원의 검사가 진행 중이던 올해 1월에는 부서장 지시로 해당 부서 직원 6명이 파일 271개와 사내 메신저 기록을 삭제하기도 했다.

이세훈 금감원 수석부원장은 전날 브리핑에서 “여러 가지 기록삭제 정황이나 관련자간 대화를 봤을 때 은행 차원에서 조직적 은폐의 정황이 있다고 판단했다”면서 “검사를 하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자료를 확보하는 것을 원천적으로 방해하거나 삭제하는 부분은 굉장히 심각한 법 위반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달 KB국민·우리·NH농협은행에서 대규모 부당대출이 적발됐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전현직 임직원들이 브로커와 결탁해 482건, 총 3875억원 규모의 부당대출을 일으킨 건이다.

금감원은 이번 금융사고가 민간 시중은행이 아닌 금융위원회 산하 공공기관이자 국책은행인 기업은행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사안을 더욱 심각하게 봤다.

이 수석부원장은 “지난번 검사 과정에서 밝혔던 다른 은행 사례와 비교해 보면 이해관계자와의 거래 관계 측면에서 소홀한 게 많았다”면서 “고객 돈을 맡아 관리하는 측면에서 시중은행과 국책은행이 똑같은 정도의 선관주의 의무(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가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성태 기업은행장은 이날 확대간부회의를 열고 “이번 사건으로 고객과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금감원 감사 결과를 철저한 반성의 기회로 삼아 빈틈없는 후속조치와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부당대출 사고는 김 행장의 재임기간과 겹치고 내부의 은폐·축소 시도 역시 재임 2년차인 지난해 발생했다. 김 행장은 지역본부장, 소비자보호그룹장 등을 지낸 내부 출신 행장이다.

김 행장은 부당대출 발생을 시스템적으로 차단하기 위한 임직원 친인척 정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매 대출 시마다 담당직원과 심사역으로부터 ‘부당대출 방지 확인서’를 받기로 했다. 승인여신 점검 조직을 신설해 영업과 심사업무 분리 원칙을 철저히 지켜지도록 할 예정이다.

또 감사 프로세스 점검과 비위행위 등에 대한 검사부 내부 고발을 담당하는 외부 전문가를 영입하고 내·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감사자문단’을 운영하기로 했다.

기업은행 관계자는 김 행장이 IBK 임직원 모두가 ‘곪은 곳을 송두리째 도려내어 완전히 새롭게 거듭난다’는 환부작신의 자세로 업무에 임해 주기를 당부하고 재발 방지 및 철저한 쇄신을 거듭 강조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