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게 소복이 눈 내리는 날 아침이면 나이에 상관없이 마음이 설렌다. 누구도 밟지 않은 하얀 눈밭을 보면 나도 모르게 살그머니 새로운 길을 내며 기뻐했다. 아무도 밟지 않은 하얀 눈에 새겨지는 내 발자국에 처음이라는 조심스러움과 새로움의 기쁨을 담고서 뽀드득 소리를 들으며 길을 만들었었다. 지나온 눈길을 되돌아보면 이리저리 혼란스럽기도 하고 나만의 의미를 담은 뭔가를 그려 놓은 듯해 뿌듯하기도 했다.

그 눈길은 내가 걸어온 작은 역사처럼 쑥스러움도 있고, 당당함도 있으며,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때론 뒹굴기도 했던 추억이 남아 있다. 이제는 조금 철이 들었는지 나이가 차서 그런지 느긋이 걸으며 나름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그 눈길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의미를 전하는 한시 한 수가 생각난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눈 내린 들판을 걸어갈 때는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마라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걷는 이 발자국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뒷사람 이정표가 될 것이다

이 시는 김구 선생이 안중근 의사 의거 39주년을 기리며 친필로 휘호하고 애송하면서부터 알려지고 유명해졌다 한다. 서예를 하시는 분들이 자주 인용하여 작품을 만들기도 하고, 누군가에게 선행하여 길을 만들거나 모범이 되어야 하는 일에 권두언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야설’(野雪)이란 제목은 다소 생소하게 들리겠지만 시의 한절인 ‘답설야중거’와 그 뜻을 말하면 많은 사람들이 잘 알고 있다. 또 어떤 이들은 이 글을 서산대사의 구전 선시로 알고 있기도 하나, 정작 서산대사의 문집인 ‘청허집’(淸虛集)에는 실려 있지 않다고 전해진다.
아무튼 이 시를 백범 김구 선생님도 서산대사의 시로 알고 있었다고 하지만 서거 한 해전인 1948년에 친필 휘호로 쓴 ‘야설’ 유품은 유족들의 기증으로 청와대 집무실인 여민관 복도에 걸려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후에 알려진 바는 이 시가 1985년에 북한 문예출판사에서 발간한 한시집 안에 실려 있었고, 제목은 ‘야설’(野雪)이며 지은이는 본관 전주(全州), 자 진숙(晉叔), 호 임연재(臨淵齋) 산운(山雲) 이양연(李亮淵, 1771~1856)이라는 조선시대 관리이자 시인의 작품으로 시집 ‘임연당별집’(臨淵堂別集)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는 200여편의 시를 남겼고, 조선의 시인 중에 우수한 시적 성취를 가지고 시대의 모습과 희로애락을 글로 담았다고 한다.
그는 문장에 뛰어났고 성리학에 정통하였으며 늙어서도 학문을 게을리하지 않아서 후학들로부터 존경받는 학자였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활동한 19세기 초반은 순조, 헌종, 철종으로 이어지는 조선 후기 정치 혼란과 함께 매관매직이 성행하던 불운의 시절이었기에 시를 통해 삶의 통찰에서 비롯된 시대의 교훈과 아픔까지 이 시에 담았다고 여겨진다. 사대부였지만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은 깊었고, 스스로를 자책하며 백성들의 모범을 보이고자 한 그의 마음이 깊이 느껴지는 글이 많았다.

‘임연당별집’에 실려 있는 이 시는 5언절구/5언고시(5개의 글자로 4줄을 쓰고, 기승전결의 법칙에 맞춰 쓴 글)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이 시의 20자 중 답설(踏雪)이 천설(穿雪)로 금일(今日)이 금조(今朝)로 다르게 실려 있지만, 아마도 암송해 오다가 글로 시집에 옮겨질 때 바꾸어 쓴 것으로 짐작된다 한다. ‘임연당별집’에 실린 野雪(야설)과 이어우(又)라고 적어놓고 내용이 비슷한 시가 또 한수 적혀있는데, 그의 생각과 가르침을 다시금 되새기며 감히 옮겨 적어 본다.

[1]: 야설(野雪)
穿雪野中去(천설야중거) 눈 밟고 들판 가운데를 걸어 갈 적엔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모름지기 어지러이 걷지 말아라.
今朝我行跡(금조아행적) 오늘 아침 내가 간 발자국들이
遂爲後人程(수위후인정) 마침내 뒷사람의 길이 될 것이다.

[2]: 문집 맨앞 속지에 실림(道文)
雪朝野中行(설조야중행) 눈 온 아침에 들판 가운데를 걸어가니
開路自我始(개로자아시) 나로 부터 길을 여는 것이 시작된다.
不敢少逶迤(불감소위이) 잠시도 구불구불 걷지 않음은
恐誤後來子(공오후래자) 뒷사람 헷갈릴까 염려해서다.

그리고 그가 남긴 시 중에 나에게 찐하게 전해지는 의미를 가진 적상산(전북 무주 적상면/1,038m)에서 내려다보는 세상과 시절에 대한 것도 있었다. 그 시절의 무상함을 가지고 청빈낙도(淸貧落道; 청렴결백하고 가난하게 살며 도를 즐긴다)하여 살았던 그의 현실과 느낌을 아마 이 시에 적어 전하고자 했을 것이라 본다.
이 시에는 높은 적상산에서 산 아래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모습도 아련히 그려진다. 발 아래 짙은 먹구름과 함께 우레가 들리니, 사람들 사는 곳엔 곧 비가 쏟아질 것이다. 그러면 밭일하며 비를 기다린 농부들은 기쁠 것이지만, 많은 비를 근심하는 길 떠나는 나그네도 있겠다는 뜻을 시로 그려냈다. 이처럼 현실은 바라보는 시각과 시대를 살아가는 여러 백성들에게 아주 다르게 전해지며, 그 결과에 따라 처해질 상황을 그도 함께 느끼며 표현한 것이다.

赤裳山見山下雨(적성산견산하우) 적상산에서 산 아래 내리는 비를 보다
山下雲雷深(산하운뢰심) 산 아래는 구름과 우레(번개/천둥)가 깊이 잠겨 있으니
人間今日雨(인간금일우) 인간 세상에 오늘은 비가 내리겠네.
誰家喜田事(수가희전사) 기뻐할 사람은 밭일 하는 이고
誰家憂遠路(수가우원로) 근심할 사람은 먼 길 가는 나그네이네.

조선시대 시인 묵객 이양연께서 남기신 시를 통해 시대의 상황과 시인의 의지를 느낄 수 있었고, 나의 미흡한 감상과 느낌을 적어 보았다. 오늘날의 다양하고 번잡함 속에 살고 있는 나의 혼란을 느끼며, 옛 시가 전해주는 교훈과 감동을 공감하여 감사를 전한다.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세상에 우리가 있음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