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우리은행이 정치권과의 현안 간담회에서 가상자산 거래소의 계좌 연동 규제인 ‘1거래소-1은행’ 체계를 폐지해 달라고 요청했다. 후발주자인 우리은행이 규제 개편을 통해 가상자산 시장 진입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국민의힘-은행장 현장 간담회’에서 정진완 우리은행장이 가상자산거래소의 실명계좌 제휴 관련 개편을 요청한 것으로 파악됐다.
정진완 우리은행장 (자료=우리은행)
이날 간담회는 국민의힘 정무위원회가 은행장들을 만나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와 환율 인상 등으로 인한 은행업계 상황을 공유하고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윤한홍 정무위원장과 강민국 정무위 간사, 조용병 은행연합회장의 모두발언 이후 비공개로 전환된 은행권의 정책제안 과정에서 정 행장의 발언이 나왔다.
강민국 의원에 따르면 정 행장은 “현재 가상자산 거래소 하나당 1개 은행과 제휴할 수 있는 체제는 시스템 안정성의 리스크와 소비자 선택권 제한의 문제가 있다. 법인 고객이 제약을 받을 수 있다”며 “하나의 거래소-다자 은행 체제가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금융당국은 가상자산거래소가 단일 은행과만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실명계좌) 제휴 계약을 맺을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다. 단일 은행과의 제휴를 통해 자금 흐름을 명확히 추적하고 관리해 자금세탁을 방지하고 시장 안정성 높이기 위한 조치다.
이 규제로 인해 국내 주요 가상자산거래소들은 각각 하나의 은행과 제휴 관계를 맺고 있다. 가상자산거래소 1위 업비트는 케이뱅크와, 2위인 빗썸은 KB국민은행과 실명계좌 제휴를 맺었다. 이밖에 코인원은 카카오뱅크와, 코빗은 신한은행과, 고팍스는 전북은행과 제휴를 맺은 상태다.
이러한 단일 은행 제휴 시스템은 은행들 간에 가상자산거래소 유치 경쟁을 촉발시켰으며 제휴 은행은 대규모 요구불예금 확보와 신규 고객 유치라는 이점을 얻게 된다.
실제로 지난달 말 국민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156조2034억원으로 작년 말(151조4751억원) 대비 4조7283억원 늘었다. 이는 4대 은행 중 가장 큰 증가폭으로 빗썸이 NH농협은행에서 국민은행으로 제휴 은행을 바꾼 영향으로 풀이된다. 국민은행은 지난 1월 빗썸 거래고객 설명계좌 사전 등록 이벤트 실시 이후 일일 요구불계좌 개설 건수가 3~4배 증가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직 제휴 거래소가 없는 우리은행이 ‘1거래소-다자은행’ 규제 개편을 통해 활로를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현재 우리은행은 가상자산거래소 1위 업비트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상황이다. 업비트가 제휴를 맺고 있는 케이뱅크와의 계약은 오는 10월 종료된다. 업계에서는 제휴 거래소가 없는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이 물밑에서 치열한 유치전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업비트의 경우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유하고 있어 은행들의 유치 경쟁이 더욱 치열할 수밖에 없다. 다만 업비트가 케이뱅크와의 제휴를 유지할 가능성도 다분하기 때문에 우리은행으로서는 ‘1거래소-1은행’ 체제보다는 ‘1거래소-다자은행’ 체제가 시장 진출에 더 유리하다는 판단이 깔렸다.
그간 ‘1거래소-1은행’ 체제가 법적 근거가 없는 암묵적인 규제인 만큼 향후 개편 가능성도 크다. 지난 2월 금융위원회는 법인의 가상자산 시장 참여를 위한 중장기 로드맵을 공개하면서 가상자산 법인계좌를 통한 거래를 단계적으로 허용하기로 했다. 가상자산이 점차 제도권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1거래소-1은행’와 같은 그림자 규제도 점차 해소되지 않겠냐는 전망이다.
우리은행은 법인 고객의 가상자산 시장 참여를 뒷받침하기 위해 거래소와 협업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상태다.
강민국 의원은 “제조업 중심의 산업 모델이 입계점에 도달한 상황에서 우리도 미국처럼 금융 강국으로 나가야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될 수 있다”며 “필요하다면 규제 완화 수준이 아니라 ‘규제 파괴’가 필요하다”며 은행권의 규제 완화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