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이더랩 대표
디지털 자산 시장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한국은 한때 세계에서 손꼽히는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강국으로 평가받았으나 최근에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에도 밀려 그 위상이 점차 약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정부의 늦장 대응으로 인해 디지털 자산 시장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투자자들이 점점 해외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는 탓이다.
과거 한국은 암호화폐 시장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글로벌 거래량 상위권에 국내 거래소들이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이더랩의 ‘디지털자산거래소 이용자수 통계’에 따르면 한국 디지털자산 투자자들의 해외 거래소 이용이 국내 거래소 이용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 본사를 두고 있는 거래소의 월간 방문자 수는 232만 명이었으나 해외 거래소의 방문자는 343만 명에 달했다. 즉, 국내 거래소보다 해외 거래소를 이용하는 한국 투자자가 더 많아진 것이다.
특히 한국인이 가장 많이 접속한 해외 거래소는 게이트아이오다. 게이트아이오는 35만6894명이 이용했다. 그 뒤를 이어 바이낸스 31만8737명, 비티씨씨 28만830명 순으로 높은 이용률을 기록했다. 이는 한국 투자자들이 글로벌 트렌드의 변화에 맞춰 더 넓은 투자 기회를 찾기 위해 해외 시장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기술 발전과 함께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플랫폼 또한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과 유연한 규제 정책을 바탕으로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싱가포르와 태국은 암호화폐 및 블록체인 기술 도입에 앞장서며 관련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또한 크립토 산업을 국가 경제 성장의 핵심 동력으로 삼고 있다. 이들 국가는 명확한 규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혁신적인 금융 상품 개발을 지원하면서 글로벌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 한국은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했던 국가 중 하나였으나 현재는 규제 공백과 정책 미비로 인해 점차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시장의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정부의 대응이 지연되면서, 한국은 글로벌 시장과의 격차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 일본의 사례에서 배워야 할 점
일본의 사례를 살펴보면 정부의 체계적인 관리와 지원이 어떻게 시장 발전에 기여하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일본은 2017년 가상자산을 결제 수단으로 인정하고, 금융청(FSA) 산하에 일본가상자산거래소협회(JVCEA)를 설립해 거래소의 자율규제를 강화했다. 특히 JVCEA는 거래소의 신규 코인 상장 시 엄격한 심사를 거쳐 ‘화이트리스트’에 등재된 코인만 상장하도록 허용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러한 체계적인 관리로 인해 일본의 거래소들은 평균 40개 내외의 코인만을 상장하고 있으다. 이는 한국의 거래소들이 평균 300개 이상의 코인을 상장하는 것과 큰 차이를 보인다. 일본의 허가제는 투자자 보호를 강화하고 시장의 투명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한국 역시 이를 참고하여 디지털 자산 시장을 보다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자산 패권을 어디까지 빼앗길 것인가?
현재 한국의 디지털 자산 시장은 글로벌 경쟁에서 점점 뒤처지고 있다. 이는 단순히 규제의 부재나 지연 때문만이 아니라 정부와 업계의 적극적인 대응과 협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일본의 사례를 참고하여 허가제를 도입하고, 동시에 기술 혁신과 시장 발전을 지원하는 종합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한국은 글로벌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회복하고, 투자자들에게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글로벌 시장에서는 다양한 밈코인 마케팅과 새로운 기술을 탑재한 디지털 자산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한국은 이러한 트렌드에서 점점 소외되고 있다. 현재와 같은 규제 공백이 지속될 경우 한국의 크립토 산업 경쟁력이 약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점점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서는 보다 현실적인 규제와 글로벌 트렌드를 반영한 정책이 필요하다. 지나치게 보수적인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 시장 친화적인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통해 투자자 보호와 산업 발전을 동시에 달성해야 한다.
■ 용어의 통일
디지털 자산은 암호화폐, 가상화폐, 가상자산, 크립토커런시 등 다양한 용어로 불리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이에 대한 산업적 논의 없이 일방적으로 ‘가상자산’이라는 용어를 공식화하며 시장과의 괴리를 더욱 심화시켰다.
‘가상’이라는 단어는 본질적으로 실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지게 만든다. 하지만 디지털 자산은 이미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 실질적인 가치와 유동성을 갖춘 투자 및 결제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 정부는 여전히 이를 실체 없는 투기성 자산으로 바라보며, 초기부터 부정적인 인식을 덧씌운 셈이다.
용어는 단순한 단어 선택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시장에서는 ‘디지털 자산’ 또는 ‘크립토’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된다. 세계적으로도 암호화폐를 디지털 머니, 크립토 자산으로 분류하는 추세다. 정부가 산업을 키우려면 가장 먼저 시장 참여자들이 사용하는 용어부터 맞춰야 한다. ‘가상’이라는 단어로 이 시장을 한정 짓는다면 한국은 앞으로도 글로벌 흐름에서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 정부와 시장 참여자, 업계 관계자들의 유기적인 논의와 협력 절실
정부와 시장 참여자, 업계 관계자 간의 유기적인 논의와 협력이 필요하다. 디지털 자산 시장은 단순한 규제 강화나 완화로 해결될 수 없다. 정부와 업계, 투자자들이 함께 투명하고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현재 한국의 규제 정책은 모호한 기준과 늦은 대응으로 인해 투자자들에게 불확실성을 안겨주고 있다. 규제는 시장을 위축시키는 방향이 아니라 산업 성장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디지털 자산을 미래 금융 혁신의 핵심 축으로 인식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법과 규제는 일방적인 통제가 아닌 현실적인 대안을 반영해야 한다. 정부는 업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투자자 보호와 혁신을 동시에 고려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하며, 글로벌 시장과 조화를 이루는 전략이 필요하다.
이제는 단순한 규제 논쟁을 넘어 한국이 글로벌 디지털 자산 시장에서 경쟁력을 유지할 방안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더 이상 골든타임을 놓쳐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