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나 조금은 긴 시간을 지나며 여러 명의 다양한 친구를 사귀었고, 우정을 나누며 많은 아픔과 기쁨을 함께 하고 있다. 친구는 학연, 지연에 의해 쉽게 많이 만들어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우연하게 다가와 가장 찐하게 남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사람의 연이 그러하지만 멀어지면 잊혀지고, 잊혀지면 끊겨 버리는 것이 인간관계의 보편적인 결과다. 그래도 오랜만에 멀리서 만나려 언제든 다시 찾게 되는 것도 친구다. 물론 어떠한 연유로 인해 우정에 금이 가고 헤어져 버리는 경우도 많이 볼 수 있다. 이들은 아마도 깊이 다져지지 않은 사이였고 서로의 신뢰가 크지 않았기에 멀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나에게는 20대에 접어들며 성인이라는 생각이 굳혀져 갈 무렵 만난 친구가 있고, 남들이 볼 때는 그리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겨질 친구가 있다. 그는 조금은 와일드 하고 남자다운 면을 가진 시골 출신의 사나이였고, 나는 조금은 도회적이고 조용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것은 나만의 생각이다.

우리는 우연히 어떤 사건을 바라보며 같은 생각과 행동으로 대처하게 되었고, 그 계기를 통해 가깝게 지내게 되었다. 물론 청춘이라는 멋진 시간 속에 온갖 일들을 부딪치며 때로는 협동하고 힘으로 머리로 돌파하는 나름 멋진 조합의 짝이기도 했다. 물론 이것도 우리 둘만의 생각과 행동이었을 수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둘이는 서로의 집도 오가며 부모님들 조차 둘의 다정함에 믿음을 주실 정도 였다.

그의 아버지는 ‘친한 친구는 많아도 진정한 벗은 꼭 하나 있어야 하고, 그는 친구의 돌이킬 수 없는 죄도 묻어 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셨다. 그렇게 우리는 하나의 친구가 되기 위해 서로에게 도리를 다하며, 비록 먼 거리에서 서로 다른 일로 자주 볼 수는 없었지만 자주 안부를 통신으로 전하며 마음으로 우정을 다져갔다.

가끔 서로의 다른 생각과 행동으로 부딪히며 사소한 언쟁은 있었지만 한 번도 원망하거나 멀어진 적 없이 꾸준히 우정을 쌓아갔다. 그 이후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한 후 사회의 무한경쟁에서도 우리는 청춘을 열정적이고 도전적으로 각자의 삶을 지켜나갔다.

특히 기쁨은 언제나 함께 했고 아픔은 가족보다 더 깊이 서로가 나눌 수 있었으며, 함께 가졌던 눈물은 어디에서도 보지도 못할 정도로 뜨거웠다. 나는 어떤 사람에게도 말할 수 있다, 내가 가진 그 친구보다 더 멋지고 고귀한 친구가 있으면 자랑해보라고.

또한 사람이 갖추어야 할 다섯가지 도리인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공자의 유교 이념으로 어질고, 의롭고, 예의 있고, 지혜로우며, 믿음이 있어야 한다.)을 갖추려 서로를 다독이며 올바른 길을 지키려 노력했다. 더하여 조금은 부족했던 덕, 용, 맹(손무가 쓴 손자병법의 세 가지 장수의 분류)을 키우며 리더로서의 자질을 갖추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매진하였다.

그 결과 서로는 부끄럽지 않은 시간을 지냈으며, 비록 거대하지는 못했지만 부모님이나 주위의 기대에 실망을 드린 적이 없이 사회에 적응하며 순탄한 과정을 밟아 나갔다. 그리고 이렇게 조그만 글을 통해 나는 그와의 지난 40여년의 시간을 어느 누구에게나 자랑하고 귀감이 될 수 있는 우정으로 말할 수 있다.

다음 세대들에게도 좋은 친구를 만나 50년을 넘는 우정으로 많은 추억과 멋진 기억을 더 높이 쌓이기를 바라며, 이 글을 드린다. 아직도 나에게 남은 그 친구와의 우정을 더 공고히 다져갈 수 있게 ‘붕우유신’(朋友有信: 오륜(五倫)의 하나로 벗과 벗 사이의 도리(道理)는 믿음에 있음을 이른다는 뜻)을 앞으로도 지켜 가리라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