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만두를 유난히 좋아하고 즐기는 편이다. 수많은 종류만큼 여러 가지 조리법으로 만들어져 입맛을 일깨우며 즐겁게 해주기에 자주 즐기는 편이다.
만두는 전 세계적으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고, 각 나라별로 다양한 재료를 이용하여 만드는 방법이 있으며, 찌고 굽고 튀기고 끓이는 등 요리법도 수 없이 많다. 밀가루 음식이 옛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시작되면서 만두와 유사한 요리가 등장해 이것이 동쪽의 아시아를 거쳐서 다시 유럽으로 퍼졌다는 설도 있으며, 국수의 기원이 실크로드를 통해 밀가루의 이동과 함께 전달된 것과 연계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한반도에는 14세기에 원나라를 통해 고려에 소개되었다고 여겨지거나, 그보다 더 이른 시기에 중동에서 비단길을 통해 들어왔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아무튼 오랜 역사를 가진 음식으로 수많은 사연을 가졌듯이, 내게도 만두로 맺어진 소중한 우정이 가장 멋진 인연의 하나로 남아 있다.
중학교 까까머리 시절에 너무나 좋아했던 튀김만두(그때는 일본식 표기와 혼합된 ‘야끼만두’라 불렀다.)를 기억하면, 아직도 고소한 그 맛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여전히 입안에 침이 고이고 미소가 지어진다.
그때는 교복을 착용했고, 머리카락을 3부 이하로 짧게 자르고 새까만 모자를 쓰던 시절이었다. 교복도 하복과 동복 단 두 가지였고, 특히 동복은 검정색에 차이나식 넥카라가 있던 형태였다. 먹을거리나 간식이 변변치 않은 그 때 학교 매점에는 유난히 나를 유혹하던 바싹한 튀김만두가 있었다. 입학 후 학교생활에 익숙하지 않았지만, 짧은 휴식시간에 열심히 매점으로 뛰어가 튀김만두 두어 개를 급히 사서 혼자서 맛나게 먹는 것이 새로운 학교생활의 기쁨이었다. 튀김만두는 중학교 초반 생활의 한 가지 기쁨으로 자리 잡은 추억의 조각이 되었다.
그런데 나에게만 그런 즐거움이 있었던 게 아니라 내 앞자리의 그 친구도 그 맛을 즐기고 있던 것이었다. 휴식시간에 어딘가를 바쁘게 다녀온 그 친구에게서 수업이 시작되자 익숙하고 고소한 냄새가 풍겨 났고, 빠스락 소리와 함께 몰래 숨겨온 뭔가를 오물거리며 먹는 것을 보았다. 수업을 마치고 내가 뭘 먹었냐고 묻자 그 친구가 슬그머니 주머니에서 꺼내 노란 튀김만두 하나를 전해주었다. 그것이 우리의 인연을 이어준 첫 고리였다.
서먹한 사이를 한순간에 녹여주고 함께 즐기는 친한 사이로 연결해 주었다. 튀김만두가 얼마나 맛있고 좋았는지 우리는 까만 교복 호주머니에 기름이 베여 얼룩이 지도록 함께 즐겼다. 그와 나는 은행알이 뺑뺑이로 정해준 고등학교 진학 배정으로 인해 각자 다른 고등학교로 가기 전 3년 동안 즐겁고 쾌활하게 우정을 쌓아 갔다.
중학교 시절에 즐기던 튀김만두 뿐 아니라 나의 고향에는 화교들이 특별식으로 판매하던 한국식 중화만두와 얇은 만두피에 당면과 부추가 몇 가닥이 들어있는 납작 만두가 유명했다. 그 중에도 태산만두와 영생덕은 군만두, 찐만두와 왕만두 삼총사로 한국식 중화만두로 유명세를 떨쳤다. 그 이후에는 새콤한 탕수 소스가 곁들여져 한 입에 쏙 들어가 자꾸 먹고 싶어지는 마성의 매력을 지닌 탕수만두와 후루룩 참기름과 함께 부드럽게 넘어가는 물만두 등으로 다양하게 발전된 메뉴로 추억의 연장선에서 성업하고 있다.
그리고 시장과 분식집에서 시작해 부추와 당면뿐인 소에 얇은 피를 덮어 만두를 만들고, 기름에 고소하게 구운 뒤 파와 고춧가루를 얹어 간장 양념장을 뿌려 먹던 납작 만두는 미성당이 떡볶이와 함께 유명했다.
다른 고등학교 진학으로 항상 볼 수는 없었지만 그 친구와 나는 그 후에도 만두를 좋아했고, 앞서 설명한 맛집들을 따로 또 같이 찾았다. 그러나 대학과 사회생활의 시작부터는 술이 다른 음식과 함께 즐겨지다 보니 만두는 가끔 찾는 별식이 되었다. 또 서로의 생활도 달라 제조업과 금융업으로 나눠져 만남도 줄었으며, 만두를 함께 즐길 수 있는 시간도 줄어들었다.
하지만 만두가 만들어준 우리의 우정은 끊임이 없었으며, 서로의 아픔과 문제는 언제나 함께 나누고 기쁨을 서로에 전하는 시간들이 이어졌다. 그래도 나는 가족과 친지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음식중의 하나로 별미의 만두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았으며, 만두를 먹을 때마다 친구의 생각과 맛을 느끼며 그 시절의 추억에 빠져들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조금은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요즘에도 그 친구와 나는 여전히 만나고 있지만, 먹거리가 다양해지고 풍부해진 메뉴로 인해 만두는 순위에서 뒤쳐져 있다. 그럼에도 시대의 변화와 함께 다양하게 발전하는 한국식 만두와 중국 및 일본식 만두들까지 우리는 여전히 좋아하며 즐기고 있음을 알고 있다.
고소했던 추억의 튀김만두로 연결되어 40년을 훌쩍 넘어 50년의 만남으로 이어져 온 그와의 우정은 아마도 만두의 긴 역사 속에 함께 한 부분을 만들어 온 것 같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 오르는 만두 찜 솥을 볼 때나 고소한 만두냄새가 나는 음식점을 지나갈 때면 나도 모르게 어느새 주문을 하고 있다. 그 순간 단짝 친구가 생각나며 그리워진다.
만두 때문에 그 친구가 생각나는지 친구를 생각하며 만두를 찾는지 중요치는 않다. 아무튼 서로의 삶이 달라 각기 다른 지역에 떨어져 살지만 그 친구에게 전화로 안부를 전하고, 다음 만남에는 만두를 함께할 것을 약속하며 아쉬움을 뒤로 한다. 고향의 만두가 그립고 친구는 끝없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