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무안공항 참사에 애경산업 불매리스트 옳은가

박진희 기자 승인 2025.01.07 10:12 | 최종 수정 2025.01.07 13:58 의견 0
▲ 산업국 박진희 부국장


비상계엄,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지며 격화된 국민감정이 무안공항 참사 이후 애경그룹을 겨누고 있다. 사고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제주항공 모 기업인 애경그룹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섣부른 불매운동은 이견을 부른다. 결과는 대립이고, 용두사미다. 들불처럼 확산됐던 일본제품 불매운동은 이미 잊혔다. 지난해 H&M은 역대 최고 매출을 찍었다. 이럴진대 잘못이 있는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이 진정한 벌이 될 수 있겠는가. 또한 분노의 화살이 잘못된 방향을 향했을 때 발생하는 또 다른 피해는 피해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2080치약, 스파크세탁세제, 루나, 애이지투웨니스 등의 제품 리스트가 인터넷 카페 등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애경그룹 계열사 제품 불매리스트다. 무안공항 사고로 인명피해가 발생하자 제주항공의 모 회사 애경그룹에 책임을 묻는 차원이다.

의견은 분분하다. 국토교통부의 관리, 감독 부실과 무안공항의 안전 수칙 미이행, 관리 부실 등이 원인일 뿐 제주항공도 피해 기업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이번 참사에서 인명피해를 키운 주된 원인 중 하나로 로컬라이저(방위각시설)가 지목된다. 설치에 사용된 콘크리트 둔덕을 두고 국내외 전문가들도 적절치 않다는 의견을 내고 있다. 활주로 길이와 로컬라이저 설치 위치는 적법했다. 콘크리트 둔덕이 인명피해를 키운 만큼 ‘콘크리트’라는 소재를 두고 법령 위반 여부를 따질 것으로 보인다.

국제민간항공기구 규정에 따르면 항공기의 착륙을 도와주는 시설인 로컬라이저는 항공기 충돌에 대비해 쉽게 파손되는 물질로 만들어져야 한다. 항공기가 어느 방향에서든 비행해 로컬라이저와 충돌 상황이 생겨도 쉽게 파손 돼야 한다. 지지 구조물은 45kN(4.6t)을 초과하는 힘을 견뎌서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은 국제 규정에 따르면 무안공항 콘크리트 둔덕은 법령위반으로 볼 수도 있다.

로컬라이저 설치 소재의 법령 위반 여부에 앞서 애초 철새도래지 3군데가 인접해 있는 무안공한 설립 위치 선정이 적절했냐는 지적도 있다. 버드스트라이크에 대비한 안전 관리는 제대로 이루어 졌는지도 따져볼 일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용갑 의원에 따르면 국내 15개 공항 중 조류탐지 레이더가 설치된 공항은 단 한 곳도 없다. 조류를 탐지할 열화상 카메라가 설치된 곳은 비교적 규모가 큰 김포공항·김해공항·제주공항 등 3개에 불과하다.

해외의 경우 일본 하네다 공항,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스히폴 공항, 싱가포르 창이공항 등이 조류 충돌 방지 시스템을 도입해 운영 중인 점과 대조적이다.

조류 충돌 예방 인력도 공항별로 차이가 크다. 인천국제공항의 인력 규모는 40명에 달하지만 이번 참사가 발생한 무안 공항은 4명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사고 당시 현장에는 조류 퇴치 인력이 1명만 근무하고 있었다.

버드스트라이크에 대한 안전 대책 미흡, 로컬라이저 설치 법령 위반 등의 조사가 채 이루어지기도 전에 애경그룹 불매운동 움직임은 아쉬운 대목이다. 다만 확인되지 않은 인터넷커뮤니티상에 정비인력 부족 등의 몇 줄 짜리 글이 불매운동 당위성을 부추긴다.

주요 불매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는 제품은 애경산업에서 만들고 있다. 비상계엄과 탄핵 여파로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올해 소비자 체감 경기는 지난해보다 더 어려울 것으로 예상하는 분위기다. 애경그룹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은 이러한 소비심리 위축에 기름을 부을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해야 한다.

애경그룹은 무안공항 사고로 주가 하락 등 여파로 고충을 겪고 있다. 지난 12월 3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제주항공은 전 거래일 대비 8.65% 내린 75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제주항공의 모회사인 AK홀딩 (12.12%)를 비롯해 애경산업 (4.76%), 애경케미칼 (3.80%) 등 애경그룹 관련 종목들도 일제히 하락했다. 주식가치 하락으로 인한 은행권 대출 담보 추가 제공 가능성이 커진다.

사고 주체인 제주항공 항공권 예약 취소는 잇달았다. 30일 제주항공에 따르면 전날 0시부터 이날 오후 1시까지 항공권 취소 건수는 약 6만 8000건(국내선 3만 3000여 건, 국제선 3만 4000여 건)으로 집계됐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제주항공이 이용객들에게 항공권을 팔고 미리 받은 선수금 규모는 2606억원에 이른다.

올해 들어 제주항공은 오는 3월까지 국내선과 일본·동남아시아 등 국제선에서 총 1900편의 항공편을 감축하겠다고 했다. 국내 항공사 중 비행기 1대당 월평균 가동시간이 가장 길다는 점과 이윤을 위해 무리하게 운항을 늘리다 안전을 소홀히 했던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지자 내린 결정이다. 대다수 이용자들이 염려하는 운항 안전성을 고려하는 것이 현 시점 최우선 과제로 판단한 것이다.

자사의 피해를 차치하고 제주항공은 사고 책임을 통감하고 수습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 사고 피해자를 향한 국민적 애도 감정이 클수록 제주항공과 애경그룹을 향하는 분노도 클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불매운동이 아쉬운 이유는 사고 원인과 분석이 제대로 나오기도 전에 분풀이 대상을 찾는 모양으로 변질되는 탓이다.

애경그룹에 대한 불매운동이 분풀이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조사를 통한 사고 원인 확인 후에도 늦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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