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이 질주하던 고교시절, 나와는 다른 세상을 꾸미고 있던 여러 무리들이 있었다. 군사의 한 무리를 뜻하던 군사 용어인 일진이 있었고, 이들은 일그러진 영웅으로 표현되던 남 다른 집단이었다. 그 속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진 리더를 장군이나 짱이라 부르고 있었다.
또 다른 집단에는 얄개 같이 엉뚱한 생각과 행동으로 사고를 만들어 내던 친구들도 있었다. 그런 다양한 모습으로 공부 잘 하던 친구, 운동 잘 하던 친구, 음악과 미술을 잘하던 친구들뿐 아니라 어찌나 조용하던지 보이지도 않던 친구들까지 각자의 특색을 지니고 학창 생활을 보냈다.
그리고 어떤 조합과 의미를 가지고 만났는지 알 수는 없지만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도 있었다. 그 가운데 나는 친구를 두루 넓게 사귀는 편이었고, 긍정적이고 명랑한 성격에 무난하게 학교생활을 보낸 편이었다. 나는 어찌하다 과학과 수학이 중심이던 이과를 택하게 되었지만 국어와 함께 문학도 좋아하는 편향적이지 않은 생활을 하며 지냈었다.
별 두각 없이 지낸 고교 생활이 성인이 되어 펼쳐진 다음 세상에 반영된 지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여전히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사회의 일원으로 살고 있다. 그래서 학교 시절의 친구 뿐 아니라 직장과 사회에서도 두루 관계를 가지며 친구들을 사귀었다.
이렇게 평범하게 무난히 지내온 나에게 누구에게나 나쁘고 무서운 암이라는 질병이 찾아왔고, 지금까지와 다른 형태로 가족이나 친구 및 지인들에 대한 따스한 격려와 위로의 느낌을 가지게 되었다. 그 때 받은 우정의 이야기 중에 수 많은 무용담과 사건을 가진 고교시절 한 무리의 짱 이었고, 불의를 유난히 싫어하던 한 친구에 대해 떠올려 본다.
그와는 고교시절에 많이 친하지는 않아서 지나치며 서로의 안부를 묻고 잘 지내냐는 인사를 주고받았던 그런 관계였다. 그 이후 사회생활을 하던 중 번잡하고 경쟁이 가득한 서울의 한 모퉁이에서 만나 처한 상황을 살펴가며 조금은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 갔다. 그러던 중 이리 저리 얽힌 문제의 오해와 이해를 거치면서 서로를 더욱 깊이 알게 되어 친밀하게 마음을 주고받았다. 또한 서울의 외로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관계로 발전되었다. 그 후에 나는 직장생활의 마감을 기하여 짧은 남쪽 여행을 준비했고 그가 기꺼이 동반해 주었다. 여행에서는 나에게 도움을 주었던 지인들과 선후배를 만났고, 그를 자랑스럽게 소개까지 하였으며 나름 의미 있는 여행이 되었다.
그리고 갑자기 나에게 다가온 폭풍우 전야와 같은 상황을 알게 될 무렵 그가 보여준 반응에 다른 친구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평소 어지간한 일에 무서움이나 두려움도 없었던 그가 나의 상태를 알고서 억수 같은 눈물을 쏟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조차 헤매며 마음 아파했다는 것이었다. 내 앞에서는 그까지 것 별거 아니니 걱정 말라며 다른 친구들과 함께 위로하던 그였기에, 도대체 나와 어떤 사이였기에 그렇게 슬퍼했는지 모두들 의아해했다. 그렇게 새롭게 알고 느껴진 그의 순수함과 여린 마음은 다른 친구들이 이해 못한 부분으로 나에게 더욱 다가왔다.
그 뒤 그의 위로는 끊임이 없었으며 용기를 북돋기 위한 노력을 쏟았다. 아찔하고 무시무시한 수술을 마치고 회복기일 때는 병문안을 온 그가 슬며시 내 손을 맞잡고서 잘 견뎌냈다며 말을전했고, 지속적으로 나의 상태와 체력을 몰래 체크하곤 했었다. 더불어 빙그레 웃음으로 전해준 그의 마음은 찐한 친구의 사랑으로 더 크게 느꼈다.
그렇게 무섭다는 암을 이겨내고 정복할 수 있었음은 물론 의료진과 최신의 의학 기술이라는 점에 첫 번째 점수를 부여한다. 희미하게 느껴지는 이상을 발견하고 명확화 하여 수술이란 방법을 통해 덩어리를 제거해 낸 너무나 근본적 의학 기술이었고, 항암 치료도 이 시대의 선물과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에 버금가는 것이 가족들의 무한한 희생과 조건없는 보살핌이었으며, 더불어 친구나 지인들의 넘치는 위로와 엄청난 기도의 힘이었다. 다시 내가 건강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들의 염려와 끝없는 사랑이었음을 생각하며 다시금 감사를 보낸다. 모자라고 나약한 나를 위해 보내준 뜨거운 마음과 기원들이 내 속의 고통과 상처를 걷어 내주게 하였고, 더 좋은 세상의 시간을 함께 가질 수 있게 해준 것이다.
다시 돌아가 그 중에도 그가 전해준 깊은 우정과 아픔을 견뎌 내고 극복하기를 바라던 간절함으로 나는 다시금 일상의 소중함을 맞이하게 되었다. 더불어 그가 보내준 귀한 약재들과 보양식 뿐 아니라 끝없는 위로의 마음이 나의 아픔도 가볍게 하였다. 지금도 주기적으로 나의 상태와 건강을 염려하며 배려를 해주는 그의 마음과 행동은 끊이지 않음에 나는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먼 시절 나와 달랐던 그의 과거는 영화 같은 한 조각으로 남아 있겠지만 강직한 행동과 유연한 마음이 좋아서 우리는 진한 인연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의 모습과 함께하는 동행이 있어 우리는 너무나 정겹다.
그는 내일도 여전히 안부와 소식을 전해오겠지만 오늘은 내가 먼저 그를 찾아 가 맛난 식사를 나누고 싶다. 앞으로도 그와 함께 서로의 강점은 나누고 약점을 보완해주며, 더 먼 길을 갈 것을 생각한다. 언제나 함께할 그를 생각하니 여전히 의지가 되고, 축제 같은 만남들에 설레임이 배가된다. 나는 여전히 행복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