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올 하반기 5대 시중은행에서만 169곳 영업점이 문을 닫는다. 시중은행의 무분별한 점포 폐쇄를 막기 위해 사전절차가 강화됐지만 이를 은행 자율에 맡기고 있어서 사실상 무용지물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신한은행은 지난 27일 갈현동·고척사거리·신도림동지점 등 44곳을 인근 영업점과 통폐합 했다. 지난달 2일에도 당산중앙·워커힐·논현역 등 13곳 지점의 문을 닫은 신한은행은 연말까지 14곳을 추가로 통폐합 예정이다.
KB국민은행은 지난 7월 역삼서지점, 구로디지털지점, 여의도IFC지점 등 28곳을 한번에 정리한 바 있다. 이달 들어서는 숭례문지점과 구리시 인창지점 등 2곳의 문을 닫았다. 국민은행은 연말까지 12곳을 인근 영업점과 통폐합 예정이다.
하나은행은 9월 한 달 간 한남동·퇴계로지점 등 9곳의 문을 닫았다. 내달 수원정자동을 인근 영업점과 통합하고 12월에는 장지동·원당·압구정PB센터 등 11곳을 추가로 정리할 예정이다.
우리은행은 지난 7월 대치북·동탄역·둔촌남지점 등 19곳을 대거 정리했다. 오는 11월에는 의정부외국인금융센터·금피외국인금융센터 등 4곳의 문을 닫는다.
농협은행은 지난달 31일 신도안·평택항지점 등 2곳을 폐쇄한 데 이어 이달 들어 2곳을 추가로 정리했다. 12월에는 마포중앙·일신동지점 등 9곳을 추가로 통폐합한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14일 발표한 ‘2021년 상반기 국내은행 점포 운영현황’에 따르면 올 상반기 90곳의 은행 점포가 문을 닫았다. 5대 시중은행이 하반기 이미 폐쇄했거나 폐쇄 예정인 점포 목록을 합산하면 올 한 해 폐쇄점포 수는 259곳에 이른다. 여기에 특수은행과 지방은행, 외국계은행를 더하면 지난해와 비슷한 규모로 점포가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은행 점포수는 모바일뱅킹 등 비대면 거래 확대와 점포 효율화 추진 등으로 급격하게 줄어드는 추세다. 지난 2018년 23곳, 2019년 57곳에 불과했던 점포 감소수가 지난해 304곳으로 급증했다.
문제는 은행들이 올 3월부터 강화된 ‘점포 폐쇄 관련 공동절차’를 따르면서도 감축세가 줄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권은 금융소비자의 접근성을 고려해 달라는 금융당국의 권고에 따라 지난 3월 점포 폐쇄 관련 공동절차를 마련했다. 점포 폐쇄 전 외부인 참관 사전영향평가 실시, 3개월 전 2회 사전통지 등이 주된 내용이다.
하지만 점포폐쇄 사전 절차가 은행권 자율로 운영되다보니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전영향평가에 참관하는 외부전문가를 은행이 직접 뽑고 있다. 인근 영업점과 통폐합시 사전영향평가를 면제해주는 예외조항도 문제다.
실제로 사전영향평가 시행 초기인 올 상반기에는 점포폐쇄 수가 줄어든 모습이었지만 하반기 들어서는 다시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점포폐쇄 공동절차가 사실상 제기능을 못한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이전보다 폐쇄 절차가 까다로워진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고객 방문율이 낮은 영업점을 유지할 수는 없다”며 “계획대로 점포를 줄이는 중”이라고 말했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도 “고객 불편을 최소하는 제도적 장치로 점포폐쇄 공동절차를 마련해 준수하고 있다”며 “점포폐쇄는 비대면으로 가는 자연스런 흐름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전절차 강화에도 은행 점포 수가 급격히 줄고 있지만 금융당국에서는 별다른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고 있다. 지난해 윤석헌 전 금감원장이 “은행이 급격히 점포수를 감축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지속적으로 우려 목소리를 냈던 것과 상반된 분위기다.
금감원은 올 상반기 은행 점포 현황을 발표하며 “점포운영에 대한 은행의 자율성은 존중하되 노령층 등 금융이용자의 불편이 최소화될 수 있도록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은행의 점포 운영현황 공시를 확대하고 은행 지역재투자 평가시 점포 감소에 감점을 부과하고 있다. 다만 간접적인 방식에 머물러 보다 실효성 있는 감독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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