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박민혁 기자] 대만 TSMC가 미국에 이어 일본 대규모 투자를 진행하면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강화에 시동을 건 삼성전자의 고민이 커졌다. 메모리반도체와 더불어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글로벌 1위에 오르겠다고 밝힌 삼성전자가 주춤하는 사이 TSMC가 파운드리 독주체제를 굳혔다는 평가다.
반도체 소재·장비 분야에서 최고 수준의 기술을 갖춘 일본과 TSMC의 밀착은 반도체 시장 전체는 물론 삼성전자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 TSMC, 美 이어 日에 공장..파운드리 독주체제 갖춰
14일 업계에 따르면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TSMC가 300㎜ 웨이퍼 생산라인을 일본 구마모토현에 건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지난 11일 보도했다.
새로운 공장에는 반도체 회로선폭 16나노(㎚, 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m)와 28나노 기술이 도입될 것으로 알려졌다.
TSMC는 지난 2월에도 186억엔을 투자해 일본 이바라키현 츠쿠바시에 R&D(연구개발) 거점을 신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일본 정부는 TSMC의 일본 내 R&D 거점 건설에 전체 사업비(370억엔)의 절반 정도인 190억엔을 지원할 것으로 전해졌다.
TSMC는 일본과 관계 강화를 통해 파운드리 시장 내 기술 경쟁력과 점유율 확대를 한번에 잡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300㎜ 웨이퍼 생산라인 검토 부지로 보도된 구마모토현에는 TSMC의 주요 고객사인 소니의 주력 공장이 있다. 스마트폰 카메라 등에 쓰이는 이미지센서 분야 세계 1위 업체인 소니는 그동안 상당 규모의 반도체 생산을 TSMC에 맡겼다.
일본 정부는 올해 반도체 생산 체제를 정비하기 위한 민관 공동사업도 만들 계획이다. 여기에 반도체와 디지털 인프라에 대한 산업정책을 입안할 ‘반도체·디지털 산업전략 검토회의’도 가동한다.
일본은 1980년대 반도체 강국을 재건할 기회를 모색하는데 있어 세계 최고의 파운드리 기업인 TSMC가 필요하고 TSMC는 중국 시장을 포기하는 대신 점유율 확대를 위해 일본과 손 잡았다는 분석이다.
■ 美마이크론 최첨단 D램 양산..대만에 공장 증설
미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이 최첨단 D램·낸드플래시를 선보이며 차세대 메모리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마이크론은 여세를 몰아 이달부터 대만에 첨단 D램 공장을 증설해 본격적인 점유율 확대에 나설 태세다.
마이크론은 지난해 세계 최초로 176단 낸드플래시 메모리 양산에 나섰다고 발표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176단은 세계 최고 수준의 적층 단수로 삼성전자가 업계 처음으로 쌓아 올린 128단보다 높다.
산제이 메로트라 마이크론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2일 대만 '컴퓨텍스 2021' 포럼 기조강연을 통해 1α나노미터(㎚·1㎚는 10억분의 1m) LPDDR4x D램의 대규모 양산을 발표했다.
국내 반도체 업계에서는 '삼성전자 등 한국 기업들이 투자 적기를 놓치며 마이크론에 추격을 허용하고 있다'는 우려섞인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 총수 부재 속 발등에 불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 수감 중인 가운데 삼성전자가 반도체 투자를 좀처럼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반면 경쟁업체인 대만 TSMC는 미국에 이어 일본까지 투자를 확대하며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1일 미국 신규 파운드리 공장 구축에 총 170억달러를 투자한다고 밝힌 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정부가 발표한 ‘K반도체’ 전략에서 오는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도 1위 자리에 오르기 위해 2019년 계획했던 파운드리 등 시스템 반도체 투자금액을 133조원에서 171조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하지만 연평균 35조∼40조원을 쏟아붓는 TSMC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메모리에서 후발주자가 따라올 수 없는 막대한 시설투자와 기술 개발로 점유율을 벌리는 '초격차 전략'을 펼쳐왔는데 최근 TSMC가 삼성의 초격차 전략을 파운드리에 그대로 적용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삼성전자가 이재용 부회장 부재와 지속되는 사법리스크 속에 대규모 투자계획을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고 해석한다.
일본과 미국을 품은 대만과 달리 ‘나홀로 기술력'으로 난관을 뚫어야 하는 상황에 이재용 부회장의 부재는 삼성에게 뼈아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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