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심 창업주 '라면왕' 신춘호 회장 별세..그가 남긴 어록은

장남 신동원 부회장 경영 승계

조승예 기자 승인 2021.03.27 10:58 의견 0
고 신춘호 농심 회장 [자료=농심]

[한국정경신문=조승예 기자] "배가 고파 고통받던 시절, 내가 하는 라면사업이 국가적인 과제 해결에 미력이나마 보탰다는 자부심을 가져본다..우리의 농심가족들이 나는 정말 자랑스럽다. 쌓아온 소중한 경험과 힘을, 자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순수하고 정직한 농부의 마음으로, 식품에 대한 사명감을 가슴에 새기면서 세계로 나아가자"-고 신춘호회장 저서 '철학을 가진 쟁이는 행복하다' 중.

신라면 신화를 일군 농심 창업주 율촌(栗村) 신춘호 회장이 27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신 회장은 노환으로 서울대병원에 입원 중이다 이날 오전 3시 38분께 지병으로 별세했다.

신 회장은 부친 신진수 공과 모친 김필순 여사의 5남 5녀중 셋째 아들이다. 롯데그룹 창업주인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둘째 동생이다.

1930년 울산에서 태어난 신 회장은 1954년 김낙양 여사와 결혼해 신현주(농심기획 부회장), 신동원(㈜농심 부회장), 신동윤(율촌화학 부회장), 신동익(메가마트 부회장), 신윤경(아모레퍼시픽 서경배회장 부인) 3남 2녀를 두었다.

1958년 대학교 졸업 후 일본에서 성공한 고 신격호 회장을 도와 제과 사업을 시작했다가 1963년부터 독자적인 사업을 모색했다. 당시 일본에서 쉽고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라면이 큰 인기를 끈 것에 주목했다. 1965년 농심을 창업한 이후 56년 동안 회사를 이끌어왔다.

농심 창업 이후 신라면, 짜파게티, 새우깡 등 국민적 사랑을 받는 제품들을 개발했다.

신 회장의 브랜드 철학은 확고했다. 그는 "스스로 서야 멀리 갈 수 있다"면서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라면은 우리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어록을 남겼다.

신 회장은 회사 설립부터 연구개발 부서를 따로 만들었다. 연구개발 역량 경쟁에서 절대 뒤지지 말라는 신념 때문이다. 1971년 새우깡 개발 당시 "맨땅에서 시작하자니 우리 기술진이 힘들겠지만 우리 손으로 개발한 기술은 고스란히 우리의 지적재산으로 남을 것"이라고 격려했다. 농심은 4.5톤 트럭 80여대 물량의 밀가루를 사용한 끝에 새우깡을 개발했다.

특히 신 회장의 역작인 신라면은 현재 전 세계 100여 개국에 수출돼 한국 식품의 외교관으로 인정받고 있다.

신 회장은 1992년까지 대표이사 사장을 맡다가 농심이 그룹 체제로 전환하면서 그룹 회장직을 맡아왔다. 최근에는 경영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지난 25일 주총에서 신 회장을 사내이사로 재선임하는 안건이 상정되지 않았고 신동원 부회장과 박준 부회장, 이영진 부사장이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농심은 신 회장의 뒤를 이어 신동원 부회장이 이끌게 된다. 신동원 부회장은 농심의 최대주주인 농심홀딩스의 최대주주다. 지난해 말 현재 신동원 부회장의 농심홀딩스 지분은 42.92%다.

장례식장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이고 발인은 오는 30일 오전 5시다. 장지는 경남 밀양 선영이다. 02-2072-2091

저작권자 <지식과 문화가 있는 뉴스> ⓒ한국정경신문 | 상업적 용도로 무단 전제, 재배포를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