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로 국내 기업의 타격이 불가피해지자 금융당국이 ‘금융 역할론’을 재차 꺼내들었다. 우선 4대 금융지주는 피해가 예상되는 기업 위주로 약 25조원 규모의 긴급 금융지원에 나선다.
8일 금융권에 따르면 KB·신한·하나·우리금융이 총 24조8000억원 규모의 금융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미국 상호관세 조치로 경영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중소기업·소상공인들의 신속한 경영 안정화를 위해서다.
김병환 금융위원회 위원장 주재로 7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금융 상황 점검 회의에 5대 금융지주 회장들이 참석해 있다. (왼쪽부터)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양종희 KB금융지주, 강석훈 KDB산업은행 회장. (자료=연합뉴스)
전날 KB금융은 주요 계열사인 KB국민은행을 통해 총 8조원 규모의 금리우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고 밝혔다. ▲중소·소상공인 대상 영업점 전결 금리우대 1조5000억원→3조원 ▲국가 주력전략산업 중소기업 한시 특별 금리우대 3조원→5조원 ▲수출기업 보증서대출 8400억원 공급 ▲자동차업체 대상 저금리 동반성장 상생대출 1500억원 공급 등이 주요 내용이다.
신한금융도 같은 날 10조5000억원 규모의 중소·소상공인 금융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중소·소상공인 대상 기업 금리우대 프로그램 6조4000억원 ▲수출기업 대상 특별 금리 인하 하이패스 쿠폰 3조원 ▲소상공인 신규 대출 지원 5000억원 ▲수출기업 신규 대출 6000억원 등이 포함됐다.
지난 3일 하나금융은 4대 금융지주 가운데 가장 먼저 총 6조원 규모의 긴급 지원책을 내놨다. 주요 관계사인 하나은행이 주거래 우대 장기대출의 3조원 증액에 더해 3조원 규모의 금리우대 대출을 신규로 추가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소상공인을 위한 별도 금융지원으로 최대 1.9%의 우대금리가 적용되는 3000억원 규모의 신규자금도 지원된다.
우리금융은 아직 구체적인 지원 계획을 밝히지 않았지만 수출기업에 대한 지원을 최우선해 비상경영태세로 전환을 선언했다.
우리금융은 지난 4일 ‘상호관세 피해 지원TF(태스크포스)’를 발족한 후 전날 임종룡 회장 주재로 관련 회의를 열었다. 시장안정, 고객보호, 리스크관리 등 3대 기조에 맞춰 위기에 대응하기로 했다.
임 회장은 “금융당국의 정책 기조와 대응 방향에 적극 협력하고, 현장에서 직접 파악한 기업고객들의 구체적인 애로사항과 니즈를 기초로 실효성 있는 지원방안을 수립해 달라”고 말했다.
이에 전국 우리은행 기업금융전담역(RM)들이 수출입 기업 등에 대한 현장 점검과 자금 수요 파악 등에 나선 상태다.
주요 금융지주가 앞 다퉈 중기·소상공인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은 전날 김병환 금융위원장의 협조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전날 ‘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5대 금융지주 회장을 불러 모아 “미국의 상호관세 부과로 국내외 경제·산업과 금융시장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상황에서 다음 정부 출범까지 남은 2개월여 동안 우리 경제와 금융시장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라며 “이럴 때일수록 금융이 그 본연의 기능을 보다 충실히 해 시장 안정을 유지하고 금융중개가 차질없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융당국이 금융 역할론을 꺼내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12월 20일 계엄 사태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으로 오르자 은행권에 ‘SOS’를 요청한 바 있다.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커진 상황에서 수출입기업에 대한 원활한 자긍공급을 당부하면서다.
이에 은행별로 수천억원 규모의 금융지원방안을 마련해 실행했다. 외화대출 만기연장 및 자금지원 확대, 수입신용장 대금 결제일 특별연장 및 연장기준 완화 등이 주요 내용이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미국 상호관세 여파로 기업들이 어려워지면 은행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리스크가 확대되지 않도록 긴급 자금 지원 등 조치가 필요한 상황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