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창현
승인
2024.12.23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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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이 단어는 보아도 들어도 그저 찡해지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동감할 것이다. 나의 어머니는 내가 느끼기에 참으로 많은 소질을 지니셨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철없고 이해가 가지 않지만, 나는 어린 시절 직접 어머니가 손으로 만든 옷(Handmade)과 실(Knit)로 짠 옷을 유난히 싫어했다. 어머니의 뛰어난 감각과 기술이었던 양장과 편물로 만들어진 ‘집표’ 브랜드였기 때문이다. 계절에 따라 나이에 따라 지속적으로 여러 형태로 만들어 주셨지만 친구들과 같이 유행하던 기성복을 사 입고 싶었기에 집표 옷을 입기 더더욱 싫었다.
어머니는 내가 어릴 때부터 양장과 편물에 재주와 취미를 가지고 계셔서 가족들과 주변 분들께 많은 옷들을 만들어 입혀 주셨다. 그러나 만든 옷은 친구들이 입고 있는 옷과 비교해보면 형태도 다른 것 같았고, 광고에 나오는 유행과 멋이 깃든 것도 아니어서 왠지 멀리하고 그만 입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의 옷은 바래기도 하고 헤져 자주 바꿔 입는 것도 부러웠다. 어려운 시절이어서 대다수가 큰 옷을 사서 형으로부터 물려 입고, 재질이 좋지 않아 잘 닳아서 새 옷을 사 입어야 한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또한 대부분 기성복의 천들은 나일론 계통이 많고, 자연적이지도 않은 인공 염색이 많았다.
내 옷은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아주 정갈한 형태로 내 몸에 맞고 친 자연적 소재로 실로 만든 셔츠나 와이셔츠 뿐만 아니라 겉옷도 많았다. 색상과 무늬가 깃든 옷들도 있었고, 사이즈가 바뀌면 니트 실을 풀어 다시 삶아 더 크게 짜 주시기도 하셨다. 심지어 포켓이나 모자가 달린 외투까지도 있었다. 나만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 다른 이웃으로부터 다양한 주문을 받아 편물 옷을 만들어 부업도 하셨다. 그래도 그 때는 친구들의 옷이 부러웠고, 내 의지대로 패션을 선택할 수 있는 고등학교 이후에는 뜻대로 기성복을 사 입는 경우가 늘어났다.
결혼을 하고 회사에서 일본과 관련된 업무를 하게 된 나는 어머니의 일본어를 필요로 하는 일이 생겼고, 그 때 대화 중에 우연히 어머니의 꿈을 듣게 되었다. 어머니는 학생시절부터 의상 디자인과 의상실을 하는 것이 조그만 꿈이었고, 옷 만드는 취미를 가지고 계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결혼과 아버지 내조로 그 꿈은 실현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그 즈음 나의 큰 아이가 돌이었고, 드레스를 어머니가 직접 만드시는 것을 보았다. 흰색의 드레스는 내가 그때까지 접하지 못했던 우아한 공주님을 위한 명품으로 느꼈고, 다른 사람들도 어머니가 직접 만드신 것에 놀라워했다. 이후 나는 의상과 디자인에 대한 나의 무지함과 어머니의 꿈과 실력도 알지 못했음에 후회와 자책을 했다. 어린 시절의 외투를 기억하고 다시 지어주신 옷을 받고 싶었지만 어머니는 점차 연세를 드시고 눈도 나빠져 더 많은 옷을 만드시지 못했다. 간간이 손자손녀들의 옷을 친 자연적이고 좋은 소재로 만들어 입히시는 정도였다.
미리 어머니의 꿈과 기술을 알았다면 물론 그 시절에는 철이 없어 듣지도 못했고 지원해드릴 능력도 없었겠지만, 기쁘게 만들어 주신 옷으로 여기고 자랑스럽고 감사하게 입었을 것이다.
이제 다시는 원해도 가질 수 없는 어머니의 ‘핸드메이드’를 그리워하며, 지금은 좋아하는 니트 옷을 입을 때마다 그 때 그 시절을 떠올립니다. 기쁜 마음으로 더 좋은 옷을 못난 자식에게 입히고 싶었던 어머니가 보고 싶고, 그립고, 사……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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