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희망가>에 이은 2부)
누구에게나 큰 의미없이 흥얼거리는 노래가 있겠지만 나에게 각인되어 있는 두 번째 노래 ‘늙은 군인의 노래’가 있다. 나 또한 군대 생활을 하고 전역을 했지만, 그리 늙지 않은 시기에 군대에 다녀왔기에 제목이나 가사 때문에 각별한 것은 아니다.
이 노래는 고(故) 김민기 선생이 작사, 작곡하고 양희은 선생이 부른 노래다. 김민기 선생이 카투사 군복무를 하던 중, 민주화의 요주의 인물로 찍힌 그의 입대를 알게 된 수사기관의 통보와 당시 통치자들의 명령으로 인해 한국 육군인 원통의 12사단 51연대 1대대 중화기 중대로 쫓겨나게 되었다 한다.
그가 옮겨간 원통은 누구라도 꺼려하던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살겠다’던 오지였고 험지였다. 그래도 외로움과 함께 인간미가 풍기던 그때 그 시절 군 막사에서 전역을 앞둔 선임하사가 김민기 병사에게 자신의 30년간 군복무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막걸리 2말을 청탁의 대가(?)로 받고서 노래를 짓게 되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1976년 겨울에 탄생한 ‘늙은 군인의 노래’다.
이 또한 나에게 각인될 만큼의 사안이나 사연은 아니었지만, 그저 까까머리 고교시절에 유행한 포크송과 함께 민중 저항의 가수였던 김민기 선생을 좋아했고 낭랑한 목소리에 풋풋한 미소를 띤 양희은 선생의 독특한 음색을 너무나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가수의 노래로 가사보다는 소리를 따라 각인되었던 노래였다.
군 입대 후 막연히 ‘늙은 군인의 노래’와 같이 젊은 청춘을 푸른 제복에 가두고 나라 사랑이란 큰 임무로 희생하고 있다는 동질감이 더 가중됐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군복무자들이 푸른 군복과 함께 젊은 청춘을 바친 회한과 아쉬움이 있었을 터, 그리고 막연하게 소박한 나라사랑의 마음을 담아 구전된 이 노래를 흥얼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을 호령하던 군부 정권은 ‘흙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 내 청춘’ 등을 패배주의적이고 나약한 가사로 문제 삼아 금지곡으로 지정했고, 다른 청춘들과 더불어 나 또한 더더욱 비밀리 가슴으로 부르며 더 깊이 뇌리에 각인됐다.
그렇게 금지곡으로 지정된 이 노래는 군을 제대한 후에도 독재에 저항하던 대학가와 노동현장에서 불렸고, 원곡의 노랫말인 군인이 노동자로 개사돼 대표적인 저항의 노동가로 불려졌다. 물룬 민주화 운동 이후에는 민중들의 소박한 나라사랑을 담은 곡으로 해석되면서 정부 행사곡으로도 사용되고 있으며, 현충일의 추념식에서 추모곡으로 불려지기도 했다.
군인의 나이를 따져봤자 30여년의 군 생활에 더해 예순을 넘지 않으므로 요즈음 세태로 보자면 그다지 늙었다고 볼 수 없다. 하지지만 군대를 하나의 생활 터전으로 지내오며 살아가는 군인들과 노동현장의 노동자들을 생각하며 이 노래를 적고 음미해본다.
<늙은 군인의 노래>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이 흙 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 내 청춘
아들아 내 딸들아 서러워 마라
너희들은 자랑스런 군인의 아들이다
좋은 옷 입고프냐 맛난 것 먹고프냐
아서라 말아라 군인 아들 너로다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 내 청춘
내 평생 소원이 무엇이더냐
우리 손주 손목 잡고 금강산 구경일세
꽃 피어 만발하고 활짝 개인 그 날을
기다리고 기다리다 이 내 청춘 다 갔네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 내 청춘
푸른 하늘 푸른 산 푸른 강물에
검은 얼굴 흰 머리에 푸른 모자 걸어가네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우리 손주 손목 잡고 금강산 구경가세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 내 청춘
이와 같이 어린 시절의 내 추억과 느낌에 담겨 지금도 흥얼거리는 ‘희망가’와 ‘늙은 군인의 노래’는 내게 있어 큰 의미없이 그저 좋아하기만 했지만, 글로서 다시 되새기며 표현하고 보니 감회가 다시금 새롭다. 나는 지금도 음악과 노래에 깊은 조예는 없지만, 항상 가까이 하고 있고 즐기는 편이다. 우리에게 음악이나 노래가 없는 시간은 없다. 또 언제 어디선가 다가올 누군가의 음악과 노래를 오늘도 우연히 무한한 상상에 잠겨 듣고 감상하고 있다. 각자에게 각인된 추억의 음악과 노래는 제각각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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