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코리아 디스카운트’.
한국 증시가 다른 선진국 시장보다 저평가 받는 현상을 뜻하는 말이다. 남북 분단에 의한 군사적 대치 상황, 기업 가치를 훼손시킬 수 있는 재벌의 지배구조, 수출 의존도가 높은 경제 구조의 특성 등 저평가 요인은 수두룩하다.
이제는 여기에 ‘12.3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현 정권의 후진적 리더십도 추가해야 할 판이다.
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비상계엄 사태 이후 이틀간 코스피와 코스닥은 각각 2.33%, 2.87% 빠졌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코스피에서만 이틀간 7244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다. 개인투자자들이 5035억원어치를 순매수해 외국인이 던진 물량을 받아내면서 그나마 ‘선방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이튿날 새벽 해제가 선언되기까지 약 6시간. 마치 영화와 같은 긴박한 장면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되자 가장 먼저 든 걱정은 “오늘 주식 시장 어떻게 되지?”였다.
한국거래소는 개장 1시간 30분 전인 4일 오전 7시 30분경에야 증시 정상 운영 여부를 결정했다. 그만큼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우려가 컸다는 얘기다.
다만 증시는 예상보다 충격을 잘 흡수했다. 계엄이 조기에 해제된 데다가 유동성 공급 등 시장 안정 조치가 단행되면서 극단적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비상계엄 사태가 남긴 상처를 쉽사리 돌이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난 3일 코스피는 막 2500선을 회복한 상태였다. 외국인이 모처럼 순매수로 돌아서며 사흘 만에 고지를 탈환했다. 하지만 비상계엄 사태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등을 다시 떠밀었다. 국내 증시에 대한 신뢰를 근원부터 흔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증명한 꼴이 됐다.
외국인 이탈의 직격탄을 맞은 곳은 금융주였다. 금융 대장주인 KB금융은 전거래일 대비 10.06%(9600원) 떨어진 8만5800원에 거래를 마쳤다. 다른 은행주들도 3~6%대로 예외 없이 주가가 떨어졌다.
이번 외국인 이탈에서 주요 표적이 된 금융주는 기업가치제고(밸류업) 정책의 최대 수혜주로 꼽혀 왔다. 정부 주도 밸류업 정책의 최대 수혜가 예상됐던 만큼 역설적으로 비상계엄 사태의 충격파를 가장 세게 맞았다.
금융주가 정부에서 주도한 밸류업 정책에 가장 잘 부합하는 업종인 만큼 현 상황에서 앞서 발표한 주주환원책을 원안대로 이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시장의 우려는 합리적이다. 오는 20일 밸류업 지수 리밸런싱(구성종목 변경)을 앞두고 금융주들의 편입 기대감이 높아졌으나 이번 계엄령 사태로 기대감은 우려로 뒤바뀌고 있다.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가치제고 지원방안, 이른바 밸류업 프로그램의 주목적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였다.
정부는 기업들이 자본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받아 성장하고 그 과실을 투자자들이 함께 향유하고 재투자하는 선순환적 자본시장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기업 스스로의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올해 초 증시 개장식까지 참석하며 밸류업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지만 이번 사태로 진정성을 의심받게 됐다.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왜 선포했고 그에 따른 후폭풍을 예상하지 못했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그 일은 벌어졌고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됐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어떻게 수습해 나갈 것인가다.
이제 사태는 주동자들의 책임을 묻는 탄핵 정국으로 흘러가고 있다. 당분간 불확실성 이 확대되겠지만 우리나라 시스템이 정상 작동되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다.
외신은 한국에서 비상계엄이 선포되고 6시간 만에 해제되는 역동성에 주목했다. 유력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전날 ‘윤석열은 사임하거나 탄핵 당해야 한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앞으로 몇 주 동안 한국에서 일어날 일은 미국과 중국이 영향력을 높고 경쟁하는 동아시아에서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고 짚었다.
우리는 이미 한차례 국가적 위기에서 후진적 리더십을 교체해 세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이번에도 합리적인 원칙과 기준에 따라 문제를 해결해 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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