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창현의 메모리 반추] 나의 노래 <1>

백창현 승인 2024.12.09 08:41 의견 1

어린 시절 얼큰하게 술을 드시고 흥겹거나 서글픈 기분으로 낡은 상을 두드리며 노래하시던 어른들이 생각난다.

왜 그렇게 술을 즐기며 좋아하고, 흥에 겨워 춤을 추며 노래를 하는지? 우리 민족의 특성이 춤과 노래를 좋아하는 민족이어서 그랬던가? 그래서 지금은 K-문화가 세계에 융성하고 춤과 노래를 뽐내며 열광의 도가니로 이끄는 건지도 모르겠다.

나도 음악과 노래를 좋아하며 그 중 진한 추억이 담겨있는 첫 번째 노래를 꼽자면, 그것은 오래된 ‘희망가’이다. 이 노래는 암울한 시절에 시대적 의지를 절절하게 희망과 꿈으로 물어가며 포기하지 않고 민중들이 노래했기에 나도 좋아하며 자주 흥얼거린다.

노래의 원곡은 영국 춤곡에서 유래돼 미국에서는 찬송가로 불렸고, 1910년에 일본에 전래되어 미스미 스즈코(三角錫子)라는 여교사가 이 곡에 보트 전복 사고로 죽은 같은 학교의 여학생들을 추모하는 본인의 자작시를 붙여서 ‘새하얀 후지산의 뿌리’(眞白き富士の根)라는 진혼가로 불리웠다고도 한다. 그래서 이 노래의 곡조에는 애절함이 담겨 있는 것 같다.

국내에선 기독교 신자 임학천이 작사를 하여 ‘이 풍진 세상을’이란 제목으로 박채선, 이류색 두 민요 가수에 의해 1921년에 발표돼 1930년대에 크게 유행한 대중가요의 고전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최초의 대중가수 채규엽(蔡奎燁)의 레코드로 취입되어 대중적으로 더욱 널리 전파되었다. 이후에 ‘이 풍진 세상을’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제목이 ‘희망가’로 바뀌었다.

일제 치하에 있었기에 참으로 암울한 노래 가사와 함께 나라 없는 민족의 설움을 표현하며 민중가요로 널리 얼려졌다고 본다. 즉, 암울한 시기의 설움을 담은 노래 가사와 함께 조금은 우울하고 비탄한 분위기도 있었으며, 다분히 식민지 시대의 암울한 사회를 반영하여 슬픈 느낌의 곡조와 함께 응어리 진 한의 정한이 깃들어졌다.

그 이후에도 민중들 사이에 꾸준히 전파되고 불리면서 비탄과 절망감 뿐 만이 아니라 진정한 행복과 희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 답하는 철학과 사유(思惟)의 음악으로서 60~70년대까지 풍미했다.

어린 나는 그 의미를 전부 알 수 없었지만 많은 이들이 먼 시선으로 희망을 갈구하는 표정으로 이 노래를 부르는 골 듣고 자랐으며, 어느 때부터는 한잔이 아쉽고 우울한 자리에서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로 시작하는 그 노래가 내 입에서도 흘러나왔다.

다시금 아련한 음률와 함께 ‘희망가’를 되새겨본다. 과연 지금의 나의 희망은 무엇이며, 그 희망은 과연 부귀와 영화인지? 그래서 다시 한잔 술에 잠겨질 때면 또 한번 희망을 생각해보고 꿈과 망각으로 실현되는지 상상하며 그 가사를 음미한다.

<희망가>
이 풍진(風塵)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다시 꿈 같도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담소화락(談笑和樂)에 엄벙덤벙 주색잡기(酒色雜技)에 침몰하야
세상만사를 잊었으면 희망이 족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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