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윤석열이어야 하나' 집중 조명하는 책 나왔다.. 보수와 진보 넘나든 필자도 눈길

초대 이래 문재인 현 대통령까지 실패한 권력 반면교사.. '왜 윤석열' 명쾌한 해답

강재규 선임기자 승인 2021.06.23 09:18 의견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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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을 부르는 대한민국' 책 표지

[한국정경신문=강재규 기자] 윤석열 신드롬 속에 서점가를 더욱 달굴 윤석열 책이 또 나왔다. 그러나 이 책은 기존에 나온 책들과 동렬에 놓이기를 거부한다.

무엇보다도 '왜 윤석열이어야 하는가' 하는 명제에 가장 명쾌한 해답을 제시하는 책이다.

정치부 기자로 시작해 보수와 진보 진영을 넘나든 필자부터 눈길을 끈다.

1987년부터 2017년까지 역대 대선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정치전문가와, 평검사부터 검찰총장에 이르기까지 10년 간 윤석열을 집중 취재한 익명의 법조 전문기자가 공저한 정치 평론집답게 입체적이고 다각적인 접근법과 분석의 틀이 무엇보다 돋보이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의 언과 행을 미국 대통령들과 사례와 대비하고있다.

왜 우리나라 대통령은 모두 실패했는가, 전임자보다 조금만 더 낮은 자세로,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국민과 소통과 공감을 나누기만 해도 성공할 수 있던 문재인은 왜 또 실패의 길로 접어들었는가, 그리고 퍼스낼리티와 리더십 분석을 통해 윤석열은 차별적인 대안이 될 수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 책 읽기의 즐거움을 배가한다.

시대정신은 실패한 정치의 반작용이다. 혈연 상 DJ-노무현을 이은 민주당 시즌III로 출발한 문재인 정권은 무능과 부패로 점철된 윤보선-장면의 민주당 시즌II를 거쳐 좌파정권 시즌I으로 귀결됐다.

평등과 공정과 정의를 내세웠지만 이념에 치우쳐 국민을 통합하는 데 실패하고, 정파적 이익에 사로잡혀 민주주의와 법치를 파괴했다.

촛불혁명이 입법 쿠데타 세력으로 변질된 것은 총선 압승이 부른 승자의 저주였다. 신구 권력을 가리지 않고 같은 저울로 공과 과, 죄와 벌을 잰 최재형과 윤석열이 돋보일 수밖에 없는 시대상황을 정권이 만든 것이다.

인물은 역경의 산물이다. 박정희가 김영삼을 키우고 전두환이 김대중을 키웠듯, 윤석열은 문재인의 좌충우돌 식 폭주가 키운 우리 시대의 영웅이다. 그는 잠룡으로 그치지 않고 대선을 완주할 수 있을까. 모든 대통령이 다 지나간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고 도약이냐, 좌절이냐 ― 문명사적 전환기에 선 대한민국을 글로벌 프런트 러너로 도약시킬 수 있을까.

거짓말과 공약 파기가 특징인 우리나라 정치판에서 윤석열은 얼과 말과 글과 꼴의 편차가 가장 적은 인물이다. 가정교육과 인성 덕분이다.

교과서적 인성으로 호랑이굴에서 호랑이 새끼를 잡아야 하는 권력투쟁을 버틸 수 있을까.
9수를 할 때 이래 특수부 검사로 이름을 날리고, 정치적 박해를 돌파하여 국민 지지도 1위에 오른 지금 이 순간까지 그를 승리로 이끈 것은 진심과 충심, 뱃심과 뚝심, 입심과 뒷심, 초심과 중심이었다. JP부터 이인제, 반기문, 정운찬 등 수없이 명멸한 충청권 잠룡들과 확실히 다른 캐릭터다.

이러한 인성과 자질을 바탕으로 그는 부챗살 리더십으로 아래를 아우르고, 우산 리더십과 무소 리더십으로 역경 속에서도 자신이 속한 조직을 이끌며 우리나라가 결여한 기본과 상식, 공정과 정의를 바로 세웠다.

그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는 앞으로 어떠한 리더가 될 것인지 짐작할 수 있는 또 하나의 힌트는 어린 시절 그의 사람 됨됨이와 청년 시절의 기개다. 부친에게서 이어받은 유전자다.

전쟁 통에 체계적으로 학위 코스를 밟지 못한 교수들을 위해 정부가 ‘구제 박사’라는 제도를 마련한 적이 있다. 논문만 통과되면 박사학위를 주는 간이제도였다.

연세대에서 경제학과 통계학을 학생들을 가르치던 사계의 권위자 윤기중 선생은 손쉽게 눈가림하는 구제 박사 제도를 거부하여 대한민국 지성계의 자존심을 세웠다. 그는 과연 명재 윤증의 후손다운 충청도 양반, 대쪽 선비의 전형이었던 것이다.

다음은 본문의 일부

윤석열이 헌법 책 한 권 손에 들고 맨몸으로 정권과 맞서고 있을 때 “불굴의 용기와 인내로 슬기롭게 역경을 돌파해온 아드님의 경험과 경륜을 통해 대한민국이 다시 살아날 길을 모색하는 책을 쓰고 있다”며 면담을 청하자 윤 총장 부친은 “언제든 좋다”고 흔쾌히 만남을 약속했다.
하필 시베리아 한파가 덮쳐 전국이 얼어붙었던 12월 16일 오후, 연세대 명예교수실 소파에 마주앉은 윤기중 선생은 한눈에도 선비의 기개가 느껴졌다. 석학의 명성에 걸맞게 논리는 정연했고, 대쪽 같은 외모와 달리 인품이 온후했다.
“고향에 있는 일가친척들도 궁금한지 가끔 전화를 해요. 걱정을 하는 분들도 있는데, 왜, 무얼 걱정해요? 우리 아이, 어려서부터 옳지 않은 일은 한 적이 없어요. 내가 잘 모르고 혼을 낼 때도, 자기가 잘못한 일이 없으면 종아리를 맞아도 잘못했다고 비는 법이 없었어요. 변명 한마디 하는 법이 없었고요. 나중에 내가 오해한 걸 깨닫고 자식한테 미안하다고 한 적도 있어요. 허허허.”

옛날을 회상하는 윤 선생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걱정하고 갔던 나까지 마음이 환해졌다.
“잘 지켜보세요. 그 아이는 옳지 않은 길을 갈 위인(爲人)이 아닙니다. 대통령 아니라 대통령 할아비라도, 권력이 뭐가 무서워요? 잘못한 일이 없는데. 걔가 다니는 대학에서 모의재판을 여는데, 검사를 맡을 학생이 없었대요. 서슬 퍼런 전두환 정권 때였거든. 현직 대통령한테 5.17, 5.18 책임을 물어야 하니까 다들 기피한 거지, 후환이 두려워서. 그 시절이 그런 시대 아니었소? 그런 상황 아래서도 우리 애는 검사 역할을 자원했어요.”
“그 당시에도 선생님은 걱정 안 하셨습니까?”
“왜, 나야 솔직히 걱정이 앞섰지. 걔가 우리 집 외동인데, 앞길이 구만리 같을 때 아니오? 전 대통령한테 사형을 구형하고 우리 애도 강원도로 몸을 피했어요. 나중에 들으니 절에 가서 스님들 공양미만 축내고 왔다더라고. 허허허. 혈기 방장한 학생들을 가르칠 때라 더 그렇게 느껴졌겠지만, 그때 시절이 칼날 위를 걷는 것 같았지. 나중에 전두환씨가 사람을 보냈어요, 그 댁 자제들도 내 제자거든. 만나서 그때 얘기를 했더니 그분이 그럽디다. ‘학교 다닐 때 젊은이들이 그런 기개도 없으면 큰일 못합니다.’”


지은이 김창영은

언론인 · 출판인. 성균관대학교와 동 대학원에서 정치외교와 국제정치를 공부했다. 한국일보에서 사회생활을 시작, 코리아타임스에서 기자와 논설위원으로 일했다. 6년 동안 일본 교도통신 월드뉴스 서비스에 영문 칼럼을 연재했다.
자민련에서 부대변인과 정세분석위원으로 일하며 1997년 대선 직전 DJP 공조의 아이디어를 냈다. JP가 내각제 약속을 파기한 뒤 김용환 수석부총재와 곧바로 탈당, 한국신당 창당 본부장을 거쳐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후보 선대위 부위원장을 역임했다. 지난 대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통령 후보 직속 동반성장위원회’ 자문위원장을 맡았다. 그 사이에 국무총리실 공보실장 겸 대변인으로 일했다.
2001년 11월,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을 초청 ‘9.11 테러와 한국의 국제정치적 선택’을 주제로 포럼을 개최하고, 이듬해 9월에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EM) NGO 포럼에 참석하여 세계평화에 대해 기조연설을 했다.
케네디 대통령의 청년 시절 유럽 취재일기를 번역한 『대통령이 된 기자(Prelude to Leadership)』, 워터게이트 사건을 특종 보도한 세계적 언론인 밥 우드워드가 부시 대통령의 아프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분석한 『부시는 전쟁 중(Bush at War)』 『공격 시나리오(Plan of Attack)』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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