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수 이더랩 대표
블록체인은 한때 ‘혁신의 상징’으로 불리며 금융, 의료, 공급망 관리 등 다양한 산업에서 패러다임을 바꿀 기술로 주목받았다. 현실은 다르다. 여전히 대중들은 블록체인을 실생활에서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그 효용성조차 의심받고 있다. 기술이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블록체인은 왜 널리 쓰이지 못하는 것일까? 그 이유를 분석해보자.
블록체인은 보안성과 투명성을 강화하는 데 탁월한 기술이다. 이를 기반으로 여러 산업에서 활용하고자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우선 공급망 관리 분야에서 기업들은 블록체인을 활용해 제품의 이동을 추적하고, 위조품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IBM Food Trust가 있다. 이는 블록체인을 활용하여 식품의 출처를 추적하고, 신뢰도를 높이는 프로젝트다. 월마트, 까르푸 등과 협력해서 적용하고 있다. 이런 기술은 글로벌 대기업이 활용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일반 소비자가 체감하기엔 아직 먼 이야기다.
의료 및 건강 기록 관리 분야도 블록체인이 기대를 모았던 영역 중 하나다. 블록체인은 의료 데이터 저장 및 공유를 혁신할 기술로 평가받았다. 미국에 Health Wizz 같은 서비스의 등장이 대표 사례다. 한국에서는 개인정보 보호법과 의료법 등의 규제로 인해 실제 도입이 어려운 상황이다.
전자 투표 시스템에서도 블록체인의 도입이 기대되었다. 이론적으로 블록체인은 투표 과정의 조작을 방지하고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미국에서는 Voatz라는 블록체인 기반 모바일 투표 시스템이 도입된 바 있다. 하지만 보안 문제로 인해 여러 주에서 도입이 중단되었다. 한국에서도 블록체인을 활용한 전자투표 도입이 검토되고 있지만 실험적 단계에 머물러 있다.
지식재산권 보호 분야에서도 블록체인의 가능성이 주목받았다. 블록체인은 창작자가 자신의 작품을 등록하고 소유권을 증명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NFT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관련 법적 문제들이 부각됐다. 이러한 이유로 실질적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블록체인이 실생활에서 널리 쓰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확장성 문제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같은 퍼블릭 블록체인은 초당 처리할 수 있는 거래량이 제한적이다. 특히 비트코인의 경우 초당 7건, 이더리움은 30건 정도밖에 처리하지 못한다. 이에 비해 비자(VISA)는 초당 2만4000건 이상의 거래를 처리할 수 있다. 블록체인이 전통 금융 시스템을 대체하려면 속도와 확장성이 대폭 개선돼야 한다.
기존 시스템과의 통합이 쉽지 않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기존 인프라와 블록체인을 통합하는 것은 비용과 시간이 많이 소요된다. 한국에서도 은행권이 블록체인 기술을 도입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지만 기존 금융 시스템과의 연결이 쉽지 않아 실질적인 서비스 적용이 지연되고 있다. 카카오의 블록체인 플랫폼 ‘클레이튼’도 여러 기업과 협력하고 있지만 사용자들의 실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는 변화는 거의 없다.
에너지 소비 문제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다. 비트코인과 같은 작업 증명 기반 블록체인은 엄청난 에너지를 소비한다. 이는 환경 문제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지속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한때 암호화폐 채굴이 유행했지만 전기료 상승과 규제 강화로 인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법적 불확실성 역시 블록체인의 성장에 제동을 걸고 있다. 블록체인이 아무리 보안성이 뛰어나더라도, 악의적인 목적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악용될 수 있다. 적절한 정책과 규제 환경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블록체인은 실질적인 활용이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한국에서도 가상자산 관련 법안이 계속해서 수정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디파이 서비스의 법적 지위를 명확히 하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블록체인을 기반으로 한 금융 서비스가 활성화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보안 문제도 블록체인의 대중화를 가로막는 요소 중 하나다. 블록체인은 높은 보안성을 제공하지만 이를 다루는 사람들의 행위가 신뢰도를 흔들고 있다. 해킹, 내부자의 사기, 취약한 스마트 계약 등은 블록체인의 근본적인 보안성을 약화시키는 주요 요인이다. 결국 문제는 기술이 아니라 이를 다루는 사람들에게 있다. 악의적인 의도로 블록체인을 활용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보안 위협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블록체인은 근본적으로 보안성이 뛰어난 기술이지만, 해킹과 51% 공격의 위협에서 자유롭지 않다. 보안이 강력한 만큼 이를 악용하려는 시도도 늘어나고 있다. 개인 키 분실과 같은 관리상의 문제도 존재한다. 한국에서도 NFT 및 디파이 플랫폼이 해킹을 당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했다. 개인 키를 잃어버릴 경우, 자산을 영구적으로 잃게 된다는 점도 보편적인 사용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블록체인이 실생활에서 대중적으로 쓰이기 어려운 이유는 많지만 그나마 실질적인 활용 가능성이 있는 분야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아이콘의 모바일 신분증이다. 한국에서 개발된 아이콘 블록체인은 정부 및 공공기관과 협력하여 디지털 신원 증명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이를 통해 사용자는 안전한 신원 확인이 가능하다. 공공기관 및 금융 서비스에서 활용할 수 있는 신뢰성 높은 인증 시스템을 제공한다. 이는 블록체인이 기존 시스템을 보완하고 실질적인 편의성을 제공하는 사례 중 하나로 평가된다.
또한 탈중앙화 인프라 네트워크 역시 블록체인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분야다. AI 시대가 도래하면서 서버 및 클라우드 컴퓨팅 파워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블록체인을 활용한 분산형 네트워크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Render Network는 사용자의 GPU를 활용해 분산 렌더링을 제공하는 블록체인 기반 프로젝트로 향후 더욱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결국 블록체인은 여전히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지만 실생활에서 정착되기까지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데 주목해야 한다. 단순한 ‘블록체인 적용’을 넘어 기존 시스템보다 효율적이고 사용자 친화적인 환경을 제공해야만 대중화가 가능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