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성균의 참견] 갈 길 먼 홍콩 ELS 사태, 은행 ‘밸류업’ 계기 삼아야

윤성균 기자 승인 2024.03.15 07:00 의견 0
금융증권부 윤성균 기자

[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이번주 홍콩H지수 ELS 대규모 손실 사태와 관련해 금융당국의 배상 기준안이 나왔다. 일괄 배상이 아닌 20~40% 기본 배상 비율에 투자자와 판매사 책임요소를 고려해 차등배상하는 것이 골자다.

금융당국은 앞서 40~80% 배상이 결정됐던 해외금리 연계형 파생결합펀드(DLF)보다는 낮 수준인 20~60% 범위에서 평균 배상비율이 책정될 것으로 내다봤다.

금융당국의 검사 결과와 배상 기준안 만을 손꼽아 기다렸던 투자자들은 어안이 벙벙한 상태다. ‘내 배상 비율은 어떻게 구하는 건가요?’, ‘예적금 가입 목적이었는데 어떻게 증빙하나요?’, ‘배상 받으려면 그냥 은행 연락을 가디라면 되나요?’, ‘계속 당국과 은행에 민원을 넣어야 할까요?’ 등 속시원한 답변을 들을 수 없는 질문들만이 되풀이되고 있다.

난감하기는 은행들도 마찬가지다. 금융당국은 자율배상을 통한 사적화해를 권고하고 있지만 배임 우려를 생각하면 쉬운 선택은 아니다. 은행들은 배상 기준안에 맞춰 비중별 시뮬레이션을 진행하면서 법률 검토를 병행하고 있다.

이미 홍콩ELS 피해자 모임을 중심으로 자율배상과 분쟁조정을 거부하는 움직임 마저 나타나고 있어 은행과 소비자간 집단소송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상황이 이런데 주식시장에서는 낙관론이 판치고 있다. 홍콩 ELS 배상이 이미 예전부터 시장에 잘 알려진 이슈이다보니 향후 은행주에 미치는 영향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란 전망에서다.

NH투자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추후 구체화될 배상안과 예상 배상 규모를 봐야 하겠지만 크게 보면 일회성 요인인 만큼 은행주 주주환원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며 “올해 충당금 부담이 작년보다 유의미하게 줄어든다면 ELS 손실 배상액 상당 부분은 충당금 감소로 상쇄 가능하며 결과적으로 연간 이익은 지난해 보다 크게 악화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대신증권도 “KB금융이 홍콩 ELS 관련 최대값을 배상해도 안정적인 자본비율로 인해 배상에 제약이 없을 것”이라며 “이에 대비해 버퍼을 충분히 확보된 바 관련 이슈로 배당 정책에 제한은 없다”고 짚었다.

증권사의 분석에 호응하듯 금융지주 주가는 배상 기준안 발표 후 오히려 치솟았다. 홍콩ELS 주요 판매사이기도 한 KB금융·신한금융·하나금융의 주가는 배상 기준안 발표 하루 뒤인 12일부터 전날 마감까지 각각 11.17%, 12.69%, 8.57% 씩 올랐다.

이는 투자자들이 금융지주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기 때문은 아니다.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의 후광 덕분이다. 은행주는 밸류업 프로그램의 대표적인 수혜 종목으로 꼽힌다.

그간 은행권은 역대급 실적을 달성하고도 투자자들에게 기업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 단기 성과위주의 조직문화와 기존 금융관행에 안주하면서 장기 성장비전을 충분히 보여주지 못했던 탓이다. 이는 다름 아닌 금감원에서 내놓은 분석이다.

박충현 부원장보는 지난 12일 진행된 은행부문 금융감독 업무설명회에서 “은행산업의 진정한 밸류업을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책임있는 혁신이 필요하다”며 “투명한 지배구조와 내부통제 확립을 통해 시장의 신뢰를 확보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홍콩 ELS 사태로 인해 잃어 버린 고객 신뢰 회복도 최우선 과제로 놓아야 한다. 당장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적을 수 있지만 신뢰를 잃은 고객이 영영 떠나버리는 것이 더 뼈 아픈 실책일 수 있다.

무조건적인 자율배상만이 고객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철저한 기준과 원칙을 바탕으로 배상을 처리해 억울함을 느끼는 고객이 없도록 해야 한다.

홍콩 ELS 사태가 마무리되기 까지는 갈 길이 멀다. 멀리 보고 은행산업의 진정한 밸류업을 고민할 때다.

저작권자 <지식과 문화가 있는 뉴스> ⓒ한국정경신문 | 상업적 용도로 무단 전제, 재배포를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