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창현의 메모리 반추] 화분과 잡초

백창현 승인 2024.12.30 09:41 의견 5

나는 봄이 되면 혹독한 그 긴 겨울을 잘 이겨내고, 아지랑이 피는 들이며 산에서 초록잎과 함께 보랏빛 꽃을 안고 가녀리게 홀로 피어나는 제비꽃을 좋아한다.

화창한 이른 봄날에 형광 빛 연초록이 눈부시게 아름다운 어느 출근 길이었다. 큰 길가의 화원을 지나며 형형색색 예쁜 화분들에 눈길이 멈췄다. 내가 좋아하는 제비꽃을 떠올리며 조금이나마 닮은 보라색 꽃을 가득 피어 오를 화분을 구입하고 사무실 창가에 놓았다. 삼색 제비꽃이라 불리는 팬지는 내한성이 강하여 방한 조치를 잘 해주면 노지에서도 겨울을 이겨낸다.

키가 작아서 흙을 북돋워주면 이른 봄에도 흰색, 노란색, 자주색을 기본으로 다양한 색상의 꽃을 피워서 화단에 많이 심는 봄꽃의 한 종류라 한다. 이러한 팬지들의 강한 생명력과 다양함에 마음이 더 끌렸고 정겹게 화분을 바라보았다. 파릇파릇한 이파리들 속에 뾰족이 꽃 봉우리들이 가득히 만발을 준비하고 있어, 설레는 맘으로 빠른 개화를 기대하며 정성스럽게 물도 뿌려주었다.

화창하고 따스한 햇살 가득했던 어느 날, 밤새 매서운 한파가 닥쳤다. 평소와 같이 만발한 개화를 기대하며 팬지 화분을 볕이 잘 드는 창밖에 두고 왔다. 하지만 지난밤 한파가 너무나 걱정돼 조급히 출근하여 화분을 창 안으로 옮겼다. 강한 생명력이 있다지만 따스한 온실에서 지난 겨울을 보내고, 이른 봄에 데려온 팬지가 그래도 염려스러웠다. 혹독한 어제 밤의 예측 치 못한 날씨의 변덕이 마치 우리 사이를 흔들어 놓는 것만 같았다.

간절한 맘으로 영양제를 줘가며, 살짝 언 것 같은 잎과 뿌리가 고통을 이겨내고 회생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나의 비전문적 관리와 그저 간절함 만으로는 부족했던지, 끝내 고개를 숙였다. 화분 속 팬지들은 못다 핀 꽃송이들을 떨구며, 되살아나길 바라던 나의 기대와 바람을 꺾어 버린 채 소리 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팬지들이 떠나간 화분을 쉽게 처리하지 못해 몇 날을 바라보며 화분에 가득한 흙을 어찌 처리해야 하나 이런저런 고민만 했다. 좀 더 따스하게 기온 변화가 없는 그 날이 오면 희망과 평화를 가득 담은 데이지를 데려올까 생각하며 그냥 창가에 팽개쳐 두었다. 바쁜 일과와 업무 속에 무심한 시간을 보내며, 흙만 남은 텅 빈 화분이 그저 햇살 받는 창가에 놓여있기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따스한 햇살이 반가워 창가를 서성이다 우연히 바라본 화분에 빼꼼하게 고개를 내민 클로버를 닮은 초록색 잡초가 보였다. 지난 며칠 동안 물도 주지 않고 무관심했던 화분에서 원하지도 않게 이름도 모르는 잡초가 자라 난 것이다. 잡초는 잡다하게 일어나 키우는 식물에 해를 주는 필요 없는 식물이자, 이름도 주기를 싫어 그냥 잡초로 일컫는다.

화분에 뜬금없이 나타난 잡초를 바라보다 이제 날씨도 좋아 졌으니 데이지나 옮겨 심을까 생각하며 창가에 놓아두었던 화분을 꺼냈다. 그리고 그 잡초를 뽑아 버리기 전에 아무런 보살핌도 없이 내게 찾아온 이 잡초의 이름이 궁금해 인터넷에서 찾아보았다. 그것은 내가 모를 뿐이었지 다양한 이름에 약효능까지 지닌 식물이라는 것을 알았다.

괭이밥이라는 식물명을 가지고 초장초, 시금초, 괴싱아산장초, 괭이밥풀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쌍떡잎식물 쥐손이풀목 괭이밥과의 여러해살이 풀로 이습, 지혈, 소염 작용까지 가진 약용식물이었던 것이다. 민간요법으로 날잎을 찧어서 옴과 기타 피부병, 벌레물린 데 바르기도 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전국에 양지바른 밭둑이나 길가에서 흔히 보여 그냥 이름없는 잡초라 생각했을 뿐이지 엄연한 식물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잡초는 그저 무관심하고 알려 하지 않았지, 그것들도 무언가에 쓸모가 있었고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저 아름답고 좋아하는 제비꽃을 닮은 팬지를 화분 속에 가둬 두고 바라보려는 나만의 욕심으로 향기를 남기고 떠난 빈 화분을 며칠 동안 방치해 둔 것이었다. 여기에 다시 다른 욕심을 채우기 전에 우연히 찾아온 잡초 아닌 괭이밥이 자라났으며, 의미 없는 풀이 아니라 새로운 느낌과 지식으로 나를 각성시켰다.

세상의 많은 일이 아마도 비슷할 것이다. 원하던 바가 이뤄지지 않고 실망할 때, 의미 없이 느껴진 무엇이 다가오고 그냥 지나친 일이 많았으리라. 그 무엇인가 다시금 되새겨보면 많은 것들을 담고 있었고, 아차 하며 놓치거나 잃어버린 경우가 허다했다. 하지만 조금만 더 관심을 가지고 살펴볼 수 있는 시간과 생각을 가졌으면, 다가와 스쳐간 많은 것들이 경험과 지식이 가져줄 수 있었을 것이고 새로운 의미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괭이밥이 그득차 있는 화분을 바라보면 행운을 주는 초록빛 클로버보다 더 아름답고 약용으로도 쓸 수 있다 하니 미소가 지어진다. 그 화분에 심으려 했던 팬지나 데이지 못지않게 예쁘고 새로움에 대한 기쁨도 느꼈다. 이따금 물을 주며 괭이밥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나의 이 흐뭇함을 괭이밥도 알려나? 세상에 모든 것들은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왔으며, 소중하고 귀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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