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금융지주 사외이사, 거수기 비판 면하려면
윤성균 기자
승인
2022.03.04 10:53 | 최종 수정 2022.03.04 13:47
의견
0
[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금융지주들이 3월 정기주주총회 시즌을 맞아 사외이사진 정비에 분주하다. 대략적인 윤곽은 나왔다. 매년 그랬듯 임기만료된 사외이사 대부분은 재신임을 받아 자리를 지킬 것이고 몇몇 새 얼굴이 등장할 예정이다.
2년의 임기가 만료됐다고 해서 곧장 교체되는 사외이사는 많지 않다. 최대 6년, 계열사까지 포함해 9년까지 꽉 채우는 일도 부지기수다.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지적도 없지 않지만 사외이사의 임기가 길다고 해서 비판할 일은 아니다. 그만큼 업권에 대한 이해력과 전문가로서 자질을 갖춘 이들이 사외이사로서 위용을 지키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충분한 임기 보장에는 사외이사의 역할을 강화하는 기능도 있다.
결국 이들 사외이사가 경영진을 돕거나 때로는 견제하면서 금융사들이 공정하고 투명한 경영활동을 이어가게 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사외이사의 독립성이 얼마나 보장되느냐다.
금융사들은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충분히 보장하고 있다면서 이사회의 시스템을 선전하기 바쁘지만 통계치만 놓고 보면 그렇지 않다.
금융경제연구소가 지난해 발행한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한 금융기관 지배구조 개선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 동안 5대 금융지주 및 6대 은행의 이사회 및 위원회의 결의 안건(3273건) 중 97.2%(3180건)가 반대 의견 없이 원안 그대로 가결됐다.
원안 그대로 가결된 3180건 중에서도 단 0.12%(4건)만이 반대의견이 있었을 뿐 99.88%가 참석이사 전원 찬성으로 안건이 통과됐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해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KB금융지주가 지난 3일 공시한 ‘2021년 지배구조 및 보수체계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KB금융은 지난해 총 13회 이사회를 개최했다. 총 20건의 안건에 대해 의결했지만 반대의견은 보류 1건에 불과했다.
하나금융지주의 경우도 지난해 8번의 이사회에서 총 38개 안건이 통과됐지만 사외이사의 반대의견이 전무했다.
회사가 상정한 안건에 대해 꼭 반대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에 대해 KB금융 이사회사무국 관계자는 “사전 설명회를 통해 안건에 대한 충분한 논의가 이뤄지기 때문에 본 회의에서는 안건이 가결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원안에 대해 사외이사의 수정의결, 조건부 찬성, 보류 등 사소한 반대 의견 조차 없는 것은 분명 아쉬운 대목이다. 대주주와 경영진에 대한 감시와 견제가 사외이사제도의 도입 취지임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일각에서는 사외이사의 견제·감시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노동조합이 추천하는 사외이사를 선임하는 ‘노동이사제’가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노동자의 경영 참여는 또 다른 층위에서 논의해야 할 문제지만 사외이사 구성의 다양성이라는 측면만 보자면 가치가 있다.
최근 화두로 떠오른 여성 사외이사 선임의 의무화도 다양성 측면에서 지켜볼 만한 체크 포인트다.
사외이사제도 개선 방향에 대한 다양한 논의가 필요하겠지만 과도한 법제화는 경영 간섭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자정작용이 선결돼야 하고 그것이 사외이사제도의 존재 의의이기도 하다.
특히 올해는 주요 금융지주 회장들의 임기 만료가 예정돼 있어 사외이사의 역할이 더욱 부각될 전망이다.
내달 재정비되는 사외이사진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지식과 문화가 있는 뉴스> ⓒ한국정경신문 | 상업적 용도로 무단 전제, 재배포를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