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윤희 산업국 부장
[한국정경신문=임윤희 기자] ‘내 정보는 안전하다’는 믿음이 완전히 무너졌다. '디지털 신뢰'에 대해 깊이 생각한다. 정부라도 나서서 안전망 구축에 만전을 다 해야 할 때다.
SK텔레콤(SKT) 유심 해킹 사태는 대한민국 디지털 인프라의 허술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기술적 사고가 아니라 우리가 그동안 안일하게 믿어온 ‘디지털 신뢰’의 허상을 산산이 부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설마 내게 그런 일이”라는 자기위안이 아니라, 정보보호와 신뢰의 기준을 근본부터 다시 세우는 일이다.
유심은 더 이상 단순한 통신용 칩이 아니다. 이 작은 카드 한 장에는 전화번호, 문자, 통화내역, 금융 인증, 각종 본인확인 정보, 심지어 모바일 신분증까지, 디지털 일상의 핵심 정보가 모두 담겨 있다.
은행 앱을 켜고, 정부24에서 서류를 발급받고 택시를 부르고 건강보험을 확인하는 모든 순간에 우리는 유심을 거친다. 유심은 곧 ‘디지털 신분증’이자 ‘일상의 열쇠’다.
이번 해킹으로 이 열쇠가 해커에게 복제되고 내 정보가 외부로 유출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유심이 뚫리면 해커는 내 명의로 휴대폰을 개통하고 내 인증서로 금융거래를 시도한다.
심지어 내 이름으로 범죄에 악용할 수도 있다. 실제로 일부 피해자는 자신의 명의로 개통된 휴대폰을 통해 소액결제 피해와 스미싱, 금융사기 등 2차 피해까지 겪고 있다. 해킹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SKT는 해킹 사실을 뒤늦게 알렸다. 피해 범위와 재발 방지책에 대한 설명도 부족했다.
정보 유출 사고 이후 SK텔레콤은 고객들에게 유심보호서비스 가입 권고와 함께 유심 무상 교체 등 후속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하지만 SK텔레콤 망을 이용하는 가입자 수가 알뜰폰을 포함해 2500만명에 달하는 상황에서 SK텔레콤이 당장 자체 조달 가능한 유심은 100만개 수준이다. SK텔레콤은 6월까지 500만개를 추가 조달한다고 밝혔지만 여전히 물량이 부족하다.
필자 역시 SKT를 쓰고 있다. 아직 유심 교체를 받지 못해 불안감 속에 유심 교체 대기표만 손에 쥐고 있다. 유심 보호서비스에 가입하려 해도 대기 인원이 17만 명, 예상 대기시간이 25시간이 넘는다는 안내만 반복된다. 해킹 위협 속에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유심 해킹 사태 질타 받는 유영상 SKT 대표이사 (자료=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 SKT의 대응은 더욱 실망스럽다. 회사는 무상 교체 서비스와 보호서비스를 내놓았지만 현장에서는 재고 부족과 접속 지연, 안내 미흡 등으로 고객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온라인 환경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층은 정보 사각지대에 놓여 유심 교체와 보호서비스 접근조차 쉽지 않다. 기업의 위기관리 능력, 정보 공개의 투명성 고객 보호의 기본이 모두 흔들렸다.
이제는 통신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전체가 디지털 인증체계와 개인정보 보호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점검해야 할 때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편리함만 쫓았다.
‘원스톱 인증’, ‘간편 본인확인’, ‘모바일 신분증’-이 모든 혁신이 결국 한 장의 유심에 의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기반이 허술하다면 대한민국의 디지털 혁신은 모래성에 불과하다.
기업은 위기 발생 시 피해 사실을 신속하게 공개하고 투명하게 소통해야한다. 또한 실질적인 재발 방지책을 내놓아야 한다.
정부는 인증체계와 개인정보 보호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점검하고 보안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소비자 역시 자신의 정보가 어떻게 쓰이고 어떤 위험에 노출돼 있는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SKT 유심 해킹 사태는 우리에게 묻는다.
“이대로 괜찮은가?”
이제는 안일한 대답이 아니라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으로 ‘디지털 신뢰’를 다시 세워야 할 때다. 그것이 이번 사태가 우리 모두에게 남긴 가장 값진 경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