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투자국 윤성균 차장
[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금융위원회가 은행 점포 폐쇄 가이드라인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간 ‘은행 점포 폐쇄 공동절차’의 예외 조항을 꼼수로 활용해 점포 폐쇄를 이어온 은행권의 ‘자업자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전날 보도설명 자료에서 “점포 폐쇄 관련 개선방안의 구체적인 내용과 발표 시기는 확정된 바 없다”면서도 “현재 은행의 점포 폐쇄에 따른 금융소비자의 불편 및 피해 최소화를 위해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말은 조심스러워도 개정은 기정사실화된 모양새다.
이번 움직임은 지난해부터 다시 가속화된 은행권의 점포 통폐합 흐름에 대한 당국의 제동 걸기로 해석된다.
은행권 점포 폐쇄가 급증하면서 금융소외계층의 불편이 커진다는 지적에 따라 금융당국이 ‘은행 점포 폐쇄 공동절차’를 도입한 것이 2019년 일이다. 점포 폐쇄 전 사전영향평가 시행, 평가 결과에 따른 대체 수단 운영 등이 골자다. 2023년에는 절차를 더욱 강화한 ‘은행 점포 폐쇄 내실화 방안’을 내놨다. 사전영향평가 강화, 사후 평가 실시, 관련 경영 공시 확대 등이 추가로 포함됐다.
두 차례 강화된 공동절차에도 불구하고 은행권의 점포 폐쇄는 멈추지 않았다. 은행 점포 폐쇄 내실화 방안이 나온 2023년 4월 이후 지난해 12월까지 5대 시중은행의 점포수는 3957곳에서 3843곳으로 114곳 줄었다. 이 중 공동절차에 따라 사전영향평가, 사후평가가 이뤄진 경우는 손에 꼽는다. ‘도보 생활권(반경 1㎞) 내 점포 합병’의 경우 사전영향평가 등 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 덕분이다.
실제로 5대 시중은행은 작년에만 총 113곳 점포를 없앴다. 97곳은 반경 1㎞ 내 영업점이 있다는 이유로 절차를 생략했고 별다른 대체 수단도 마련하지 않았다. 일부 은행이 실제 위치가 1㎞ 이내가 아님에도 지도상 위치를 조정해 1㎞ 이내로 계산하는 등 꼼수를 부린 사례도 있었다.
영업권이 중복되고 대체 수단 마련이 쉽다는 이유로 도심 지역 점포들이 주로 없어지면서 고령자, 장애인 등 금융 취약계층의 접근성은 더 악화됐다. 도보 생활권이라지만 1㎞는 이들에게 너무 먼 거리다.
이제 금융당국은 사실상 ‘도보 생활권 예외 조항’을 없애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 당장 은행권에서는 “이러면 점포 폐쇄가 불가능해진다”며 한숨 소리가 나온다.
점포 폐쇄 공동 절차는 원래 은행권의 자율 규제 성격이다. 금융당국은 은행의 점포 폐쇄를 막기 위해 법률로 강제하거나 제재하는 대신 공동 절차라는 자율 규제의 틀을 유지했다. 은행 스스로가 사회적 책임을 고려해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것이라 기대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은행권의 단기적 효율 추구가 결국 역풍을 맞은 셈이다.
은행 점포는 단순한 영업 창구가 아니다. 특히 디지털 금융에 취약한 계층에게는 생계와 직결된 ‘금융 인프라’다. 물론 점포 운영의 효율화는 필요하다. 하지만 효율만 외치다 결국 더 강한 규제를 자초하게 된 것은 아닐까. 은행들이 진정한 자율을 유지하려면 단기적 이익과 장기적 신뢰 사이의 균형을 고민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