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임윤희 기자] "골프장이 '황제 영업'을 계속하면 소비자들은 해외로 떠날 것이다. 이미 그 조짐이 뚜렷하다."
서천범 한국골프소비자원 원장(한국레저산업연구소 소장)은 최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국내 골프장의 고질적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지난 3월 7일 국회에서 열린 '골프장 갑질 근절을 위한 토론회'에서 주요 발제를 맡았던 서 원장을 만나 국내 골프 산업의 현실과 미래에 대해 들어봤다.
서천범 한국골프소비자원 원장 (사진=임윤희 기자)
▲ 국내 골프장 그린피와 부대비용이 급격히 인상된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국내 골프장은 수요 대비 공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골프장 사업자들이 담합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가격이 올라가는 구조다.
코로나19로 골프 수요가 폭증하자 골프장들이 이를 기회로 삼아 가격을 대폭 올렸다. 대중형 골프장의 주중 그린피는 31.8%, 주말 요금은 23.1%나 인상됐다.
골프장들이 '비용 상승' 핑계를 대지만 실제로는 2020~2022년 사이 2조 원의 추가 영업이익을 올렸다.
▲ 대중 골프장이라면서 실제로는 상류층 전유물처럼 된 현상을 어떻게 보는가?
평일 라운딩 한 번에 1인당 30~40만 원이 드는데, 이게 어떻게 대중 스포츠인가? 골프장은 대중 스포츠라면서 가격은 상류층 전유물 수준이다.
이용료를 낮추자는 말만 나와도 업계는 손실 타령을 한다. 실상은 매출과 영업이익 모두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
▲ 코로나19 특수 이후 골프장 업계에 위기설이 돌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자초한 결과다. 코로나 시기에 골프장들이 가격을 무리하게 올리고 서비스는 오히려 떨어뜨렸다. 소비자들은 '봉'이 된 것이다.
해외 여행이 재개되자 골퍼들이 일본, 동남아 등으로 떠나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제주 골프장의 경우 지난해 내장객 수가 전년 대비 2.8% 감소했다. 특히 타 지역 골퍼와 외국인 내장객은 7.8%나 급감했다.
▲ 캐디·카트 강제 이용 등 끼워팔기 관행은 사라질 수 없나?
골프장들이 수익 극대화를 위해 소비자 선택권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 골프장 대다수가 캐디 동반을 사실상 강제하고 있다.
캐디 선택제가 도입된 곳은 41% 정도에 불과하다. 1팀당 15~16만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카트도 마찬가지다.
카트 1대당 투자비는 1500만 원 수준이다. 반년이면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음에도 10만 원 이상의 이용료를 받고 있다.
운동을 목적으로 온 골퍼들이 걷지 못하고 전동카트만 타야 한다는 것은 골퍼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 골프장 이용 표준약관 미준수, 과도한 위약금 등 소비자 피해가 지속되는 원인은 무엇인가?
골프장 업계의 자정 노력 부족과 정부의 관리·감독 소홀이 주된 원인이다. 현행 표준약관이 있지만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예약 취소 시 과도한 위약금을 부과하거나, 식음료 가격을 공시하지 않는 등 소비자 권리가 침해되고 있다. 이에 대한 제재나 감시 체계가 미흡한 것이 현실이다.
▲ 해외 골프장과의 경쟁에서 국내 골프장이 밀리고 있는 이유는?
이미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고 있다. 일본 골프 투어는 항공권 포함 3박 4일 패키지가 80만 원대다. 제주도 골프 1박 2일 비용과 비슷한 수준이다.
동남아 골프 패키지 역시 제주보다 저렴한 경우가 늘고 있다. 게다가 서비스 품질도 차이가 난다. 해외 골프장은 소비자 중심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반면, 국내 골프장은 여전히 공급자 중심의 서비스에 머물러 있다.
▲ MZ세대의 골프 입문, 스크린골프 등 새로운 트렌드가 골프장 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가?
MZ세대의 골프 입문은 골프 인구 저변 확대에 긍정적이다. 그러나 골프장들이 이들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MZ세대는 가성비와 합리적 소비를 중시한다. 그런데 국내 골프장은 여전히 과거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스크린골프 등 실내 골프 산업이 성장한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젊은 골퍼들은 디지털 예약, 투명한 가격 정책, 합리적인 서비스를 원하는데 골프장들은 이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 골프장이 진정한 대중 스포츠로 거듭나기 위해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점을 꼽는다면?
첫째, 그린피 인하다. 자율 규제와 정부 관리 강화를 통해 합리적인 가격 정책이 필요하다. 둘째, 캐디·카트 선택제 의무화다. 소비자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골프장 이용 표준약관 개정으로 소비자 권리를 강화해야 한다.
일본과 같이 법인카드 골프 비용의 손비 불인정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접대 골프가 그린피 상승의 주요 원인이다. 이를 제한하면 가격 안정화에 도움이 될 것이다.
▲ 한국골프소비자원 원장으로서 국내 골프 소비자들이 가장 크게 체감하는 고질적 불만은?
국내 골프 소비자들이 가장 크게 체감하는 불만은 불합리한 가격 정책과 선택권 제한이다. 그린피 폭등, 캐디·카트 강제 이용, 과도한 식음료 가격 등이 대표적이다.
또한 예약 시스템의 불투명성, 위약금 문제, 서비스 품질 저하 등도 주요 불만 사항이다. 우리 원은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노캐디·캐디선택제 확산', 'Best/Worst 골프장 설문', '음식값 실태조사'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 향후 한국골프소비자원이 '골프 대중화'와 '소비자 권익' 실현을 위해 중점적으로 추진할 사업과 비전은 무엇인가?
우리 원은 앞으로 세 가지 방향에 중점을 두고 활동할 계획이다. 골프장 서비스 평가 시스템을 구축해 소비자들에게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겠다. 더불어 골프장 이용 표준약관 개정을 위한 정책 제안과 캠페인을 강화하겠다. 마지막으로 골프 대중화를 위한 제도 개선 활동을 지속적으로 펼치겠다.
골프장이 소비자와 상생하는 방향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더 큰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진정한 대중 스포츠로 거듭나기 위한 골프장 업계의 자성과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