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아는 것 같으면서도 현란한 발전상에 대해서는 무지(無知)에 가까운 나라.”
“1955년 이후 비동맹 제3세계권의 맹주로 국제정치의 Strong Pwer임에도 한국의 주요 관심권 밖에 있는 나라.”
“아세안(ASEANㆍ동남아시아 국가연합)의 핵심국가로 중국ㆍ인도를 추월하는 잠재력을 갖추고 있지만, 우리에겐 관광지 정도로 생각되는 나라.”
눈치 빠른 사람은 짐작했겠지만 인도네시아 얘기다. 한국과는 올해 수교 50주년이다.
2억7700만 명의 인구규모 세계 4위에 지난해 한국이 사실상 마이너스 성장인 2.6%의 경제성장률에 머물렀을 때 5.3% 성장이라는 기염을 토했다. 코브라와 우랑우탄이 사는 밀림, 신혼여행지 발리, K-POP을 소비해주는 나라쯤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충격적인 수치다.
실제 인도네시아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글로벌 공급만 재편과정에서 새로운 주역으로 급부상하는 등 인도차이나의 맏형으로서 동남아시아의 경제성장을 이끄는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인도네시아 경제산업의 60%을 담당하며 상공업의 핵심 벨트로, 또 교육의 메카로 평가 받고 있는 인구 4800만 명의 서자바(West Jawa) 주 모하마드 리드완 카밀((Mochamad Ridwan Kamil)주지사를 7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서자바주는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에 인접하고, 최근 국제공항, 스마트 도시 건설 등으로 경제수도 역할을 하고 있어 흔히 한국의 경기도에 비유된다.
6일 저녁 늦게 한국에 도착, 서자바주와 자매결연를 맺고 있는 충청남도, 경상북도, 울산광역시에 이어 외교부 등을 잇따라 방문하는 빡빡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그의 모습은 밝았다.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답게, 또 실용주의적 성향의 젊은 지도자답게 그는 “서자바주에는 많은 한국기업들이 진출해 있다”며 “이번 방한을 통해 충남 경북 울산시와 실질적인 논의에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고 예상대로 한국과의 경제협력 문제를 먼저 화두로 꺼냈다.
“우선은 경제협력이 군사적 협력이나 다른 협력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한-인니는 상호 보완 관계…현지 대학 설립은 한국 인력난 해소에 대안이 될 것
리드완 카밀 주지사는 특히 서자바주의 경쟁력으로 "자동화 관련 기기산업과 친환경 관련 사업"을 제시했다. 세계 최대 보유의 지열 에너지는 천연자원이 없는 한국에게 매력적인 포인트가 될 것이며, 풍부한 자원과 산업인프라는 한국 제조업과 만날 때 큰 시너지효과를 낼 것이라는 설명이다.
“자동차, 항공, 그리고 KF21 전투기 및 잠수함 등 방산 분야에서 이미 한국과 깊은 협력이 진행되고 있다”며 “특히 현대차와의 교류는 큰 성과를 거두고 있다.”
현대차의 서자바주 공장은 현재 연 2000대를 생산하고 있는 데, 지금 당장의 시장 수요가3000대로 추정되는 등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 당분간 계속 될 전망이다.
이와 관련해 그는 지금 “개인적으로 집에서 갖고 있는 한국 차만 3대”라며 한국차에 대한 애정을 밝혔다.
이처럼 그는 친한(親韓) 내지 지한(知韓)적 성향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이번으로 12번째 한국 방문이라는 그는 "자바 지역의 투자자들은 싱가포르, 중국, 일본보다 한국에 더 호감을 갖고 있다”고 소개하며 “이 같은 현상의 배경으로 K-Pop, 드라마, 영화 등 한국 문화 콘텐츠를 경험한 인도네시아안들의 정서적 친근감이 크게 기여한 것 같다”고 웃었다.
그는 또 인구감소로 어려움이 예상되는 한국의 미래 상황을 정확하게 지적하며, "대학이 몰려있는서자바주 자와바랏에 대학을 짓고 한국 기준에 맞는 교육을 마친 인재들을 한국으로 수출하는 방안을 한국측이 검토했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 한국의 많은 산업이 만성적인 인력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 만큼, 이 같은 구상은 좋은 대안 되지 않겠냐는 주장이다.
■ 인니, 국제정치경제적 역할 증대 "미중대립에 낀 한국에게는 돌파구가 될 수도"
"인도네시아는 현재 G20에서 16번째이나 2045년에는 4위까지 올라갈 것이라 예상한다."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 원자재인 니켈의 세계 최대 보유국이자 생산국인 인도네시아의 국제적 위상은 전기차 보급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면서 더욱 커지고 있다.
리드완 카밀 주지사는 "글로벌 무대에서 인도네시아의 경쟁력는 더더욱 높아질 것”이라며 "인도네시아는 현재 아세안 의장국으로서 글로벌 사회에서의 목소리도 점점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인도네시아는 정치적으로는 중립 노선을 걷고 있지만 "그것이 얌전하다는 뜻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지난해 6월 본격적으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중재에 나서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메시지를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전달하는 등, 적극적인 행동을 보이기도 했다. 리드완 카밀 주지사는 "(이런 적극적인 행보는) 인도네시아가 중립적이지만 얌전한 국가는 아니라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비동맹 외교'는 그동안 인도네시아의 외교 활동을 상징하는 키워드였다. 어느 한쪽과 동맹을 맺지 않는 자유로운 외교 활동은 국제정치사회에서 인도네시아의 주요 특징이었다. 이러한 중립적 스탠스는 국제사회에서 인도네시아의 차별성을 보장하는 힘이 돼오고 있다.
그는 이어 "반도체를 포함한 첨단기술과 관련해 미중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양국 모두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인도네시아를 통해 한국이 이익을 도출해 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밝혔다.
즉 "한국이 전략적으로 인도네시아와 우호적 관계를 유지한다면, 미중관계 안에서 한국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으리라 본다"고 덧붙였다.
■팔로워 2천만명의 '인플루언서 정치인', "청년들과의 소통 특히 중요하다"
균형 잡힌 몸에 딱 맞는 감청색 슈트를 입은 차려 입은 리드와 카밀 주지사는 나비 넥타이까지 메고 인터뷰에 응했다. 48세의 중년의 원숙함에 예술가적 분위기 물씬 풍겼다.
리드완 카밀 주지사는 국제 정치, 국가간의 교류와 산업적인 특성 등 딱딱한 이야기들을 하는 중간 중간 개인적인 이야기를 곁들여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들었다.
인스타그램 팔로워 2천만명을 보유한 인플루언서이자 청년들의 폭 넓은 지지를 받는 '젊은 정치인'다웠다.
주지사는 "2045년이 되면 인도네시아 국민의 70%가 40세 이하"라며, 정치인으로서 청년층의 지지를 받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했다. 그는 "청년들은 소셜미디어에서 정치적인 의견이나 비판을 거리낌없이 한다. 앞으로는 더더욱 청년들과 소통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최근에는 많은 정치인들이 벽보를 붙이는 전통적인 선전방법을 버리고 인스타그램 게시글 등을 통한 자기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리드완 카밀 주지사는 "김태흠 충남도지사는 (내가) 팔로워 2천만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매우 놀라워 했다"며, "(내가) 팔로우하자 김 도지사의 팔로워가 1000명에서 1001명으로 늘었다"고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는 이어 "정치인에게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하나는 정치인 자체의 매력, 즉 외형이나 어투 등이 있고, 두 번째는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능력이다. 부패를 척결하거나 사회에 바람직한 변화를 불러오는 것이다. 그 둘을 최대한 상호보완적으로 동등하게 발달시키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현대 건축을 전공한 경험을 살려 인도네시아 서자바주 반둥의 '알 자바 모스크(Al Jabbar Grand Mosque)'를 모던한 분위기를 살려 설계, 세계 건축학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또 직접 디자인한 인도네시아 전통의상 바틱은 슈퍼주니어 멤버 이특, 예성이 입으며 한국에서도 유명해졌다. 그는 이와 관련해 "인도네시아 한국 대사관에도 직접 디자인한 바틱을 보냈는데 두 개를 더 보내달라 요청을 받아 하나가 이특, 하나가 예성에게 갔다"며 K-Pop 아티스트들에 대한 호감을 표시했다.
이처럼 그는 건축물은 물론 패션, 전기 모터사이클(오토바이) 등의 디자인에도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그의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왜 2천만 명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 서울 시청, 청계천 등 도심 속 건축물들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자신이 직접 디자인한 건축물인 알 자바르(Al-Jabbar) 모스크를 소개하기도 했다.
리드완 카밀 주지사는 "정치인으로서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정치인 자체의 요소, 말하는 방식이나 외형 등이고 둘째는 현실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라며 본인의 정치 철학을 설명했다. 그는 "이 두 가지 요소를 밸런스 있게 담아내고자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리드와 카밀 주지사는 반둥기술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뒤 미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정계에 투신해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반둥시장을 역임하고 이어 15대 서자바 주지사에 당선됐다.
그는 인도네시아의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 4인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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