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이슬기 기자] “‘아가사’는 없는 것을 창조하는 인물이죠. 또 결혼 생활과 일을 모두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예술에 대한 열정과 외로움. 모든 면에서 공감이 가는 역할이에요.”
뮤지컬 ‘아가사’와의 만남을 말하면서 배우 이정화는 ‘쉽지만은 않았던 선택’이라 말했다. 최정원 선배의 공연으로 처음 ‘아가사’를 봤을 때만 해도 “나는 아직 ‘아가사’를 하기에는 어리다”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예술을 하는 한 여자의 삶이 배우 이정화 자신의 것에 겹쳐 보인다는 점이 퍽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아울러 새로운 컴퍼니로 오랜만에 돌아온 ‘아가사’는 또 다른 결을 열 수 있다는 용기와 원래 “아가사가 실종된 나이는 삼십 대다”라는 말까지 더해져 그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자신이 느낀 아가사를 잘 담아내고 싶은 의지와 함께.
“’아가사‘를 관객으로 봤을 때는 제가 SNS에 “악에 대한. 내 안의 악에 대한 싸움” 같은 감상을 남겼더라고요. 내 안의 악은 무엇인지. 내가 가진 미궁과 그를 해결하는 붉은 실은 무엇인지를 고민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그녀가 왜 그런 악과 싸워야 하는지. 그녀가 처한 환경. 삶이 더 깊게 다가오는 걸 느꼈어요.”
‘아가사’는 1926년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의 실종 실화를 토대로 한 뮤지컬이다. 실존 인물과 가상의 인물, 극적인 사건을 재구성해 아가사가 사라졌던 11일간의 여정을 그린 팩션인 것.
극은 아가사의 실종과 그 이유가 중심 사건을 이룬다. 아가사의 복잡한 삶, 무겁게 품어온 감정, 침묵과 혼돈 등이 다양한 전개로 변주된다. 때문에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처럼 추리와 반전을 거듭하는 것이 묘미로 손꼽힌다.
또한 무대 위 아가사는 노년의 모습과 실종 당시 젊은 모습으로 등장한다. 두 가지 색을 같고 또 다르게 표현하면서 객석의 긴장감을 유지해야 한다. 자신만의 아가사를 만들어 가면서 이정화가 택한 것 ‘대본’이었다.
“목까지 꽉 채운 단추. 진주 반지를 끼는 여자. 대본 속에는 아가사가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어요. 사람들이 말하는 아가사를 조합해서 그려 봤죠. 실존 인물이라는 점에 집중하기 보다 답답하고 숨 막히는 공간들 속에서 아가사가 숨 쉬고 말하고 걷는 순간들의 감정에 집중했어요.”
아울러 아가사 스스로 표현하는 자신도 큰 길잡이가 됐다.
“아가사는 물어봐요. 살인이 재밌냐고. 그리고 모든 일에는 동기가 필요하다고 말하죠. 그런 질문을 사람들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모습에서 혼돈이 보였어요. 고민을 계속 안고 있지만 고고한. 회색의 우아함을 잃지 않으려는 아가사가 느껴졌죠. 연출님은 저를 보고 버티려는 모습이 짠한 아가사라는 코멘트를 주시기도 했어요.”
이정화는 “무너지지 않으려는 아가사가 되고 싶어요. 하나하나 색을 입어가면서 요동치는 감정이 돋보일 수 있겠죠”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아가사의 혼란 속에서 이정화가 객석에 전하고자 하는 건 무엇일까.
이정화는 가장 먼저 “사랑”을 이야기했다. “사랑을 제일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하고. 예술 안에서 작은 빛이라도 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있다”는 것.
무슨 이야기를. 무슨 캐릭터를 만나건.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배우라는 설명이다. 그가 그리는 ‘아가사’ 또한 결국에는 자신을 향한 진정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아가사는 내면의 불안함과 위기를 인정하고 또 아가사 다운 방법으로 해결해요. 극 중에서는 그걸 미궁을 빠져나오는 ‘붉은 실’이라고 표현하죠. 이 공연은 결국 모두에게 각자 자신의 삶을 이끄는 ‘붉은 실’이 있다고 말해주고 있어요.”
또한 뮤지컬 ‘아가사’가 말하는 붉은 실에는 자신을 향한 사랑이 있다. 넘어졌을 때 내가 내 자신을 일으켜주고 용기를 내게끔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노래한다는 것이다. 이정화는 관객들에게도 그 노래가 닿기를 소망했다.
“스스로 미궁 속을 빠져나오는 아가사가 짠할 수 있겠지만. 그 안간힘을 통해 제가 용기를 얻듯 관객분들도 힘과 위로를 받아가시길 바라요. 아슬아슬한 선 위에 서 계신다면. 미궁을 헤매는 분이 있으시다면. 같이 울음을 토해낼 수 있는 시간일 거 같아요.”
이정화는 “‘아가사’가 붉은 실 자체가 되는 시간이라면 좋겠다”라면서 “불안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언제든 미궁에 빠질 수 있지만 또 언제든 우리 힘으로 나올 수 있단 걸 함께 나누고 싶어요”라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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