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퇴직연금 실물이전 제도 시행 이후 은행에서 증권사로 갈아타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가입 상품에 따라 증권사와 은행간 수익률이 최대 2%포인트 넘게 차이가 나는 등 수익률 격차가 커지면서다.
24일 고용노동부와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31일부터 올해 1월 말까지 퇴직연금 실물이전 서비스로 약 2조4000억원(3만9000건)이 이전했다. 3개월 만에 382조4000억원(2023년말 기준) 적립금 중 0.6%에 해당하는 자금이 이동한 셈이다.
시가총액 상위 5대 증권사 본사 전경 (자료=각사)
실물이전은 퇴직연금 가입자가 계좌 내 운용 중이던 상품을 매도(해지)하지 않고 다른 퇴직연금 사업자의 계좌로 옮길 수 있는 서비스다. 업계에서는 실물이전 제도 도입으로 수익률이 높은 금융사로 갈아타는 움직임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다.
이번 서비스를 통한 이동 규모를 살펴보면 ‘은행으로부터 은행’(7989억원)이 가장 컸다. 이어 ‘은행으로부터 증권사’(6491억원), ‘증권사로부터 증권사’(4113억원), ‘증권사로부터 은행’(2382억원) 등의 순이었다.
제도별 실물이전 유출입 규모 (자료=고용노동부)
업권간 실물이전 순유입 규모를 살펴보면 증권사는 4051억원이 순증한 반면 은행은 4611억원이 순유출됐다. 은행으로부터 증권사 이동은 많았지만 증권사에서 은행으로 이동이 적었던 탓이다.
퇴직연금 제도별로는 개인형 퇴직연금(IRP)이 9229억원(38.4%)으로 실물이전 규모가 가장 컸다. 확정급여형(DB)는 8718억원(36.2%), 확정기여형(DC·기업형IRP)은 6111억원(25.4%) 였다. IRP·DC는 적립금을 근로자가 운용해 운용수익을 얻는 형태이고 DB는 사용자가 적립금을 운용해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방식이다.
은행에서 IRP가 3566억원, DC는 1813억원이 순유출됐고 DB는 768억원 순증했다. 반면 증권사의 경우 IRP가 3753억원, DC가 2115억원이 늘었고 DB에서 1817억원이 빠져나갔다. 근로자가 직접 적립금을 운용하는 IRP·DC의 경우 투자 상품의 폭이 넓고 수익률이 더 높은 증권사로 갈아타려는 수요가 몰린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금감원의 퇴직연금사업자 비교공시를 살펴보면 증권사의 퇴직연금 수익률이 은행보다 전반적으로 더 높다.
은행과 증권사 IRP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지난해 4분기 기준 1년간 수익률은 KB증권(5.84%), 한화투자증권(5.62%), 유안타증권(4.78%), 한국투자증권(4.61%), 하나증권(4.49%) 순이다. 상위 5곳 모두가 증권사인 셈이다. 은행권은 대체로 3%대 초중반에 머물렀다.
DC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경우도 KB증권(5.24%), 한화투자증권(5.01%), 한국투자증권(4.50%), 아이엠증권(4.46%), 신영증권(4.42%) 순으로 수익률이 높다. 은행권 수익률은 3%대 초중반에 형성돼 있다.
DB 원리금보장형 상품의 수익률도 NH투자증권(4.16%), 삼성증권(4.16%), 현대차증권(4.09%), 신한투자증권(4.05%), 하나증권(4.05%) 순으로 증권사들이 상위권을 독식했다.
그나마 은행권이 높은 수익률을 보인 것은 원리금비보장형 상품들이다.
지난해 4분기 IRP 원리금비보장형 상품의 1년간 수익률은 미래에셋증권(12.48%), 삼성증권(11.99%), 유안타증권(11.72%), 하나은행(10.78%), NH투자증권(10.61%) 순이다.
같은 기간 DC 원리금비보장형 상품 수익률의 경우 하나은행(12.83%), 미래에셋증권(12.17%), 현대차증권(11.84%), 삼성증권(11.67%), 신한은행(10.55%) 순으로 나타났다.
DB 원리금비보장형 상품의 경우 유안타증권(10.17%), KB증권(9.73%), NH투자증권(8.78%), BNK부산은행(8.74%), 신한은행(7.99%) 순으로 수익률이 높았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증권사의 높은 수익률 때문에 실물이전 제도 시행 이후 퇴직연금이 소폭 빠져나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은행들도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포트폴리오 상품 라인업을 개편하고 있고 안정적 수익률을 원하는 가입자들도 많기 때문에 머니무브가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