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성 칼럼] 전국도로를 다이아몬드로 깔아도..고(故) 김홍일 전 의원을 기리며

고 김홍일 전 의원이 못 다한 이야기

김재성 주필 승인 2019.04.24 18:04 | 최종 수정 2019.05.09 13:31 의견 10
 

[한국정경신문=김재성 주필] 누군가의 부음은 슬픈 소식이다. 그래서 듣는 순간, 짧게나마 애도의 염을 갖는다. 그래서 사람이다. 인연이 있는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김홍일 전 의원 별세’ 뉴스를 접하는 순간도 그랬다. 예상은 했지만 일단 놀랍고 안쓰러웠다. 잠시 영면을 축원하는 중 문득 생각이 미쳤다. 이럴게 아니라 글이라도 한 꼭지 쓰자. 그가 못했던 말이라도 대신 해주자. 

김홍일 전 의원은 정말 힘들게 살았다. 그가 1980년 신군부에 끌려가 고문을 받고 그 후유증으로 생긴 파킨슨병 때문에 30년 넘게 고생한 것은 세상이 다 아는 일이다.

그러나 정작 고인을 짓누르는 더 무거운 짐은 누구로부터 위로받을 수도 없는 혼자만의 괴로움이었다.

고인의 인생은 한 인간으로서 주체적 삶이 없다. <DJ 장남 김홍일 전 의원 별세> 부음 기사에서 보듯이 그에게는 평생 디제이 장남이라는 수식어가 붙어 다녔다. 그의 삶에 ‘김홍일’은 없고 ‘DJ 장남’만 있었던 것이다. 

'DJ 장남'이라는 꼬리표는 고인을 평생 사람을 대하는 일, 사람을 믿을 수도 안 믿을 수도 없는 고뇌형 인간으로 살게 했다. 

물론 인간세상, 누구든지 다 믿으면 낭패를 당하기 쉽고 그렇다고 불신만 하면서 살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래도 믿을 사람이 더 많고 좋은 사람이 더 많은 세상이다. 속이는 사람도 처음부터 속일 의도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세상이 돌아간다.  

첩보영화처럼 특정인 혹은 특정집단을 파괴할 목적으로 일상적으로 자행되는 공작의 세계가 있다. 정보전쟁의 세계다. 그 정보전쟁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공작이 내국인을 상대로 행해지면 어떻게 될까? 대한민국은 한 때 독재 국가를 제외한 세계에서 유일한 정보정치가 국가였다.

고인은 유신과 5공의 정보정치 피해자다. 고인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대한민국 도로를 다이아몬드로 깔아줘도 고문과 공작정치 폐해는 상쇄하기에는 부족하다”고. 

1992년 대선 전, 나는 상도동 김현철, 동교동 김홍일을 나란히 세워 조명하는 기획안을 가지고 고인을 만났다. 그는 정중히 그리고 간곡하게 사양했다. 피해의식이 금방 느껴졌다. 몇 번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마지막으로 “남자끼리 한번 믿어 봅시다”하고 지른 것이 먹혔다. 그래서 나온 기사가 80년 신군부에 끌려가 조사받은 비화, 간추리면 이렇다.

<며칠을 실컷 두들겨 맞고 불안과 공포에 떨고 있는데 인상이 퍽 부드러운 어떤 사람이 앞에 앉더니 실은 자기도 "김대중 선생님을 존경한다"면서 심문을 시작했다. 도중에 커피도 한 잔 타주고 설렁탕도 시켜주어 고인은 있는 사실을 그대로 말했고 상대방도 그대로 타이핑했다. 고인은 그 때 천근같았던 피로가 가시면서 세상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서명 날인(지장) 간인(間印)도 찍었다. 그리고 한 20여 분, 심문조서를 들고 어딘가를 다녀온 조사관이 “오타가 있어서 몇 군데 고쳤다. 고친 부분만 간인을 새로 찍자”고 했다. “고친 부분을 확인하자”고 했더니 “서로 편하게 가자”며 손을 강제로 끌어 당겼다. 아버지 생사가 달린지라 고인은 결사적으로 항거하면서 소리까지 질렀다. 이 때 조사관의 표변 “동교동 종자들은 이래서 안 돼. 발악하지 마라. 어차피 대중이는 죽어” 이 때 김 의원의 절망감, 잠시 사람을 믿었던 자괴감은 말로 형용할 수 없었다.> 

고인이 준 자료는 다 무시하고 그 에피소드만 압축해 실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나를 전적으로 믿어준 '강골' 김병규 데스크 덕택이다. 그 분과 나는 ‘통째로 뺄지언정 왜곡은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공유했다. 

그 기사로 고인과는 신뢰가 쌓였다. 그 덕택에 주간지 기자 주제에 ‘DJP 연합’ 효시가 되는 사건을 단독보도하는 등 영양가 있는 기사를 더러 쓸 수 있었다. 그의 사람관계 괴로움을 읽을 수 있는  또 하나의 사례. 

<97년 대선 직전, 후배의 청으로 그를 김 의원에게 천거했다. 청탁이 아니었다.  당 교환실, 소속 국회의원 비서실은 온통 전라도 사투리만 들린다 "‘시범적으로 김 의원이 영남출신 비서  놈 한번 써보시라" 이력서를 건넸다.  “믿어도 됩니까?” “제가 보증하지요”  그런데 정작 부탁했던 당사자가 차일피일 하더니 바람을 맞혔다. "미안하다"고 했더니 그는 오히려 다행이라며 뜻밖의 말을 했다. 몇 달 다니다 그만두는 사람은 꼭 뒷말이 나온다는 것이다. 본인이 나빠서가 아니라 저쪽에서 가만히 두지 않아 없는 말을 하게 만든다는 것. 

그 일 이후 고인을 다시 봤다. 그런 속에서 인격 파탄자가 되지 않고 버티다니, 존경스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고인의 파킨슨병은 고문 후유증에다 정보정치로 인한 정신적 압박의 합병증이 틀림없다. 고인의 영면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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