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100명 중 2명만 'Pick'..여성 사내이사판 '프로듀스 101'

이정화 기자 승인 2024.01.08 11:03 의견 0
이정화 산업부 기자

[한국정경신문=이정화 기자] "우리나라 대기업에서 여자가 주연을 따기란 하늘에 별따기다."

이 속설에 반기를 들 자가 있을까. 사내이사를 향한 여성들의 서바이벌, 기업판 '프로듀스 101'이 이사회내 특정 성별만 두지 말라는 법 아래 치열하다. 현재 100명 중 2명의 여성만이 그 자리에 올라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성별 다양성을 의무화한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2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지난해 8월 본격 시행됐다. 1년 반이 지났지만 여성 임원을 한명조차 두지 않은 기업이 심심찮게 보인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에 따르면 국내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 분기 보고서를 제출한 349곳의 올 1분기 기준 여성 임원 수는 997명으로 전체(1만5718명)의 6.8%다. 지난 2019년(3.9%)보다 2배 가까이 늘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여성 임원이 아예 없는 기업은 28.1%에 달한다. 특히 사내이사는 1200명 중 28명(2.3%)으로 법 발의 이전과 다를 바 없다.

범법 예방을 위한 빠른 해결책으로 대부분 '사외이사 영입'을 택해서다. 앞서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 중 하나인 포스코도 이를 위해 1968년 창사 이래 '첫 여성 사외이사'를 선임했다.

상장사 1위 현대자동차와 기아, 현대모비스, SK㈜, GS건설의 선택도 마찬가지다. 30대 그룹 중 유일하게 여성 임원을 한 명도 두지 않은 HMM도 있다.

전문가들은 사내이사가 생업 터전에서 최고경영자(CEO)의 결정과 판단에 효과적으로 기여한다고 본다. 이 자리는 여성이 들어갈 틈이 좁다는 게 흠이 됐다.

김준호 글래스루이스 리서치 애널리스트는 "글로벌 대부분 기관에서 요구하는 (여성이사 할당) 기준이 30%인데 한국은 굉장히 아쉬운 수준"이라며 "대개 사외이사로만 선임된 점도 문제고 한 명의 여성이사를 선임한 이후 추가 선임하지 않는 행태도 보인다"고 꼬집었다.

또 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철강이나 조선업계에서는 변호사나 교수직 인물을 모신다 하더라도 해당 분야의 전문 인력이 많지 않아 시간이 흘러도 여성 임원이 나오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트렌드에 대응해 속도는 더디지만 개선 필요성을 느끼고 실행할 것으로 보인다"고 내다봤다.

대기업 몇몇이 '법 때문에 여성이사를 영입한다'는 평가를 부정하기 어려운 이유다. 자본시장법을 대하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현주소다. 물론 법을 어기더라도 처벌조항이 없어 불이익은 없지만 ESG 구호는 내걸면서 외침과 동떨어진 행보를 보이는 건 아쉬운 대목이다.

이처럼 자본시장법을 계기로 지금껏 여성임원에 소극적인 회사가 수없이 많았단 불편한 진실이 드러났다. 사외이사 한 명으로 단기 처방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업종 특성을 탓하며 법을 앞에 두고도 망설이는 곳이 있다. 언제쯤 여성들의 고위직 진출이 법 없이도 어색하지 않은 풍경이 될까. 많은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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