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은행권 ELS 판매 중단, 원칙은 어디에?

윤성균 기자 승인 2024.02.02 07:00 | 최종 수정 2024.02.02 16:03 의견 53

[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5대 은행 중 우리은행을 제외한 KB·신한·하나·NH농협은행 등 주요 은행들이 주가연계증권(ELS) 판매를 중단했다. 지난해 홍콩H지수 연계 ELS 판매 중단에 이어서 ELS 취급 자체를 전면 중단하기로 한 것이다.

1월 19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금융감독원 앞에서 열린 집회에서 홍콩지수 ELS 피해자들이 피해 보상을 요구하는 손팻말을 들고 있다. (자료=한국정경신문DB)

표면적인 이유는 글로벌 지수의 변동성 확대다. ELS의 기초자산으로 주로 편입되는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 닛케이225 등 주요 주가지수가 최근 10년간 최고점을 찍었다. 글로벌 증시가 활기를 띠면서 관련 상품 판매도 늘었는데 향후 고점 대비 크게 하락할 경우 투자 손실이 발생할 우려도 그만큼 커졌다는 것이다.

이미 홍콩 ELS 사태로 홍역을 치르고 있는 은행 입장에서는 고객 보호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판매중단을 결정했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가 있던 지난달 29일 하나은행의 ELS 판매 중단 결정이 나왔고 하루 뒤 국민·신한은행이 마치 떠밀리듯이 판매 중단을 결정하는 모양새가 썩 ‘자연스러워’ 보이지는 않는다.

29일 정무위에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은행에서 ELS를 판매하는 것을 중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의에 “상당 부분 개인적으로 공감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것이 일종의 신호였는지는 모를 일이다.

은행 내부에서 심사숙고해서 결정한 사안이겠지만 전면 판매 중단이 최선인지는 의문이다. ELS 상품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던 은행권의 기존 주장과도 배치되는 결정이다. 은행의 원칙대로라면 변동성 문제가 된 기초자산의 상품만 취급을 중단하면 될 일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우려가 제기된 홍콩 ELS 손실이 올해 초 현실화 되고 투자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때도 은행들의 원칙은 확고해 보였다. 불완전판매가 확인되면 은행이 책임지되 투자자 책임 원칙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투자상품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듣고 이해하고 투자를 결정했다면 금융사에 손실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원칙 말이다.

이제 은행에서 ELS 판매를 중단했으니 왜 그간 고위험 상품을 은행 고객에게 팔았느냐는 질문이 따라 올 수밖에 없다. 홍콩 ELS 손실이 현실화되고 있는 마당에 은행이 ELS의 위험성을 인정하고 판매 중단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사기 피해를 주장하는 투자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당국은 은행의 고위험 상품 판매를 중단시키고 홍콩 ELS 사태의 책임을 묻기가 좀 더 쉬워졌다.

물론 우리은행 처럼 소비자선택권 보장을 위해 ELS 판매를 지속하기로 한 은행도 있다. 이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지만 적어도 은행권 내부에서는 “우리은행이 소신은 지켰다”는 자조 섞인 평가가 나온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언급했듯 ‘자기책임 원칙 하에 금융투자상품을 거래하는 게 자본시장의 기본원칙’이다. 금융소비자보호법에서 정하고 있는 ▲적합성 ▲적정성 ▲설명의무 ▲불공정영업행위 금지 ▲부당권유행위금지 ▲허위과장광고 금지 등 6대 원칙도 마땅히 지켜야할 원칙들이다.

대형 사고가 터지면 원칙 부터 흔들리기 쉽다. 그럴수록 원칙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홍콩 ELS 사태의 교훈을 언급하기에는 시기적으로 섣부르긴 하지만 이미 키코(KIKO), 파생결합펀드(DLF), 라임펀드 사태를 겪지 않았던가.

금융사와 당국, 금융소비자 모두 금융의 원칙을 되새겨 봐야할 시점이 아닐까 한다.

금융증권부 윤성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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