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성 칼럼] 임정 100년, 약산 김원봉 선생의 영혼을 위로한다.

약산 김원봉의 서훈 논란에 대하여

김재성 주필 승인 2019.04.10 11:21 | 최종 수정 2019.04.12 12:40 의견 13

[한국정경신문=김재성주필]사는 것도 중하고 의도 중하지만 둘 다 가질 수 없을 땐 기꺼이 생을 버리고 의를 취한다. 이 사람을 우리는 의사(義士)라 칭한다. 나라를 위해 한 몸 장렬하게 바친다. 이런 사람을 열사(烈士)라 부른다. 약산若山 김원봉(金元鳳, 1897~1958?)은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의사와 열사가 되겠다는 사람들을 모았다. 멀리 중국 땅에서 결성한 의열단이다.

약산은 일본 국경일인 천장절(일왕 히로히토의 생일)에 일장기를 변소에 버린 사건으로 보통학교를 중퇴하고 계몽 운동가들이 설립한 서울의 중앙학교를 졸업한 후 열아홉 살이던 1916년 중국으로 건너가 의열단을 조직했다.

의열단은 1920년부터 부산경찰서장 폭사, 밀양경찰서 폭파, 종로경찰서 폭파, 일본 육군대장 저격, 일제 밀정 처단, 동양척식주식회사와 조선식산 은행 습격, 조선의용대 창설 등 끊임없는 투쟁으로 패배주의에 빠진 조선민중을 고무했다. 

일제는 약산에게 100만엔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지금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320억원, 미국이 오사마 빈라덴에게 540억원의 현상금을 내걸기 전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현상금이었다. 약산이 일제에 얼마나 두려운 존재였는가를 말해 주는 사례다. 그런데 우리는 그 이름을 잘 모르고 살았다. 그나마 지난 해 상영된 ‘밀정’ ‘암살’ 등으로 좀 알려졌을 뿐이다. 

최근 도올 김용옥이 ‘제주 4.3’과 ‘여순 사건’을 서술한 책을 내면서 “우린 너무 몰랐다”라고 제목을 붙였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너무 모르고 살았다. 해방된 조국이 있기까지 아리랑의 김산이 있는 것도 몰랐고 약산 김원봉의 이름도 잘 몰랐다.  

올해는 3.1운동 100주년,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11일), 그리고 약산이 사거한지 51주년이 되는 해다. 국가보훈처가 보훈혁신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훈장추서를 검토하고 있으나 자유한국당 등 의 반대에 부딪쳐 만만치 않다. 약산이 사회주의자로 북한정권 수립에 참여한 사실이 문제가 된 것이다.

약산이 사회주의자인 것은 맞다. 그러나 대한제국과 일제치하 밖에 경험하지 못한 뜻있는 청년에게 사회주의란 얼마나 가슴 설레는 대안이었을까? 70년 넘게 빨갱이 마케팅을 하고 있는 보수 참칭세력이 알아야할 것이 있다. ‘빨갱이’란 본디 일제가 사회주의 계열의 우리나라 독립운동가들, 그리고 약소국 침략을 반대하는 자국의 진보지식인들에게 붙인 딱지였음을.

현실은 현실이니 약산이 6.25 전쟁 중 그리고 전쟁 후에도 인민공화국의 각료였다면 실정법으로나 국민 정서로나 불가론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할 것이 있다. 약산은 해방된 조국으로 돌아왔을 때 조국은 그에게 어떤 대접을 했는가? 

일제의 충견으로 ‘반민특위’가 친일경찰 1호로 지목한 노덕술이란 자가 있다. 1947년 4월 장택상의 지시로 노덕술이 약산을 체포하여 뺨을 때리고 고문을 자행했다. 이 일이 있은 후 약산은 분을 못 이겨 3일을 울었다고 전한다. 

그 후 약산은 1947년 7월 여운형의 장례위원장을 맡아 장례를 치른 후 북으로 가 이듬해 4월 평양에서 열린 남북 연석회의에 참석한 후 돌아오지 않았다. 그 사건으로 밀양에 남은 가족 4촌 형제들까지 9명이 군경에 의해 총살을 당했고 살아남은 막내 동생이 41.9 후 민주당 정부에서 이를 신원하려다 박정희 정부에 의해 이적행위로 몰려 10년 징역형을 받았다. 반면 노덕술은 이승만의 비호로 특무대 중령으로 예편, 울산에서 반공투사를 자처하며 국회의원 출마까지 하고 1968년 4월까지 박정희 최후의 파티로 유명한 궁정동 안가 터 자택에서 잘 먹고 잘 살았다.  

북으로 간 약산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 부위원장을 역임 하다가 1958년 10월 모든 직책에서 해임된 후 종적이 사라졌다. 장제스와 내통(간첩)혐의로 숙청되었다는 것이 유력한 추측이다.

말년의 약산은 그 분노를 어떻게 다스렸을까? 어쩌면 눈앞의 모순을 다 수용할 수 있는 더 큰 이치를 터득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히려 편안히 눈 감았을지도 모른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약산의 영혼을 위로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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