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지난해 5대 시중은행에서 횡령·배임 등 총 36건의 금융사고가 발생했지만 이중 단 1건도 구체적인 사고 내용과 피해액, 사고 경위가 공개되지 않았다.
공시 의무가 없는 10억원 미만의 금융사고이기 때문인데 은행권의 금융사고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공시 기준을 확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6일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경영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총 36건의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국민은행과 하나은행에서 각각 10건의 금융사고가 발생했고 신한은행 6건, 농협은행 6건, 우리은행 4건이었다.
유형별로는 횡령이 11건으로 가장 많았다. 하나은행에서 가장 많은 4건이 발생했고 국민·우리·농협에서 각 2건, 신한은행에서 1건 발생했다.
이어 ▲사적금전대차 6건 ▲사금융알선 3건 ▲실명제위반 3건 ▲사기 3건 ▲배임 2건 ▲유용 2건 ▲금품수수 2건 ▲기타 4건 순으로 금융사고가 빈번했다.
하지만 지난해 발생한 금융사고 36건 중 구체적인 사고 내용과 피해액, 사고 경위, 조치 계획 등이 공시된 것은 단 1건도 없다. 36건 중 35건은 사고금액이 10억원 미만으로 공시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10억원 이상~100억원 미만의 금융사고가 1건 발생한 우리은행의 경우는 국내 영업점이 아닌 해외 법인에서 발생한 금융사고라서 공시서 제외됐다.
은행권은 2014년 개정된 ‘은행업감독규정’에 따라 금융사고 금액이 3억원 이상인 경우 사고 내용을 금융위원회에 보고하고 은행 홈페이지에 공시해야 하지만 사고금액이 10억원 미만인 경우에는 공시하지 않을 수 있다.
기존 ‘자기자본 총계의 100분의 1 상당액’을 초과하는 손실에 대해 공시의무가 부과되던 것에 비해 공시대상을 확대했지만 대부분의 금융사고는 여전히 공시 의무를 빗겨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14년 3분기부터 지난해 말까지 5대 시중은행이 금융사고를 수시공시한 건수는 농협은행 3건, 하나은행 3건, 국민은행 2건, 우리은행 1건 등 총 9건이었다. 같은 기간 5대 시중은행에서 발생한 금융사고가 총 603건이었음을 감안하면 공시 의무 발생 비중이 1.49%로 극히 낮다.
당초 금융사고에 대한 시장규율 및 사고예방 기능 강화를 위해 금융사고 공시 제도가 마련됐는데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올 수 있다.
공시 의무가 사고금액 기준인 점도 문제다. 지난해 국민은행과 대구은행에서 발생한 직원들의 일탈 행위는 금전적 손해가 발생한 사고가 아니라 별도의 공시 의무가 발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지난해 8월 상장사들의 증권 업무를 대행하면 국민은행 직원들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100억원대 부당 이득을 취한 것으로 드러났다. 시중은행 전환이 논의되고 있는 대구은행에서는 직원들이 고객 동의없이 예금 연계 증권계좌 1000여개를 임의로 개설했다가 금융당국에 적발되기도 했다.
이러한 유형의 금융사고의 경우 금전 피해가 없거나 있어도 10억원 미만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사고 내용이 외부에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다는 점은 문제로 지적된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최근 금융사고 유형이 다양해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횡령에 비해 사고금액이 크지 않다고 해서 내부통제 부실 지적을 피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권 관계자는 “금융사 입장에서 금융사고는 금액과 관계없이 경각심 가져야 한다”면서도 “적은 금액에 대해서도 공시를 남발하면 내부적으로 업무가 과중한 부분도 있고 외부에서 봤을 때도 공시 효과가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이 기준은 시대의 변화를 고려해 계속 개선해야 한다”며 “예를 들어 특정 사건 유형에 대해서는 금액과 관계없이 공시하도록 하는 등의 제도 개선은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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