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계가 장기 불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공사비 급등 여파로 수익 창출 어려움이 지속된 결과다. 하지만 1분기 성적표를 받은 후 달라진 분위기가 관측됐다. 고비용 재건축·재개발 사업장이 준공되면서 주택사업의 회복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한국정경신문은 창간 15주년을 맞아 기지개를 켤 준비 중인 건설업계의 주택사업 현황과 수주 격전지를 짚어봤다. <편집자 주>

[한국정경신문=우용하 기자] 한남4구역과 성남 은행주공 이후 잠잠했던 수주경쟁 분위기가 한강변·강남권 단지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출혈비용을 우려해 수의계약 위주로 활동한 상반기와는 대비된 모습이다.

하반기 입찰을 준비하는 압구정과 여의도, 개포 일대에선 물밑 작업이 시작됐다. 이들 사업지는 막대한 공사 규모에 상징성까지 확보할 수 있어 각 건설사의 하이엔드 브랜드가 격전을 펼칠 것으로 예상된다.

(왼쪽부터) 삼성물산과 현대건설 본사 전경 (자료=각사)

15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지난 6일 압구정 현대아파트 인근에 ‘압구정 S.라운지’를 개관했다. 압구정2구역 입찰에 앞서 조합원 대상으로 홍보에 나선 것이다.

압구정2구역 재건축 사업은 압구정동 신현대아파트를 지하 5층~지상 최고 65층인 2571세대 규모로 정비하는 사업이다. 조합은 오는 6월 중 시공사 입찰 공고를 낼 예정이다. 최종 선정은 9월로 계획 중이다.

삼성물산이 입찰 공고 전부터 움직인 것은 총공사비만 2조4000억원 규모로 추정되는 초대형 정비사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수의계약을 통해 확보했던 사업지와 달리 경쟁을 피하긴 힘들어 보인다. 현대건설에서도 수주 의사를 강하게 내세우고 있어서다.

현대건설은 현대아파트 ‘정통성’을 강조하며 수주전을 준비 중이다. 이를 위해 2월에는 ‘압구정 현대’를 비롯한 명칭 4건의 상표를 출원했다. 대형 법무법인과 상표권 보호를 위한 협업도 추진했다. 올해 들어선 ‘압구정재건축 수주 테스크포스’를 ‘압구정재건축영업팀’ 정식 출범하기도 했다. 이러한 행보는 올해 초 한남4구역에서 삼성물산에 밀렸던 만큼 총력을 다해 압구정2구역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로 분석된다.

수주경쟁 양상은 여의도 대교아파트에서도 확인됐다.

먼저 여의도 대교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삼성물산과 롯데건설의 경쟁이 예상된다. 이 사업은 준공 40년된 대교아파트를 4개동, 최고 49층, 912세대 규모로 정비하는 사업이다. 마찬가지로 내달 입찰 공고를 낸 후 9월 중 총회에서 시공사를 결정할 계획이다.

두 건설사는 단지에 사업 추진 응원 현수막을 걸며 수주 의지를 내비쳤다. 예상 공사비 1조원에 달하는 한강 조망권 사업이고 준주거지역으로 상향돼 용적률과 수익성까지 우수하기 때문이다. 특히 롯데건설은 하이엔드 브랜드 ‘르엘’을 언급하며 홍보에 나섰다. 현장에선 축하 화환을 보내는 등 물밑 경쟁도 이어졌다.

강남구 개포우성7차 재건축 역시 시공능력평가 상위 건설사 간 경쟁이 전망된다.

개포우성7차 재개발의 총공사비는 약 6800억원으로 평가된다. 여의도 대교아파트, 압구정2구역과 비교해 사업규모는 크지 않다. 하지만 3호선 대청역 초역세권에 용적률이 157%에서 300%까지 올라갈 계획인 점을 고려하면 충분한 사업성을 갖췄다고 평가된다. 또 개포택지개발지구 개발이 막바지에 다다른 상황이라 희소 가치까지 존재한다.

재건축조합은 입찰 공고에 앞서 단지 내에 홍보관을 마련했다. 홍보관 운영에는 삼성물산, 대우건설, 포스코이앤씨, 롯데건설, GS건설이 참여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현장설명회에는 ▲삼성물산 ▲대우건설 ▲포스코이앤씨 ▲GS건설 ▲롯데건설 ▲진흥기업 ▲HDC현대산업개발 ▲효성중공업 ▲금호건설 등 9개 건설사가 방문했다. 이에 일각에선 올해 정비사업 첫 다자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수주전은 하이엔드 브랜드 간 격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개포우성7차에 장기간 공들여온 대우건설은 이미 ‘써밋’ 브랜드를 내세우는 중이다. 롯데건설도 개포동에 ‘르엘’ 입성을 노리고 있다. 주변으론 현대건설의 하이엔드 브랜드가 적용된 ‘디에이치 자이개포’와 ‘디에이치 포레센트’가 위치하고 있다. 이로 인해 다른 건설사도 입찰 참여 시 최상위 브랜드를 제시할 전망이다.

한 정비업계 관계자는 “건설사들의 눈치싸움은 여의도와 압구정, 개포뿐만 아니라 성수에서도 진행되고 있다”며 “이들 지역 처럼 한강변·강남권 단지는 사업성과 브랜드 홍보 효과가 뛰어나고 향후 수주 활동에선 대표적인 성과로 제시할 수 있어 출혈비용에도 불구하고 도전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