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입도하고 나서 한달 정도 지났을 때였던가.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 갑자기 바다가 보고 싶어졌다. 제주에 이주한 이후 거의 매일보는 바다지만 약간의 비를 곁들인 바다는 그 맛이 다르다. 어디로 갈까 고민 끝에 세화해변으로 가기로 했다.
현재 제주서 원탑으로 꼽히는 월정리해변과 전통적인 제주 관광 1번지인 성산 사이에 자리잡은 조그마한 해변이다. 작지만 느낌만은 두 곳 못지 않다. 비에 젖어 살짝 가라앉은 가슴을 달래기에 이만한 곳도 없을 것 같다.
세화해변으로 가기 위해 차를 타고 달리는 중 좁은 산길에서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뜬금없이 늘어서 있는 긴 차량 행렬.
차를 세울 수밖에 없었고 주차된 차들 사이로 이쁘장한 푸드트럭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급하게 인터넷을 찾았다. 치저스라는 이름의 푸드트럭이다. 치즈와 지저스의 합성어일까? 호기심에 나도 하나 주문했다. 사각의 종이상자에 담긴 큐브스테이크. 그리고 쉐프는 그 위로 치즈를 폭포수처럼 흘려내린다. '오~지저스' 치즈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절로 나올 감탄사. 제주 푸드트럭 중 손에 꼽힐 정도의 인기가 있다고 한다.
다른 메뉴도 주문하고 싶었지만 긴 줄을 보고 있자니 더 시킬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음식 특성상 조리시간이 짧지는 않아 기다릴 수 만은 없었다. 그리고 세화해변에서 더 먹어야 할 것들이 있으니 서둘러 차에 탔다.
그리고 도착한 세화해변. 날이 맑았다면 옥빛 자태를 뽐냈겠지만 비가 내리는 오늘은 쪽빛 매력을 뿜어냈다.
세화 해변은 1980년 개장한 비지정 해변이다. 현무암층 위에 패사가 쌓여 형성된 해변이다. 해변 면적이 좁아 세화 해변은 만조 시간에는 물에 완전히 잠기며, 밀물이 해안 도로까지 근접한다. 간조 시간에는 백사장이 노출되어 걸어다닐 수 있다. 세화 마을 주민들과 올레꾼들 그리고 관광객들이 간조 시간을 이용해 해변을 이용한다고 인터넷포털지식백과에 나와있다.ㅋ
내가 갔던 시간은 간조 시간이었던 것 같다. 백사장을 볼 수 있었으니. 그냥 비오는 날 바다가 보고 싶었기에 여러 정보를 알고 싶지는 않았다.
마침 그 날은 5일장이 열렸다. 시장 입구에는 빠란 잠수복을 입은 커다란 해녀인형이 손님을 맞았다. 여느 재래시장이나 그렀듯 생기가 넘치고 먹거리가 넘쳤다. 세화에 왔으면 오일장과 해녀박물관을 가라는데 해녀박물관은 패스~~.
배가 고팠다. 비 오는날은 뭐가 맛있을까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은 해물라면~~~. 개인 취향상 멋들어진 최신 식당보다는 구옥을 개조한 조그마한 식당들이 좋아 선택한 곳. 오징어, 홍합, 새우 등 푸짐한 해물이 냄비 가득 장식된 해물라면이 나왔다.
해물라면을 먹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아무리 해물을 많이 넣어도 라면 스프를 뚫고 나오지는 못한다는 점. 해물이 들어갔지만 무슨 라면이 대번에 알 수 있는 그 맛ㅋ. 그런데 애월이나 어떤 곳에서 먹은 해물라면은 국물을 직접 만든 것 같은데...그냥 스프가 들어간게 더 맛있는 듯하다. 참고로 내 입맛은 저렴하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음식 맛은 개인의 취향.
비를 맞는 바다를 보며 먹는 해물라면은 오감을 자극했다. 차를 끌고 왔기 때문에 한라산 소주를 시킬 수 없었다는 아쉬움만 커져갔다ㅜㅜ
식사 후 비도 피하고 수다도 떨겸 찾은 커피매장. 요즘 제주에 있는 대부분의 개인 커피매장들이 그렇듯 아기자기한 인테리어가 방문객들의 기분을 좋게한다. 쓴 커피와 함께 먹은 달달한 초코케익(정확한 상품명은 오래돼 기억이 안난다)의 조합은 언제나 옳다.
세화해변은 다른 유명 해변에 비해 확실히 작다. 하지만 그만의 매력이 있다. 요즘은 관광객들이 늘며 다양한 매장들이 생기고 있다. 하지만 규모가 큰 관광지가 아니라 많은 볼거리가 있지는 않은 듯하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기 위해 잠깐 머물다 이동하는 것 같다. 아마 월정을 찍고 성산으로 이동하는 길에 들린 것은 아닐까 싶다. 주차공간도 부족해 약간의 관광객이 몰려도 운전에 애를 먹을 확률이 높아보였다. 시장이 열리는 주말이면 교통지옥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