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성 칼럼] 황교안 대표의 직업병 그리고 업보
공안검사의 직업병
김재성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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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3 10:45 | 최종 수정 2019.05.2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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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경신문=김재성 주필]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공안검사로 입신한 사람이다.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를 반대하는 이유다. 그러나 단지 공안검사였다는 이유로 누구를 반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정상적인 것을 전제로 모든 직업은 필요에 의해서 생겼으며 모든 사람은 자기 직업에 충실함으로서 구성원의 의무를 다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항차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를 위해 일하는 공안검사야 말해 무엇 하랴. 이렇듯 중요한 기관에서 중요한 일했던 사람을 왜 안 된다고 하는가? 백과사전을 보면 그 궁금증이 풀린다. 두산 백과가 제공한 네이버 검색창의 ‘공안검사’란을 보자 <공안검사는 국가의 안위나 공공의 안녕보다는 정권 수호의 앞잡이 역할을 해 왔다는 비판을 끊임없이 받아 왔다> 두산 백과는 공안검사의 대표적인 조작사건으로 1967년 7월 200여 명을 무더기로 검거한 동베를린간첩사건, 1971년의 재일동포 모국 유학생 간첩단 사건을 들었다.
황교안 대표는 82년 12월부터 검사생활을 시작했다. 따라서 위 사건들은 그의 검사생활 이전의 일이다. 그러나 황교안 대표가 잘 나가는 공안검사 시절이라고 다르지 않았다.사례는 많다. 그 중에서 피해자가 내 직장동료의 중학교 단짝이어서 확실히 아는 사건 하나만 들어보자. 1987년 1월, 이른바 수지 김 간첩사건이 터졌다. 홍콩에서 암약하던 수지 김(한국명 김옥분)이라는 여자 간첩이 북한 공작원과 짜고 남편 윤태식 납북미수 사건이다. 가까스로 탈출했다는 남편 윤태식이 기자회견을 하고 그 후 홍콩에서 수지 김의 시신이 발견된다. 안기부는 조총련의 소행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안기부와 공안검찰의 조작이었다. 진실은 윤태식이 사업자금 문제로 다투다 부인 김옥분을 살해하고 범행을 감추기 위해 싱가포르 대사관에 망명신청을 했고 한국 대사관으로 인계된 뒤 간첩사건으로 둔갑했다. 안기부 각본 공안검찰 연출이었다. 윤태식은 안기부 도움으로 벤처사업가가 되어 누리고 살다가 2001년 세상이 바뀐 뒤 에야 김옥분 가족의 고발로 구속되어 징역 15년형을 받았다.
이 사건의 피해자 김옥분은 예쁘고 활달해 인기가 좋아서 요즘도 친구들끼리 만나면 ‘불쌍한 옥분이’얘기로 잠시 숙연해지곤 한다. 물론 처음에는 서로 쉬쉬하다가 세월이 지난 다음에야 입에 올릴 수 있는 얘기다. 문제는 남은 가족들이다. 충격으로 어머니가 세상을 뜨고 오빠는 교통사고 사, 여동생 셋 다 이혼 당해 풍비박산이 됐다.
물론 황교안 대표는 이 사건과 무관하다. 그리고 공안 검사라고 해서 다 간첩조작이나 하는 사람들도 아니다. 문제는 직업병이다. 누구든지 한 가지 일에 오래 종사하다보면 자칫 직업병에 걸리기 쉽다. 신체적인 이상은 그나마 괜찮다. 세상을 보는 관점이 비정상이면 이웃에까지 피해를 준다. 자유한국당 대표가 된 후 “좌파는 돈 벌어 본 일 없다”등 황교안 대표의 언설에서는 여전히 공안검사 냄새가 난다. 여야 4당 합의로 발의한 법안을 단독으로 반대하고 기어이 관철하려들면 그것이 독재적 발상이다. 그런데 역으로 독재를 규탄하자니 말이 안 되는 줄 아는지 붉은 딱지를 붙여 ‘좌파독재’란다. 이 쯤 되면 싫으면 좌파로 모는 직업병 아닐까?
거의 대권행보를 하고 있는 황교안 대표가 성공하려면 먼저 할 일이 있다. 그것은 공안검사의 업(業)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다. 업(karma)이란 다름 아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쌓인 습(習)의 과보다. 넓은 의미의 직업병으로 편견, 독선, 아집, 색맹도 그 중 하나다.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에 대해 이견이 있을 수 없다"는 문 대통령의 5.18 기념사에 대해 "독재자의 후예는 김정은"이라며 엉뚱하게 북을 끌어들이는 역대 독재자들의 수법을 답습하는 것으로 보아 황 대표는 자신의 업에서 한 발자국도 벗어나지 못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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