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5대 시중은행 중 4곳에서 새로운 수장이 취임했다. 은행권에 대대적으로 리더십 교체가 이뤄진 것이다. 이는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와 장기적 경기 침체를 우려한 은행들의 생존전략이라는 분석이다. 이들 신임 행장들이 어느덧 취임 후 첫 분기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한국정경신문은 창간 15주년을 맞아 치열한 경쟁 속에서 각 은행 새 수장들이 거둔 성과를 짚어보고 어떤 미래 전략을 준비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편집자주>
[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강태영 NH농협은행장이 지난해부터 이어진 비상경영체제 속에서 처음으로 1분기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겉으로는 당기순이익이 크게 늘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자이익 급감과 자산건전성 악화 등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는 평가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NH농협은행의 올해 1분기 당기순이익은 554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1.5% 증가했다. 지난해 1분기 홍콩 ELS 사태로 인한 충당금 반영에 따른 기저효과의 영향이 크다.
실질적인 수익성 지표를 살펴보면 오히려 하락세다. 자기자본이익률(ROE)은 11.06%로 전년 대비 상승했지만 2023년보다는 1.33%포인트 낮다. 총자산순이익률(ROA)도 0.52%로 소폭 개선됐으나 여전히 2년 전보다 낮은 수준이다. 핵심 수익원인 이자이익도 1조845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6.9% 줄었다.
특히 순이자마진(NIM)은 1.75%로 전년 동기(2.00%)보다 0.25%포인트 하락해 수익성 압박이 심화되고 있다. 수수료이익(1919억원)과 유가증권 및 외환파생이익(1828억원)은 각각 0.9%, 13.4% 증가했으나 이자이익 감소를 상쇄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자산건전성도 악화일로에 있다. 고정이하여신(NPL) 비율은 0.56%로 전년 동기(0.39%) 대비 0.17%포인트 상승했다. 연체율도 0.65%로 전년 동기(0.43%) 대비 크게 높아졌다. 대손충당금적립률은 197.8%로 68.4%포인트 하락해 건전성 지표가 전반적으로 나빠진 상황이다.
■ 비상경영 성과는 아직 미흡
강 행장은 실적 부진과 건전성 악화, 금융사고 등 복합적 위기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우선 성과중심 조직문화 도입과 디지털 전환 가속화가 돋보인다. 성과중심 인사제도와 시상제도 신설 등으로 내부 경쟁력과 동기부여를 강화했다. AI 추천 어시스턴트, AI 신용감리 시스템 도입 등 디지털 혁신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NH올원뱅크’ 중심의 슈퍼앱 전략과 전자금융 인프라 재정비 등으로 비대면·플랫폼 경쟁력도 강화하는 중이다.
다만 한계도 뚜렷하다. 취임 직후 ‘금융사고 ZERO화’를 선언했음에도 불구하고 1분기에 221억원 규모의 금융사고가 발생하며 내부통제 시스템의 허점을 드러냈다. 또한 순이익 증가에도 불구하고 이자이익 감소와 건전성 악화가 지속되고 있다. 비상경영의 실질적 효과는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강 행장은 비이자이익 확대 및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 내부통제 및 리스크 관리 강화, 디지털 혁신과 고객경험 개선, 비용 효율화 및 조직문화 혁신 등 다각도의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구조적인 실적 부진을 타개하기 위해 비이자이익 확대를 핵심 전략으로 내세웠다. 자산관리(WM), 투자은행(IB), 외환 등 비이자부문 사업을 강화하고 디지털·비대면 채널을 활용한 새로운 수익원 발굴에 나설 계획이다. 농협 특화 금융상품 개발 역시 중요한 전략 축 중 하나다.
■ 글로벌·디지털, 새 성장 동력으로
농협은행의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강 행장이 가장 공을 들이고 있는 부분은 글로벌 진출과 디지털 혁신이다.
농협은행은 현재 미국, 호주, 중국, 베트남 등 8개국 11개 해외 점포를 운영 중이다. 2025년까지 영국 런던사무소를 지점으로 전환하는 등 유럽, 중동, 아프리카 등으로 거점을 11개국 14개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글로벌 당기손익 1000억원 조기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강 행장은 취임 직후 해외점포장들과 신년 화상회의를 열고 각 진출국 시장과의 네트워크를 강화하며 손익 중심의 사업 성장을 강조했다. 현지 영업환경에 맞는 맞춤 전략과 내부통제 강화를 통해 신뢰받는 글로벌 은행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방침이다.
디지털 전략부문 전문가 출신인 강 행장은 농협은행의 ‘디지털 리딩뱅크’ 도약을 최우선 비전으로 제시하고 있다. 올원뱅크사업부장, 디지털전략부장, DT부문 부행장 등 다양한 디지털 관련 보직을 역임한 경험을 바탕으로 전사적 디지털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AI·빅데이터 기반 초개인화 마케팅, 비대면 금융 서비스 확대, 신기술 기반 혁신 금융 서비스 도입 등 디지털 역량을 대폭 강화하고, NH올원뱅크를 슈퍼플랫폼으로 고도화하는 전략을 추진 중이다.
네이버페이 등 빅테크와의 협업을 통해 금융·비금융 데이터 결합 상품, 공동 프로모션 등 차별화된 고객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노력도 가속화하고 있다.
강 행장은 지난 2월 네이버페이와 업무 협약을 맺으면서 “이번 업무협약은 고객들이 한 차원 높은 금융서비스를 경험할 마중물 역할이 될 것”이라며 “고객의 기대를 뛰어넘는 금융서비스를 확대해 디지털 금융 혁신을 선도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