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자료=국민건강보험공단)

[한국정경신문=이진성 기자]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담배회사를 상대로 한 이른바 '담배 소송' 승소를 위한 총력전에 나섰다. 흡연과 폐암 발병 간 인과관계에 대해 일부라도 첫 판례를 끌어낸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이례적으로 조직의 수장까지 최전방에 나서면서 관련 기관 및 업계가 이 판결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 판결에서 일부라도 승소하면 담배회사와의 각종 소송이 줄지어 제기될 전망이다.

22일 서울고법 민사6-1부는 건보가 KT&G와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를 상대로 낸 533억원 손해배상청구 소송 항소심의 12차 변론을 진행한다. 진행 상황에 따라 추가적으로 다시 변론 기일이 잡힐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정기석 건보 이사장이 직접 프레젠테이션(PT)를 준비하며 전날까지도 내용을 수정하는 등 사력을 다해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재판은 공공기관이 참여한 국내 첫 담배 소송이다. 건보는 지난 2014년 4월 담배 회사에 흡연 폐해의 사회적 책임을 묻고 건강보험 재정 누수를 막는다는 취지로 소송을 제기했다. 손해배상액은 30년 이상·20갑년(하루 한 갑씩 20년) 이상 흡연한 후 폐암과 후두암을 진단받은 환자 3465명에 대해 공단이 2003∼2012년 지급한 진료비로 533억원 수준이다.

앞서 2020년 11월 1심 판결에서는 흡연 이외에 다른 원인으로도 폐암이 발병할 수 있고 담배회사가 중독성 등을 축소·은폐한적 없다는 이유로 담배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다만 건보는 그동안 흡연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증명할 새로운 연구 결과들이 축적됐다는 점에서 결과가 뒤집히길 바라고 있다.

이미 미국과 캐나다 등 외국에서는 개인이나 주 정부가 담배 회사들에 배상금을 받아낸 사례가 여럿 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판례도 적극 제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호흡기내과 전문의인 정기석 이사장이 직접 변론에 나서는데, 이 분야 최고 전문가인 만큼 각종 자료를 바탕으로 재판부를 설득한다는 계산도 깔려있다.

보건당국에 따르면 이 재판의 핵심은 일부라도 첫 판례가 제시되는 지의 여부다. 그동안 국내에선 흡연과 폐암의 인과 관계가 명확하지 않아 사실상 개인이나 기관 등이 소송을 청구한다고 해도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전무했다. 최종 변론에 정 이사장이 직접 PT를 정리하면서 까지 매진하는 배경은 첫 판례를 만들기 위한 노력으로 보여진다.

더 이상 흡연으로 인한 건보 재정의 누수를 허락하지 않겠다는 기관 자체의 입장도 있다. 하지만 호흡기내과 전문의로서 흡연으로 인한 건강 폐해를 막겠다는 바람도 녹아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만약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에 대한 판례가 만들어진다면 개인이 나서 담배회사와 싸우는 모습을 흔히 볼수 있게 될 전망이다.

보건당국 관계자는 "과거 유명 연예인들도 흡연에 따른 폐암을 호소했지만 사회적 여론만 커졌을 뿐 재판부의 기조가 바뀌지는 않았다"면서 "기관의 수장까지 나서 총력을 기울이고 있어 이번 만큼은 과거 판결과 다르게 나오길 기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담배회사에 책임이 일부 묻게 된다면 해당 회사들도 성분적인 면이나 광고 분에서 보다 신중히 접근하지 않겠냐"면서 "판례에 따라 담배회사들이 일반(연초) 시장을 정리하고 전자담배 등에 집중할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