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윤성균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4대 시중은행을 상대로 추진 중인 LTV(주택담보대출비율) 담합 제재가 금융당국의 반발과 정권 교체기라는 변수에 부딪혔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은행 독과점 발언에서 시작된 공정위의 제재 작업이 정권 교체 이후 동력을 잃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전날 열린 임원회의에서 “최근 일부 금융 인프라의 과점적 구조와 일부 금융회사간 정보교환 행위의 경쟁제한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면서 “금융업 특성상 금융안정 조치가 경쟁제한 논란을 촉발할 수 있고 반대로 경쟁촉진 조치가 금융안정과 소비자권한 침해 소지도 있다”고 말했다.
또 “금융안정과 경쟁촉진간 적절한 균형을 유지하면서 종합적인 소비자후생 확대를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공정위나 LTV가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전후 맥락상 공정위가 추진 중인 4대 은행의 LTV 담합 제재를 겨냥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LTV는 은행이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줄 때 대출한도를 결정하는 비율이다.
이 원장의 발언은 금융업 특성상 금융사간 정보교환 행위가 일부 소비자권익 침해 소지가 있더라도 금융안정을 위해서는 필요하다는 의미로 읽힌다. 그간 LTV 정보 공유가 담합이 아니라 리스크 관리 및 금융안정 차원의 관행이었다는 은행권의 의견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또 공정위 제재 등 경쟁촉진 조치가 금융안정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지적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금융위원회 역시 공정위의 제재에 반감이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LTV 규제가 가계부채 총량을 관리하는 금융당국의 핵심 정책수단이기 때문이다. 금융위 내부에서는 은행들의 LTV 정보 공유가 금융정책 협조 차원에서 이뤄진 행정지도에 따른 것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현재 공정위는 KB국민, 신한, 하나, 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이 LTV 관련 정보를 광범위하게 공유해 대출 조건을 비슷한 수준으로 맞추고 시장 경쟁 제한해 부당이득을 취했다고 보고 약 1조원에 달하는 과징금 부과를 추진 중이다.
지난달 18일 4대 은행에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이 보고서에는 은행들이 2023년부터 약 7500건에 달하는 LTV 자료를 서로 주고받으며 담보대출 조건을 조정해 결과적으로 금융 소비자의 선택권과 이익을 침해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2020년 공정거래법 개정 이후 신설된 ‘정보 교환 담합’ 조항이 처음 적용되는 사례다.
은행들은 단순 정보교환일 뿐 담합이 아니며 부당 이익도 없었다는 입장이다. 정보 공유 후에도 은행별 LTV는 일정 부분 차이를 보였기 때문에 경쟁이 제한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각 은행들은 이러한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작성해 제출할 계획이다. 금융당국 역시 필요시 공정위에 의견서를 제출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은행권에서는 이번 LTV 담합 제재가 지난 정부의 은행권 독과점 압박에서 출발한 만큼 정권 교체기 동력을 잃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공정위의 은행 LTV 담합 의혹 조사는 2023년 2월 윤 전 대통령이 “금융분야의 과점을 해소하고 경쟁 촉진을 위한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은행의 ‘이자장사’를 비판하며 ‘소상공인이 은행의 종노릇한다’는 등의 맹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공정위가 은행 의견서 제출 기한을 6월까지 연장했고 최종 제재 수위 결정도 하반기로 미뤄진 상황이다. 이에 따라 LTV 담합 의혹 사건의 매듭은 차기 정부에서 지어질 공산이 크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공정위 LTV 담합 제재가 지금도 무리하게 진행된 측면이 있는데 차기 정권에서도 계속 이어지는 어려울 것”이라며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