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경신문=최정화 기자] 공정거래위원회가 플랫폼 공정경쟁촉진법(플랫폼법) 세부 조항 발표를 잠정 연기했다. 플랫폼법이 사실상 재검토 수순에 들어가면서 규제 대상으로 거론됐던 쿠팡 등 한국 이커머스업체들은 잠시 안도하는 분위기다.
플랫폼법은 일정 규모 이상의 시장 지배적 플랫폼을 사전에 지정해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최혜 대우 등 4대 행위를 금지하는 규제다. 공정위는 지난해 12월 19일 플랫폼법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플랫폼법 발표 연기를 놓고 원점 재검토나 제정 백지화 추측까지도 제기되고 있지만 공정위는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플랫폼법 기본 틀 자체를 바꾸는 건 아니며 전략적 숨 고르기라는 것이다. 논란이 된 사전지정 제도에 대해서는 대안을 논의한 뒤 재추진하겠다는 것이지 폐기하겠다는 건 아니라며 선을 그었다.
■ 쿠팡 규제대상 포함 여부 의견 분분
8일 업계에 따르면 전날 공정위 발표에 이커머스업계는 일단 한숨 돌리는 분위기지만 재주친 가능성이 커 여전히 불안 요인이 남아있는 상태다.
관건은 쿠팡과 배달의민족(우아한형제들) 등이 규제 대상에 포함되는지 여부다.
공정위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 유관 부처에 보낸 검토안에 따르면 지배적 사업자의 정량 기준은 ▲국내총생산(GDP)의 0.075% 이상 ▲연매출 및 이용자 수 750만 명 이상 ▲GDP 0.025% 이상 연매출액 및 시장 점유율 75% 이상 등인 플랫폼 기업이다.
또 가장 최근에 발의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내놓은 ‘온라인 플랫폼 독점규제에 관한 법률안’에서 ▲시가총액 30조원 이상이면서 연평균 매출액 3조원 이상 ▲월평균 이용자수 1000만명 이상이거나 이용사업자수가 5만개 이상인 플랫폼이 지정 대상이 된다. 이 기준대로라면 쿠팡과 배달의민족(배민) 등도 지배적 사업자에 해당될 수 있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쿠팡과 배민 각각 매출액이 크지 않고, 시장점유율이 낮아 지배적 사업자 대상에 오르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정성 기준을 적용할 경우, 해당 시장의 특성 상 쿠팡과 배민은 규제 대상에서 제외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이커머스 시장에서 알리 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중국 신규 업체들이 빠르게 점유율을 높이고 있어 쿠팡이 독과점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배달업계에서 배민의 시장 점유율(60%)은 높지만 매출이나 자산규모가 크지 않은 점도 이유로 꼽힌다.
■ 로켓배송·쿠팡플레이 혜택 사라질 수
플랫폼법이 제정되면 쿠팡과 배민 등이 제공하는 무료배송 서비스나 무료 콘텐츠, 할인 혜택 등이 사라지거나 축소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 상당수가 로켓배송이나 동영상서비스(OTT), 선물하기, 페이 등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만큼 소비자들의 불만도 터져 나온다.
특히 쿠팡과 배민이 규제 대상에 포함될 경우 입점해 있는 국내 중소상공인들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곽은경 컨슈머워치 사무총장은 “멀티호밍 제한과 최혜대우 역시 사전 규제가 이뤄지게 된다면 제조사가 전략의 일환으로 플랫폼 사업자와 독점 계약을 체결하는 것도 허용되지 않을 수 있고, 입점 사업자와 플랫폼 사업자가 합의해 진행하는 판촉 행사 등도 제한될 수 있다”고 말했다.
곽 사무총장은 또 “국내 플랫폼 기업 활동에 제약이 생기면 자연히 소비자들에 대한 서비스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며 결국에는 소비자 물가에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천대 전성민 교수(전 한국벤처창업학회장)은 “플랫폼법 도입에 따른 수수료 인상과 이로 인한 상품 가격 전이 효과로 소비자 잉여가 최소 1조1000억∼2조2000억원 감소할 수 있다”며 “사전 규제 성격의 플랫폼법은 공급자가 아닌 수요자의 시각과 혁신기업이 필요한 한국 상황을 고려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 역차별·성장 저해 등 해결과제 산적
정부의 과도한 규제가 국내기업에 대한 역차별과 성장 동력을 저해할 수 있다는 점도 해결해야 할 과제다.
쿠팡 등이 국내 주요 이커머스업체들이 규제를 받을 경우 이를 틈타 규제에서 자유로운 중국발 이커머스업체들이 국내 시장을 잠식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내 이커머스 시장은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 중국 업체들 공세로 국내 업체들 점유율이 점점 줄어드는 상황이다. 알리바바 매출은 약 158조원(2021 회계연도 기준)으로 네이버의 80배, 쿠팡의 40배다.
미국에서도 알리익스프레스, 테무 등 중국기업만 키워주는 규제법이라고 짚었다. 미국상공회의소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간) 찰스 프리먼 아시아 담당 부회장 명의 성명에서 "미 상의는 플랫폼 규제를 서둘러 통과시키려는 듯한 한국에 대해 우려한다"고 밝혔다.
한국플랫폼입점사업자협회는 최근 입장문을 통해 "이번 법안 추진은 플랫폼 기업의 독과점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하지만, 오히려 국내 플랫폼 기업에 대한 역차별을 초래하여 결국 해외 공룡 플랫폼들이 한국 시장을 장악하게 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곽 사무총장은 “대형 플랫폼 시장지배력이 우려된다면 플랫폼 시장에 경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추진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반면 소상공인 업체와 일부 소비단체는 쿠팡이 규제 대상에 포함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쿠팡이 소상공인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은 만큼 지배적 사업자로 지정되지 않으면 법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참여연대는 지난달 30일 낸 논평에서 “쿠팡과 배민이 빠진 독점규제법은 납득할 수 없다”며 “일정 규모 이상인 플랫폼을 (지배적 플랫폼으로) 일괄 지정하라”고 요구했다.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현 시점에서 신속한 제재만을 위해 사전지정제가 필요한지 또는 실익이 있는지 의문”이라며 “플랫폼법과 같이 특별법을 제정하기보다는 기존 공정거래법을 시장 변화에 맞게 개정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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