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성 칼럼] 검은 머리 미국인들

미국과 다르면 나쁘다?

김재성 주필 승인 2019.03.27 10:51 의견 8

[한국정경신문=김재성 주필] ‘검은머리 외국인’은 문자적 의미와 무관하게 ‘얼굴은 한국인, 혼은 외국인’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지난 2006년 이정환 기자(미디어 오늘 대표이사)의 저서 <투기자본의 천국 대한민국>에서 신자유주의 이후 우리나라에 들어와 조 단위의 천문학적인 이익을 챙기는 외국자본의 대리인으로 활동하는 한국인들을 지칭하면서 처음 사용한 말이다.     

책에서 말한 이들의 역할은 론스타가 2003년 3월 외환은행을 인수해 8년 4개월 만에 5조1536억원, 칼라일이 2000년 한미은행을 인수해 4년 만에 7107억원의 순이익을 남기고 빠져나가기까지 국제금융 전문가로 대형로펌, 금융가 중역, 경제 관료들과 정보를 공유하면서 사실상 불법인 편법, 사실상 탈세인 절세 등을 돕는 일이다. 

이들은 다국적(사실상 미국) 자본의 첨병이자 신자유주의 전도사들이어서 신자유주의 금융원리나 기법을 꿰고 있지만 그것이 수탈의 매커니즘인 것은 모른다. 이들은 말한다. “굴비는 국적이 없다. 영광에서 가공하면 영광굴비일 뿐이다. 자본도 국적이 없다. 다만 자유롭게 이동할 뿐이다. 따라서 어느 나라 누구든 유용하게 쓰면 그 나라 것이요 그의 것이다”라고. 

그러나 자본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공략대상 기업의 내부정보를 입수하고 그 나라의 규제를 피하거나 바꿔서라도 이익을 관철하는 것을 아무나 할 수 있는가? 이들은 모를까? 토끼가 숨을 바위틈이 없고 다람쥐가 피신할 나무가 없는 초원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동물은 사자뿐인 데 그것이 신자유주의인 것을. 대개가 미국 명문대 석사출신들이며 제임스 김이니 스티븐 리니 하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들은 아닌 게 아니라 검은 머리 미국인들이다. 

이들 뿐이랴. 성조기 흔들어대는 태극기 부대는 논외로 치자. 북·미 정상회담을 둘러싼 한국의 보수 언론과 친미 지식인들의 말과 글을 리뷰해 보면 미국보다 더 미국적 주장에 머물러 있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핵폐기(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라는 미국의 원론적 입장에 대해 미국보다 더 완고하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를 바라는 마음은 세계가 같을 것이다. 그 안에서 대한민국의 입장과 대한민국 국민의 마음은 더 각별하다. 그것은 미국과 다르고 일본과는 더욱 다르다. 따라서 우리 정부의 대북 자세는 크게는 유엔 및 국제사회 공조의 틀을 유지해야 하지만 미국과 한 치의 어긋남도 없어야 한다면 어떻게 중재를 할 수 있으며 우리의 정체성은 또 뭔가? 

2018년 6.12 북·미 싱가폴 정상회담이 성사되기까지 문재인 대통령의 공로는 세계가 인정하는  바다. 하노이 회담이 결렬됐다고 해서 북한도 미국도 또 우리도 한반도 평화를 포기하지 않았고 포기해서도 안 된다. 바로 그 지점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역할은 남아있고 이는 세계가 이미 암묵적으로 동의하고 있는 바다. 중재자 역할이란 미국에게는 북한을, 북한에게는 미국을 일정 부분 대변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어떤가? 

<트럼프 입에서 사라진 한·미동맹의 상징 ‘린치핀’> 3월 19일자 한 조간신문 머리기사다. 린치핀(linchpin-핵심 축)은 한미동맹을 말할 때 미국 측이 즐겨 사용하는 어휘로 오바마 대통령은 2010년 이후 2016년까지 매년 사용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취임 후 한번도 이 단어를 쓰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또 미·일동맹의 상징어인 코너스톤(cornerstone-주춧돌)보다 ‘린치핀’이 훨씬 더 가까운 표현이라 일본이 내심 부러워했다는 말도 곁들였다. 이 기사는 단건 기사로만 보면 사소한데서 큰 의미를 찾아내는 노력이 돋보이지만 그동안 북·미 문제를 다뤄온 논조의 연장선상에서 보면 <미국이 문재인 정부를 버리고 있다>는 말로 읽힌다.

한 마디로 지금의 한국 보수언론은 1982년 3월 대학생들이 부산 미 문화원 점거 사건이 났을 때 <반공과 친미는 헌법 이상의 국민적 합의>라며 일갈했던 논조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물론 미국은 우리의 가장 중요한 동맹국이며 현실적으로 보더라도 모든 분야의 표준인 미국을 벗어나서 되는 일이 없는 것은 맞다. 

그러나 매사를 미국의 관점으로 비판하는 것은 다르다. 뭘 좀 안다는 사람들일수록 미국의 기준에 빗대서 ‘틀렸다’ 혹은 ‘나쁘다’고 예사로 말하면 어느 천 년에 우리 문제를 우리 주체적 역량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아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