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성 칼럼] 친구야 조용히 좀 있어다오 - 노태우 생각

전두환을 보면서 노태우를 다시 본다.

김재성 주필 승인 2019.03.13 10:35 의견 18

[한국정경신문=김재성주필] 뻔뻔한 것인가? 타고난 코미디언인가?

전두환 전 대통령을 보는 다수 국민의 궁금증이다. 11일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광주 법원 피고인석에 선 그는 여전히 태연자약했다. 본인들은 당당했다고 여길지 모르나 국민이 보기에는 뻔뻔했다.   

“전 재산 29만원 밖에 없다”는 둥 생뚱한 발언으로 사람들을 웃게 만들어 코미디언 끼가 있다는 말까지 들었던 그지만 이번 소동에는 아무도 웃지 않는다. 이제는 그의 돌출행동이 적폐먼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는 1996년 3월부터 1심 28회, 항소심 12회 등 모두 40회 피고인석에 섰다. 그리하여 1, 2심 모두 사형언도를 받았다가 대법원 상고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죄목은 ‘내란’ ‘반란’ ‘수뢰’ 그러다 97년 12월 김대중 당선자와 김영삼 대통령 합작으로 사면의 은전을 입었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평지풍파를 일으켜 23년 여 만에 다시 피고인 신분이 되었다. 2017년 출간한 회고록에서 5·18 당시 계엄군에 의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에 대해 “사탄”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기술한 것과 관련해서다. 

진실은 진작에 조비오신부 증언이 맞는 것으로 확인됐다. 물론 작심하고 회고록을 쓸 때는 나름대로 사실을 알리고 싶은 부분이 많을 것이다. 의자왕의 3천궁녀처럼 원래 역사의 죄인에게는 자잘한 허물이 부풀려지기 마련이니 짐작은 간다. 그렇다한들 살인강도가 은수저는 훔치지 않았다고 항변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일찍이 자공은 <군자가 하류에 거하는 것을 싫어하니 천하의 악이 모두 (그에게)돌려진다> 고 했으니 지금에와서 그가 해야 할 것은 ‘나 같은 사람을 위해서도 해가 뜨고 꽃이 피는가?’ 라며 감읍하고 어느 날 생명의 외경에 눈 떠 광주 묘역을 찾아 눈물로 용서를 구하는 일이다.

만약 이런 사건이 진짜로 일어난다면 얼마나 감동적이겠는가? DJ의 용서가 빛을 발하는 순간일 것이다.  

아니면 일국의 대통령이 뇌물을 수천억이나 받은 것이 하늘 보기도 두렵고 사람 만나기도 부끄러워 하루 빨리 잊혀진 사람이 되기를 기다리며 숨어살든가.

전 전 대통령이 사고를 칠 때마다 피곤한 사람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전 통’과 같은 혐의로 함께 기소돼 22년 형을 받고 복역 중 같이 사면된 그는 2002년 전립선암 치료 때문에 입원과 퇴원을 반복한 것 말고는 연희동 자택에서 두문불출 하고 있다.

그런 그에게 전우이자 동지, 그리고 선임 대통령인 ‘전 통’의 언론 노출은 정말 불편한 소식이다. 바늘과 실처럼 이름이 붙어 다녔던 관계로 자동적으로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는 것이 싫은 것이다. 그러니 만약 두 사람이 통화라도 하면 ‘노 통’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까? “친구야, 제발 조용히 좀 있어다오” 하지 않을까? 

노 전 대통령에게는 재임시절부터 ‘물태우’라는 별명이 붙었다. 전두환과 대비되어 폄하의 의도가 담긴 이 별명은 실은 굉장히 좋은 말이다. 노자의 말을 빌릴 것도 없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    

그는 ‘12.12 내란’의 주역이었지만 그 후로는 대체로 순리를 따르는 사람이었다. ‘속이구’라는 뒷말이 붙긴 했어도 어쨌든 밥상을 받은 그가 동의하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6.29 선언’을 비롯해 강경파의 반발을 무릅쓰고 YS에게 바톤을 넘긴 것도 ‘물태우’ 다운 결정이었다. 

사람들이 잘 기억을 안 해주어서 그렇지 그는 재임 중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제안해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1992년 2월)을 이끌어 냈다. 또 북방정책으로 1990년 10월 구 소련과 국교를 수립하고 92년 8월에는 적성국 중화인민공화국과도 국교를 수립했다. 

전직 대통령은 처신이 어렵다. 미국의 카터 대통령이나 고 김대중 대통령처럼 의미 있는 활동공간을 만드는 것 쉬운 일이 아니다. 노무현 대통령처럼 농사지으면서 자전거에 손녀 태우고 시골길을 달리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인생개화락화(人生開花落花)요 세사전수후수(世事前水後水)라 하지 않았던가? 인생을 반추하면서 지인 관혼상제에 대통령 이름으로 꽃이나 보내고 조용히 지내는 것이 상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