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노트] ‘아파트도 페이스북이다’..다산신도시, 도 넘은 이기주의

신영호 기자 승인 2018.04.20 17:53 의견 0
머리에 농기구 키를 쓴 모형 인형 (사진=모래놀이 닷컴)

 

[한국정경신문=신영호 기자] “7~80년도 때만 해도 아파트 문화가 이렇게 야박하지 않았지. 그때는 애들이 밤에 이불에 지도를 그리면 그 다음날 농기구인 키를 머리에 씌우고 이웃집에 보내고 했거든. 소금 얻어오라고. 지금 그렇게 하면 학동학대니 머니 해서 야단날걸”

내년이면 70세를 바라보는 이 모 할아버지는 ‘다산신도시 택배 분쟁’을 보며 혀를 찼다. 정부가 택배 분쟁 조정을 위해 ‘실버 택배’ 방안을 발표했다가 ‘국민세금이 투입되는 만큼 적절치 못하다’는 여론의 질책을 받고 철회한다는 소식을 접한 뒤다. 

식당 한구석에서 얘기를 듣던 중년의 한 남성은 “아파트가 대체 머라고 저리 난리인지 층간소음에다 혐오시설 조성 반대에다 아파트 단지 주민들의 이기주의가 도를 넘은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나라 아파트는 부의 상징이 된지 오래다. 주거공간인 아파트가 신분의 상징으로 굳어진 것이다. 여럿이 함께 거주하는 공공주택임에도 외부인에 대한 배제가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아파트 단지 커뮤니티를 둘러보면 배제의 악순환이 만연돼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수도권의 한 아파트 단지는 ‘엘리베이터 내부가 긁히기 때문에 자전거나 휠체어 진입을 금지’한다고 공지했다. 또 다른 단지에선 ‘야식 배달원이 엘리베이터를 사용하다 적발되면 승강기사용료를 부과한다’고 돼 있다. 

한 공인중개사는 “단지 안에 외부인이 오고가고 인근에 혐오시설이 들어온다고 하면 집값에 악영향을 미치니깐 주민들이 나서는 것”이라며 “어느 고급아파트 단지에서는 낮에 베란다에서 이불 털지 말라며 내부단속도 한다. 서민아파트에서나 볼 수 있는 관경 때문에 아파트 가치가 떨어진다는 것 때문에 그렇게 한다더라”고 설명했다.

‘아파트=자산’이라는 공식이 정설이 된 우리나라의 아파트 문화는 해외사례와 비교되며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낸다. 

세계에서 살기 좋은 도시로 손꼽히는 오스트리아 빈(Vienna)의 주택은 ‘아파트=공존’이라는 등식으로 설계된다. ‘자르크파브릭(Sargfabrik)’이라는 빈의 사회주택은 방송을 통해 국내에도 소개될 만큼 아파트 문화의 새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의 구조적 문제점을 연구해 온 명지대학교 건축학부 박인석 교수에 따르면 빈의 아파트 단지는 ‘외부와의 연결과 소통’을 중점으로 짜여졌다. 

하늘에서 보면 빈의 아파트 구조는 그물망처럼 돼 있다. 단지 안 사람이나 단지 밖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든 마주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아파트단지가 트위터나 페이스북처럼 의사소통 수단이 되는 것이다. 단지 안에 있는 수영장과 공연시설 등 편의시설도 만남과 소통의 장소로 기능한다. 

반면 우리나라 아파트 구조는 빈과 반대로 된 형태다. 아파트 단지는 모양과 크기가 같다. 단지는 규칙적으로 배열돼 있다. 그 사이를 놀이터, 주차장, 관리사무소, 상가 등이 채우는 구조다. 단절과 배제가 용이하다. 빈 아파트의 그물망 구조에 대비되는 나무형 구조다. 

아파트 단지 형태를 그물망 구조, 나무형 구조로 정립한 사람은 미국의 도시건축이론가 크리스토퍼 알렉산더다. 

그는 과거 “현대도시인들의 생활이 그물망처럼 서로 복합적으로 연결돼 있는데도 도시계획가나 건축가들이 생활공간을 나무구조로 위계화하고 단일목적 동선공간들로 조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알렉산더는 나무형 구조의 아파트를 “날카로운 면도날이 가득한 그릇”으로 비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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