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치사와 함께 한 청와대..70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이상훈 기자 승인 2022.03.20 13:41 의견 0
청와대 전경. [자료=연합뉴스]

[한국정경신문=이상훈 기자]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가 20일 대통령실의 용산 이전을 공식화하면서 70년 넘게 유지돼 온 청와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그 동안 대통령의 권위를 상징하는 건물이었던 청와대를 이제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공원으로 바꿔 시민들의 품으로 돌려주겠다는 것이 윤 당선자의 구상이다.

현재의 청와대 자리(서울 종로구 세종로 1번지)는 조선 태조 4년(1395년) 경복궁이 창건되며 궁궐의 후원으로 사용되던 곳으로, 일제강점기 시절 조선총독부는 이 곳에 건물을 짓고 총독관사로 이용했다.

이후 1948년 정부가 수립되며 이승만 전 대통령이 '경무대'라는 이름을 짓고 관저 및 대통령 집무실로 이 건물을 사용하게 된 것이 지금 청와대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

'푸른 기와집'을 뜻하는 청와대(靑瓦臺)의 명칭을 가장 먼저 사용한 것은 윤보선 전 대통령 시절이다. 윤 전 대통령은 1960년 당시 4·19 혁명 분위기 속에 경무대가 지닌 부정적 인식을 고려해 이름을 바꿨다.

이후 박정희·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과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까지 이곳을 사용하면서 청와대는 명실상부한 '권부의 상징'으로 인식됐다.

청와대는 군부독재 시절과 민주화운동, IMF, 대통령 탄핵 등 70년 동안 국내 최고 권력자가 머무르면서 역사 속 크고 작은 사건들과 함께 언급됐던 곳이기도 하다.

이 외에도 1968년 1월 12일 김신조를 비롯한 북한 무장대원 31명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정부요인 살해를 목표로 청와대 뒷산으로 침투한 이른바 '1·21 사태'는 청와대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으로 꼽힌다.

청와대 불과 500m 거리까지 접근한 무장대원들은 당시 초소 검문으로 발각된 뒤 수류탄을 투척하는 등 무력저항을 벌였으나 결국 김신조 1명이 생포되고 28명은 사살, 2명은 도주하며 사건이 마무리됐다.

당시 이들이 사용한 북한산 침투로는 이른바 '김신조 루트'로 불리며 폐쇄됐으나 지난 2009년 41년만에 등산로가 개방된 뒤 북한산과 북악산의 출입통제 지역은 점점 개방이 이뤄지고 있는 추세다.

1979년 10월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청와대 부지 내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 당시 중앙정보부장이 쏜 총탄에 맞고 숨지는 '10·26 사태'가 벌어졌다.

국가원수가 피살되는 헌정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한 것으로, 그 자리에는 차지철 당시 경호실장, 김계원 당시 비서실장 등이 함께 있었음에도 총격을 막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에도 국가의 크고 작은 고비들 때마다 대통령과 청와대는 그 한복판에 자리를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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